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68혁명 40년> ②그때 주역들 지금 뭐하나
(파리=연합뉴스) 이명조 특파원 = 1968년 반전.반체제, 일체의 차별 철폐 등을 주창했던 당시의 주역들이 지금은 사회의 주도적 위치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니콜라 사르코지 정부의 외무장관으로 재임 중인 좌파 출신의 베르나르 쿠슈네르, 유럽의회 의원으로 활약 중인 다니엘 콩방디, 철학자 앙드레 글룩스만 등이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공산당의 당원으로 68혁명에 참여했던 쿠슈네르는 1971년 의사 출신으로, 1971년 '국경없는 의사회'(MSF), 1980년 '세계의 의사들'(MDM) 등의 인권 단체를 만든 인도주의자로 잘 알려져 있다.
1960년대 당시 언론인 신분으로 쿠바를 방문해 피델 카스트로와 회동하는 등 한때 공산주의에 심취했던 그는 사이공 함락 뒤 베트남을 탈출하는 '보트 피플'을 구조하면서 성향이 점차 바뀐 것으로 전해졌다.
그 후 소련군과 싸우는 아프간인들은 물론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에 저항하는 쿠르드족을 도운 것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반대하기도 했던 그는 외무장관에 임명된 뒤에는 보수파 사르코지의 대미 화해 정책을 뒷받침하고 있고, 이란에 대해서도 강경 노선을 고수하고 있다.
유복한 의사가정 출신이어서 캐비아(철갑상어알)를 먹는 좌파란 의미의 '캐비아 좌파'로 불리기도 한다.
유럽의회 의원인 콩방디는 당시 68혁명의 촉발제로 여겨진 낭테르대학 시위.농성을 주도한 학생이었다.
정치적 성향에다 머리색깔마저 붉어 '빨갱이 대니'란 별명으로 유명했던 그는 독일출신으로, 현재 녹색당의 공동 대표 겸 유럽의회 의원으로 재직하고 있다.
그는 68혁명에 반기를 든 사르코지를 비판하면서 "두 번 이혼한 경력에도 대통령으로 재임하고 있다는 것은 그가 68혁명의 유산에 힘입었다는 반증"이라며 사르코지에게 68혁명의 정신을 받아들일 것을 촉구했다.
그가 혁명당시 만들어낸 "구속없는 삶을 살아라. 절제하지 말고 즐겨라"는 슬로건이 두번 이혼하고 세번 결혼한 사르코지 대통령에게 딱 들어맞는다는 논리에서다.
그러나 한편으론 작업장에서 바지를 입는 것이 금지됐고, 피임은 불법이었으며, 동성애는 죄악시되었던 60년대와 오늘날 프랑스 사회는 이미 달라졌다는 입장이다.
그는 "68년 5월은 이미 끝났다"면서 "지금은 누구든 원하기만 하면 무엇이든 즐길 수 있는 시대이다"라며 68년과의 단절을 주장했다.
좌파 철학자인 글룩스만은 프랑스 공산당의 핵심인물로 활동하다 70년대 중반 무렵부터 좌파의 철학인 반자본주의, 반제국주의 이념 대신에 반전체주의를 주장하고 있다.
68년 당시 "볼세비키 혁명처럼 희망은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한 것이지만 불가피하게도 미완성으로 남아있으며 국가제도는 변하지 않고 있다"라고 말했었다.
그런 글룩스만은 지금은 "1968년 5월은 우리가 기념하거나 혹은 파묻어야 할 역사적 유물"이라며 비판적인 견해를 밝히고 있다.
그는 "중대한 사회문제에 대한 입장을 정리하지 못한 좌파는 자아도취에 빠져 있다"면서 겉만 번지르르하게 금도금이 된 박물관을 현대화할 수 있는 적임자라는 이유를 들어 우파인 사르코지 대통령을 지지하는 입장으로 돌아섰다.
반면 좌파 지식인인 타리크 알리는 최근 펴낸 저서 '1960년대 자서전'에서 "68년 당시의 반란에 한계가 있었지만 그 운동과 사상은 대담했으며, 그 대의는 유토피아적 성격과 실제적인 성격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고 긍정 평가했다.
mingjo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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