6자회담이 13개월만에 재개되지만 북한은 여전히 방코델타아시아은행(BDA)에 동결된 계좌문제의 우선적 해결에 집중적인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주목된다.
북한은 이번 회담에 오광철 조선무역은행 총재라는 현직 은행 총재를 파견함으로써 동결계좌의 합법성 주장과 실무적 해결에 초점을 맞출 것으로 예상된다.
북핵문제를 풀기 위한 6자회담이 열리지만 북한은 오히려 금융제재 문제 해결에 더 공을 들이는 모양새다.
그동안 북한은 미국의 금융제재 이후 이 문제에 강력히 반발하면서 국제사회의 6자회담 재개 요구에도 아랑곳 않고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등 위기 만들기 일변도의 행보를 걸어왔다.
북한 외무성이 지난 1월 금융제재에 대해 "우리의 핏줄을 조이는 행위"라는 표현까지 사용해 미국을 비난한 것으로 미뤄볼 때 북한이 체감하는 어려움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북한 외환결제를 위한 유일한 창구로 활용되어온 BDA에 동결된 북한 자금은 2천400만달러로 추산되고 있으며 이 금액은 작년 북한 예산의 1%에 육박하는 액수로 1달러당 3천원에 거래되고 있는 시장환율을 적용하면 예산의 20%에 육박하는 액수다.
액수도 액수지만 BDA에는 대동신용은행 등의 무역결제계좌 뿐 아니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통치자금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정일 위원장 가족의 생필품을 마련하는 노동당 38호실, 39호실, 서기실 등의 주요 자금이 이 은행의 계좌를 이용했고 북한 군부의 계좌도 다수 포함된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BDA에 동결된 계좌는 액수의 크고 적음을 떠나서 북한을 통치하는 주요세력의 자금줄이라는 점이 북한의 강한 반발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동결계좌에 대한 북한의 절박성은 북미간의 협의 속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지난 3월 미국을 방문해 미국측과 협의에 나선 리 근 북한 외무성 미국국장은 불법행위에 대한 '북한당국의 관여.개입 혐의'를 부인하면서도 ▲위폐 제조자 검거 ▲위폐 시설 압수 후 대미통보 ▲불법금융행위에 대한 북미 비상설협의체 설립 등을 제안했다.
리 국장은 특히 "형법 99조와 100조엔 화폐 위조에 가담하면 종신형, 극형까지 처한다는 조항이 있다"며 "내부적으로도 반 자금세탁법을 독자적으로 제정 공포할 것을 예고하고 있다"고 밝히는 등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북한이 금융제재 문제에 강력히 반발해온 것으로 미뤄볼 때 이같은 제안은 사실상 자신들의 문제를 시인하고 해결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꼬리는 내린 셈'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미국에 대해 결사항전 의지를 다지며 대립해온 북한이 그동안 보여준 대미강경행보와는 달리 금융제재로 인한 절박성 속에서 '약한 모습'을 보인 것이라는 분석이다.
김연철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교수는 "북한은 금융제재를 9.19공동성명 이행을 위한 입구에 들어가는데 반드시 치워야 할 장애물로 보고 있다"며 "금융제재 문제에 대한 북한의 강한 요구로 볼 때 이 문제가 어떻게 풀려나갈 것인지가 향후 회담 성과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서울=연합뉴스) 장용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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