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굴수요 근본 해소에는 역부족"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문화재청이 매장문화재 조사 절차 간소화를 골자로 하는 '문화재 조사제도 개선방안'을 제2차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에 보고한 30일 공교롭게도 충남 당진에서 문화재 발굴조사로 공장설립이 늦어진다며 사업주가 중장비를 동원해 발굴현장을 무단파괴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외국과 계약한 물품을 예정된 기간 내에 생산해야 할 사업주로서는 거북이 걸음을 계속하는 듯한 문화재 조사과정을 보면서 울화가 치밀었겠지만, 적어도 이런 지적에 대해서만큼은 발굴조사를 담당한 매장문화재 전문조사기관 또한 할 말이 많다.
매장문화재 조사기관 관계자는 "우리로서는 현재의 여건에서 원칙에 따라 조사에 임했다"면서 "조사원이나 발굴장비 중복투입 등을 이유로 검찰이 전국 발굴조사전문기관을 거대한 범죄집단처럼 만들고, 그 책임자들을 대거 사법처리한 마당에 누가 법과 원칙을 어겨가면서까지 발굴조사를 속히 진행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검찰조사 이후 여타 기관처럼 조사원 중복 투입이 불가능하게 된 충남역사문화연구원은 이날 현재 동원 가능한 조사인력을 총투입한 가운데 당진을 포함한 충남 지역 5곳에서 발굴조사를 벌이고 있다. 이런 판국에 당진 발굴현장에만 더 많은 조사인력을 투입할 수 있는 형편이 아니라는 것이다.
문화재청이 내놓은 '문화재 조사제도 개선방안'이란 것도 결국은 당진 공장설립 부지가 안고 있는 매장문화재 조사의 여러 문제를 해결해 보자는 발로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위해 문화재청은 현재 최장 140일까지 걸리는 문화재 조사절차와 그 처리 기간을 올해 안으로 40일 내로 단축하고, 문화재 전문조사기관 설립요건을 완화하는 안을 내놓았다. 기간과 절차를 단축하고 매장문화재 전문조사기관도 늘리겠다는 뜻이다.
이 두 가지 중 적어도 전자에 대해서는 이의를 다는 사람은 별로 없다. 조사기간과 절차 단축은 사업주측도, 고고학계도 모두 바라는 대목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화재 전문조사기관을 늘리겠다는 방침에는 고고학계 대다수가 회의적인 반응을 보인다.
발굴할 수 있는 전문 인력이 제한된 마당에 다른 기관 인력을 빼내 전문조사기관을 몇개 더 만든다고 해서 폭증하는 고고학 발굴수요를 근본적으로 해소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조사원이나 발굴장비 중복투입과 같은 '관행'을 전향적으로 합법화해야 한다거나, 아예 이참에 민법상 비영리 법인인 매장문화재 전문조사기관을 주식회사처럼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기관으로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런 주장에는 "고고학은 순수학문이지 사업이 아니다"는 등의 반론 또한 만만치 않은 실정이다.
정작 큰 논란이 될 수 대목은 매장문화재지리정보시스템(GIS) 조기 도입 문제라고 할 수 있다.
GIS(Geographic Information System)란 전국 각지의 지상과 지하 문화유적 정보를 DB로 구축하고 유적 정보와 지리정보를 통합한 시스템으로, 문화재청은 GIS가 완성되면 현재와 같은 매장문화재 지표조사는 필요가 없거나, 그 업무 상당 부분을 덜어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이런 GIS 구축 완료 시점을 당초 2011년으로 예상했으나, 이를 올해 안으로 앞당기겠다는 것이다.
고고학계는 문화재청의 이런 방침을 사실상의 '지표조사 폐지'로 받아들이고 있다.
고고학계 인사들은 "GIS가 매장문화재 분포상황을 담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으며, 땅 속 사정은 파 보기 전에는 누구도 알 수가 없다"며 지표조사는 이 시스템 구축 완료 이후에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국고고학회장을 역임한 숭실대 최병현 교수는 "GIS 구축 완료시점을 갑자기 몇 년 앞당긴다는 발상 자체가 어불성설이며, 설혹 그렇게 된다고 해도 졸속으로 만든 GIS 자료가 매장문화재 보호와 조사에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면서 "그럼에도 지표조사 절차를 생략하고자 하는 (문화재청의) 저의가 의심스러우며, 조만간 이에 대한 고고학계 전체의 의견을 수렴해 내놓겠다"고 말했다.
문화유산정책연구소 황평우 소장은 "최근 정부와 지자체, 건축주 등이 앞세우는 경제개발 논리에 밀려 문화재가 더욱 더 설 땅을 잃어가면서 개발을 가로 막는 '전봇대'처럼 취급되고 있다"면서 "개발이 문화재 때문에 가로막히거나 방해되는 것이 아니라, 그런 개발 때문에 문화재가 파괴된다는 각성을 먼저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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