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이경욱 편집위원 = # 장면1 : 최근 만난 모 금융공기업의 최고경영자(CEO)는 재신임을 앞두고 "모르겠어. 일만 열심히 하고 있지"라고 말했지만 뭔가 어색함을 감추기 어려운 표정이었다. 그를 알고 있는 주변의 인물들은 그가 '스테이(stay. 유임)할지 짤릴지'에 초미의 관심을 두고 있다. 당장 자신들의 이해와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그 CEO의 부하직원들도 CEO의 인사 동향에 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간부는 간부대로, 하급직원들은 그들대로 들떠 있기는 마찬가지다. 그 CEO는 애써 태연한 척하면서도 초조한 모습을 감추지는 않았다.
# 장면2 : 또다른 모 금융공기업 CEO는 "현 정부가 옥석(玉石)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 아니냐. 그냥 기계적으로 물갈이를 하려든다면 이는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일"이라고 불편한 심기를 털어놨다. 노무현 정부 때 임명됐다고, 그 때 신임을 받았다고 무턱대고 '자르고' 다른 인물을 앉히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는 입장도 개진했다. '논공행상'도 좋고 '보은(報恩)'도 좋지만 대외신인도에 영향을 주는 금융공기업 CEO를 마구잡이로 흔들어서는 안된다고 지적하기까지 했다.
# 장면3 : 전광우 금융위원장은 최근 "관료출신 가운데 역량이 탁월한 분도 있다. 공기업 경영자로서 손색이 없는 인물도 있는 것도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의 '관료 배제론'에 힘이 실려 있어 관료 출신 금융공기업 CEO는 이래저래 눈칫밥을 먹고 있는 처지다. 이미 '내놓은 목숨'의 금융공기업 CEO들은 그의 발언이 반갑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시장은 그의 발언이 오히려 혼선을 부채질하는 데 한몫하고 있음을 지나치지 않고 있다.
금융공기업을 포함한 공기업 CEO들의 물갈이가 논란 속에서 시간을 끌고 있는 모습은 국가경쟁력 차원에서 볼 때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경영상 큰 해악을 끼쳤거나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저질러 해당 공기업 직원은 물론이고 국민 모두가 "저 인물은 곤란해"라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고 그에 따라 이뤄지는 물갈이라면 그 누구도 탓할 게 없다.
하지만 정권 교체기 정치 바람이 폭풍이 돼 공기업에 휘몰아친다면 그에 다른 여파는 꽤 오래 지속될 것이다. 결과적으로 경영 불안의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경영 성과 등을 물갈이의 분명한 잣대를 정했으면 신속하게 이를 적용하는 게 차라리 바람직하다. '관료는 되고 비(非)관료는 괜찮고' 하는 식의 금융공기업 대상 이분법식 인사와 이리저리 휘둘려 표류하는 듯해 보이는 물갈이 인사 모습이 국가경쟁력과 대외신인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냉정히 생각해 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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