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과의 합당은 한나라당의 대선 전략
한나라당의 민주당에 대한 합당제의가 끊이지 않고 있다. 애초에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가 한화갑 민주당 대표와의 회동 이후 제기되었던 한민공조 논란이 이제 통합론으로 번지는 것이다. 민주당은 한화갑 대표는 물론 김효석 원내대표가 강력히 한-민 통합론을 부정하고 있지만, 한나라당에서는 통합의 조건까지 거론하고 있는 상황이다.
김무성 의원은 '한나라당 발전적 해체 뒤 중도보수성향의 신당창당'을 홍준표 의원은 '민주당 당권-한나라당 대권'카드를 꺼냈다. 김형오 원내대표는 'DJ 벤치마킹'을 내세우고 있다. 또한 박형준 의원 등 이른바 소장파들은 DJ의 햇볕 정책 계승을 주요 변수로 지목하고 있다.
한나라당의 전략은 내년 대선에서 호남 및 온건개혁 지지층을 흡수하여, 보다 확실히 정권을 찾아오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설사 통합이 되지 않더라도, 그간 무시해오던 호남 유권자층에 최소한의 성의라도 보여, 한 자리수 이상의 득표만 하더라도 손해볼 것은 없다는 판단도 했을 것이다.
상향식 정당에서 양당 해체가 가능한가?
그러나 이러한 한나라당의 대 민주당 전략은 여러 가지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2004년 총선을 전후로 각 정당은 점차 상향식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1인 보스 한 명이 결정하면, 하루만에 정당 하나가 사라지고 새로운 정당이 출몰하는 후진 정치의 시대는 점차 끝나가고 있다. 예를 들면, 당대 당 통합 이전에, 10.25 재보선 때 양당의 공조를 위해 한나라당이 자당의 후보 출마를 막을 수 있는 상황인가? 각 지역에서 출마를 준비하고 있는 예비 정치인의 입장에서 보면, “무조건 출마하지마!”라는 당론은 1인 보스의 지령이나 마찬가지이다.
당 대 당 통합을 하려면 전당대회에서 당원 전체의 의사에 따라, 각 당의 해체 혹은 통합이 결의되어야 한다. 한나라당이나 민주당에는 영호남에서 수십년 간 각자의 정당을 지켜온 당원과 대의원들이 있다. 단지 1년 앞에 둔 대선을 위해, 이러한 정당의 근간을 흔드는 방식의 통합이 과연 현실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을까? 현재 한나라당과 민주당 사이의 간극으로 볼때, 이는 DJ나 YS에게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각 정당의 역사성의 부정이다. 한나라당은 어찌되었든 공화당, 민정당, 민자당, 신한국당의 계보를 잇는 산업화 세력 중심의 정당이다. 물론 3당 합당 이후, 이른바 민주계의 참여로 범 민주화 세력이 포함되어있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한나라당의 뿌리는 그와 다르다.
반면 민주당은 DJ시절부터 호남 및 민주화 세력이 주를 이룬 정당이다. 민주당이 새정치국민회의 시절 박태준, 김종필 등의 연대를 통해 산업화 세력을 수혈하여 집권에 성공했지만, 민주당의 뿌리는 뭐니 뭐니 해도 민주화와 호남이다. 그리고 97년 대선 당시의 경쟁 정당이 바로 지금의 한나라당이었다. 92년 대선에서도 민주당은 한나라당의 전신인 민자당과 맞붙었으니, 민주화와 산업화의 양대 세력의 경쟁은 그 자체로 한국 정당의 역사인 셈이다. 그러니 단지 집권만을 위해 이 구도를 허물자는 한나라당 측의 주장은 민주당 지지자들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것은 물론, 역사성도 결여된 정략이라 비판받을 수 있는 것이다.
각자 열심히 하는 것이 정치발전
대한민국의 정치는 늘 대선을 중심으로 돌아갔다.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되자마자 자신의 소속 정당인 민주당을 깨고 열린우리당을 창당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대선과 대통령만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한국 정치의 폐단 때문이었다. 미국의 대통령이 공화당이든 민주당이든 당선 뒤에 자당을 탈당했다면, 아마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탄핵사유가 되었을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노대통령의 열린우리당 창당은 대통령병 치유에 도움이 되었다. 간 내주고 쓸개 빼주어 대통령 만들어놔도, 언제든지 마음에 안 들면 당 깨고 나갈 수 있다는 기억이 쉽게 잊혀지지 않기 때문이다. 민주당 지지자 입장에서는 잘 알지도 못하고 익숙하지도 않은 한나라당과의 합당 이후, 설사 집권에 성공한다 한들, 언제 어떻게 또 갈라서게 될지 모르는 부담감을 갖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보다는 착실히 국민의 지지를 넓혀가며, 설사 대권을 잡지 못하더라도, 의미있는 제1 야당으로 남는 것이, 차차기를 기약할 수 있지 않을까?
상생과 통합이 꼭 역사가 다른 정당의 합당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민주당이 한나라당의 역사성을 이해하며, 한나라당이 민주당의 역사성을 이해한다면, 상생적 경쟁 관계에서 생산적인 정당 구조가 정착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이 어떻게 보면 오랜 숙원인 호남지역차별 문제가 해결되는 중요한 열쇠가 될 수도 있다.
정당 민주주의 관점으로 보나, 현대 정치의 역사성으로 보나, 각 당의 이익으로 보나,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합당론은 정치 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물론 열린우리당과 민주당과의 통합론도 마찬가지이다. 그냥 각자의 영역에서 서로 열심히 하여 국민의 심판을 받는다는 성실한 자세로 정치에 임해주면 되는 것이다.
이 간단한 문제를 왜 이렇게 어렵게 풀어나가려 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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