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연합뉴스) 조성대 특파원 = 중국이 25일 티베트 망명 정부의 지도자 달라이 라마측과 대화를 가지기로 전격 결정한 데는 100여일 앞으로 다가온 베이징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르기 위한 고심의 흔적이 엿보인다.
중국은 지난 3월14일 티베트(시짱.西藏)자치구 수도 라싸(拉薩)에서 분리 독립을 요구하는 대규모 유혈 시위가 발생하자 이를 강경 진압한후 달라이 라마가 배후조종한 폭동이라고 선전전을 펴며 사실상 대화의 문을 닫았다.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12일 보아오포럼 개막식 연설에서 "대화의 문은 열려 있지만 현재 대화와 접촉의 장벽은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달라이 라마측에 있다"며 "달라이 라마측이 조국 분열의 책동과 폭력선동의 계획, 그리고 베이징올림픽 방해 활동을 중단하면 우리는 언제라도 협상을 할 수 있다"고 전제 조건을 내세웠다.
중국 외교부는 이런 지도부의 방침에 따라 달라이 라마와의 대화를 촉구하거나 그와 만나는 데 대해 중국에 대한 내정간섭이라며 강한 반발을 보여왔다.
티베트 사태를 둘러싸고 주로 서방에서 망명 티베트인들과 이를 지지하는 국제인권단체들의 반중국 시위가 잇따르고, 베이징 올림픽 성화가 해외 봉송 과정에서 곳곳에서 수난을 겪는 등 티베트 사태가 일파만파로 번져도 중국의 강경 입장은 변하지 않는 것으로 비쳐졌다.
오히려 중국내에서 서방 언론의 `왜곡'보도 태도와 성화 봉송 저지에 대한 반발로 민족주의 불길이 거세게 타올라 국내외에서 반서방 언론 규탄대회와 프랑스 유통업체 까르푸 불매운동이 확산됐다.
그러나 중국 당국의 발목을 잡는 것이 있었다. 바로 베이징 올림픽에 대한 보이콧 협박이었다. 유럽연합(EU)과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은 중국에 달라이 라마와의 대화를 촉구했고, EU와 유럽 국가들은 올림픽 개막식 보이콧을 내세우며 압박을 가했다.
중국으로선 국가적 명운을 걸고 추진중인 올림픽 개막식에 세계의 정상들이 대거 불참하면 성공적인 개최에 먹칠을 하는 셈이어서 비상이 걸렸을 것으로 짐작된다.
중국측은 이날 원자바오(溫家寶) 총리가 마누엘 바로수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과 회담한 직후 달라이 라마측과의 대화 재개 방침을 발표, 회담에서 깊은 대화가 오갔을 것으로 관측된다.
바로수 위원장은 원자바오 총리와의 회담후 구체적인 내용을 밝히지 않은 채 티베트 사태와 관련 ,"긍정적인 진전들이 있다"고 말해 이를 뒷받침해주고 있다.
또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24일 프랑스 TV방송들과의 인터뷰에서 중국이 달라이 라마와의 협상을 준비하고 있다는 일부 징후들이 있다고 밝혀, 중국이 최근 서방측과 달라이 라마 문제에 대해 어느 정도의 공감대를 형성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이 달라이 라마측과 대화에 나섰다고 해서 단기간에 티베트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전망되지는 않는다.
사실 중국은 티베트 망명정부와 지난 20여년간 6차례 걸쳐 티베트에 대한 자치권 부여, 달라이 라마를 비롯한 망명 티베트인들의 복귀 등 문제를 놓고 비밀리에 협의를 벌여왔다.
양측의 간극이 너무 커 협상이 쉽게 타결될 분위기는 전혀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달라이 라마와 직접 협상할 필요성이 제기되기도 했다.
또 이번 대규모 유혈 시위 사태를 계기로 중국과 달라이 라마측간 간격이 더 벌어진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일단 대화의 문이 재개된 이상 길고 먼 터널 끝이 보이지 않더라도 그 길을 갈수 밖에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배적인 견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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