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26 서울시장 재보선 패배 이후, 한나라당 홍준표 대표의 퇴진과 박근혜 전 대표의 조기등판을 이끌어 내는 등 최대한 길게 보면 두달 남짓한 시간이지만 결과적으로 단 90여분 만에 모든 것이 정리됐다.
14일 박 전 대표와 쇄신파 의원들의 회동은 한나라당에서 이른바 ‘쇄신파’로 불리는 소장파 의원들의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 장면이었다.공식적인 ‘재창당 명시’가 그들의 목표였지만 결국 남은 것은 “재창당을 뛰어 넘는 개혁”이라는 박 전 대표의 원래 의도대로 순순히 합의했다.
비상대책위원회 구성의 전제 조건으로 ‘재창당 명시’가 옳고 그르냐는 별개의 문제다. 남경필 전 최고위원과 권영진, 김세연, 황영철, 구상찬, 임해규 의원 등 이날 참석한 쇄신파 의원 6명 중 자신들의 본래 주장이던 재창당 문제와 관련해 말 한마디 꺼낸 인사가 없었다는 점이 이들이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다.
그냥 어쩔 수 없는 합의가 아니라 오히려 반색했다. 이날 오전 비공개 최고중진연석회의까지만 해도 쇄신파를 대표해 ‘재창당’ 약속 없는 상임전국위와 전국위 개최는 반대한다던 남경필 전 최고위원은 “의미 있는 자리였다”고 돌변했고, 대변인 역할을 맡았던 황영철 의원은 “말도 통하고 마음도 통했다”는 호평을 내놔 장시간 대기했던 기자들을 잠시 당황케 하기도 했다.
다음날인 15일 참석인사들은 제각기 라디오에 출연, “재창당을 명시하는 수준이 아니라 국민들에게 공개적으로 재창당을 뛰어넘는 변화를 하겠다고 했는데 재창당이란 표현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 등의 ‘아전인수’격 해석을 내놓으며 본인들의 입장을 뒤집었다.
결국 박 전 대표와 쇄신파가 만났다는 것 뿐, 회동 이후 달라진 것은 없고 ‘말장난’ 같은 애매모호한 정치적 수사만 남았다.
때문에 “내용물은 달라진 게 없고 수식어만 달라졌다”(원희룡 전 최고위원), “김성식·정태근 두 동료 의원의 탈당으로 현재 달라진 것은 박근혜 전 대표의 의원총회 출석과 ‘재창당을 뛰어 넘는’이라는 정치적 수사 뿐”(정두언 의원)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전여옥 의원은 14일 자신의 트위터에 “박근혜 의원이 동료 의원을 만나는 것이 더 이상 뉴스가 아닌 늘 있는 일이 돼야 한다”고 꼬집었다.
회동 결과에 실망한 김·정 의원은 탈당 번복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김 의원은 장문의 문자 메시지를 통해 “암에 걸린 한나라당에 아스피린을 투여하는 것이 아닌 실질적인 암 대수술을 실천으로 옮기는 게 중요하다”고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회동에 참석했던 모 의원은 “두 사람(원·정)도 회동결과에 수긍했다”고 말했다가, 두 의원에게 항의를 받은 듯 15일 의원총회에서 “뜻이 잘못 전달됐다”며 사과를 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특히 또 다른 모 의원은 같은 자리에서 “쇄신파 전원을 만난 것이 아니라 연락되는 사람만 모인 것이지, 박 전 대표 측과 (참석 의원 등의) 조율은 없었다”며 본인이 참석한 전날 회동의 성격을 스스로 깎아내리는 모습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쇄신파의 이같은 ‘용두사미’ 행보는 어제 오늘일이 아니다. 굳이 한나라당이 참패한 지난해 6·2 지방선거까지 거슬러 올라갈 필요도 없다.
가장 최근 소득세 최고구간 신설을 통한 증세안을 박 전 대표가 제동을 걸자 곧바로 ‘없던 일’이 된 사실만 봐도 충분히 알 수 있다.
박 전 대표의 2년 7개월 만에 참석과 이례적인 5분 간의 발언이 화제가 된 이날 의총에서 쇄신파 모 의원 두명은 발언대에서 김·정 의원의 탈당을 언급하며 눈물을 보였다고 한다.
하지만 두 의원의 탈당이 그렇게 가슴이 아프다면, 엄한 곳에서 눈물을 흘릴 것이 아니라 박 전 대표의 면전에서 눈물로라도 호소를 했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뉴스파인더 김봉철 기자 (bck0702@newsfin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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