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건중 4건 조정 불성립
(서울=연합뉴스) 박대한 기자 = 다수의 소비자 피해를 신속하게 구제하기 위한 집단분쟁조정제도가 기업들의 수용 거부로 인해 잇따라 조정이 불성립되고 있다.
이는 집단분쟁조정제도를 맡고 있는 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의 조정안을 소비자와 기업 양 당사자가 수용하지 않으면 강제력이 없는 말 그대로 '권고안'에 불과하기 때문으로, 집단소송 등 소비자 피해를 구제하기 위한 강제력 있는 제도가 도입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1일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지난해 4월 제도 도입 이후 조정 결정이 내려진 집단분쟁조정건은 모두 7건으로 이중 절반이 넘는 4건의 조정안에 대해 사업자 측이 수용을 거부했다.
사건별로 살펴보면 지난해 10월 서울 양천구 목동 소재 현대하이페리온2 입주자 등이 제기한 지하주차장 미시공에 따른 2건의 배상 요구에 대해 분쟁조정위원회가 배상 결정을 내렸지만 건축 시행사인 ㈜코리아원은 이를 거부했다.
경기도 용인시 죽전2동의 H아파트 입주자들이 디엠산업개발산업㈜을 상대로 제기한 분쟁조정건도 위원회의 손해배상 결정을 사업자가 수용하지 않았고, 소비자 3천109명이 ㈜위앤미휴먼테크를 상대로 제기한 '렌털제품의 손실료 및 렌털료 부존재 확인' 집단분쟁조정건도 위원회는 소비자의 손을 들어줬지만 사업자의 거부로 조정이 불성립됐다.
반면 ㈜선우, 남양건설㈜, 대양H&ID㈜ 등은 각각 아파트 새시보강빔 미시공, 주민공동시설 미시공, 인테리어 미시공 등으로 인해 소비자가 제기한 집단분쟁조정건과 관련해 배상을 결정한 위원회 결정을 수용했다.
이처럼 집단분쟁조정 결정이 잇따라 불성립되는 것은 조정안 자체가 강제력을 지니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통상 위원회에서 조정결정 내용을 소비자와 사업자에게 각각 배달증명으로 통보하면 양측은 배달증명을 받은 날로부터 15일 이내에 이의제기를 할 수 있다. 특별한 이의제기가 없으면 15일 지난 시점에 양 당사자가 조정내용을 수락한 것으로 간주하며 한쪽이라도 이의제기를 하게 되면 분쟁조정은 성립하지 않는다.
문제는 사업자 측에서 조정내용을 수락하지 않더라도 이를 강제할 수단이 없다는 데 있다.
미국 등에서는 분쟁조정이 불성립할 경우 한 사람이 소송을 제기해 이기면 같은 피해를 입은 소비자들도 똑같은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집단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현재 허위 공시, 부실 감사, 주가 조작 등 증권분야 외에는 집단소송제도가 도입돼 있지 않다. 따라서 피해를 입은 소비자들은 개별적으로 사업자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방법 외에는 피해를 보상받을 길이 없다.
분쟁조정위원회 정혜운 변호사는 "집단분쟁조정제도에 따른 조정 결정은 강제력이 없기 때문에 기업에서 이를 거부하면 한계가 있다"면서 "현재 위원회는 조정이 거부될 경우 소비자들을 위해 소송을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 변호사는 "기업에 부담이 되고 소송에서 질 경우 나머지 소비자들도 손해배상을 받을 길이 막혀 집단소송 제도의 부정적인 면도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집단소송제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pdhis9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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