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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임형두 편집위원 = 부자가 되기와 부자로 살기. 이중 뭐가 더 힘들까? 가난한 사람들에겐 선뜻 이해되지 않을지 몰라도 '부자로 살기'가 더 어려운 것 같다. 취하기(take)는 쉬워도, 내주기(give)는 생각처럼 잘 안된다.
돈이 많으면 저절로 부자가 되는 걸까? 또 어떻게 살아야 진정한 부자라고 할 수 있을까? 얼굴만 예쁘다고 여자가 아니라 마음이 고와야 여자라는 유행가처럼, 돈만 많다고 부자가 아니라 돈을 제대로 쓸 줄 알아야 진짜 부자라는 거다.
나라도 그러지 않던가. 국민소득이 올라간다고 그저 선진국이 아니다. 소득 증가에 걸맞은 정신 문화가 뒷받침될 때 비로소 명실상부한 선진국이 된다. 진정한 선진국이 어려운 것은 진정한 부자가 되기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다. 성장을 추구하긴 쉬워도, 분배를 외치기는 생각처럼 쉽지 않다.
그렇다고 볼 때 부자는 아무나 되는 게 아닌 듯하다. 물질이라는 외양과 정신이라는 내용을 두루 갖췄을 때 진짜 부자가 되기 때문이다. 국가 역시 성장과 분배라는 두 바퀴를 조화롭게 굴리지 않고서는 진짜 선진국이 되지 못한다.
부자론을 꺼낼 때마다 단골로 등장하는 사례가 경주최부잣집이다. 존경받는 부자로 한국판 '노블레스 오블리제'를 실천한 명가(名家)여서다. 부자가 3대를 넘기기 힘들다는 옛말처럼 창업보다 수성이 더 어려운 법인데, 경주최부자집은 무려 12대에 걸쳐 만석꾼 집안의 영예를 누렸다.
경주최부잣집이 오래도록 부를 쌓고 존경받은 데는 비결이 있었다. 부자의 철학이 있었고, 적선(積善)이라는 정신적 뿌리가 있었다. '좋은 일을 한 집에는 반드시 경사가 있다'(積善之家 必有餘慶)는 사실을 잘 보여준 게 바로 경주최부잣집이다.
이 집안의 부와 명예를 지탱해준 두 기둥은 집안을 다스리는 제가의 가훈 '육훈'(六訓)과 자신의 몸을 닦는 수신의 가훈 '육연'(六然)이었다. 이 비밀 열쇠가 없었다면 300년 간 부와 명예가 이어오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육훈'은 진사 이상의 벼슬을 하지 마라, 만 석 이상의 재산을 모으지 마라, 만 석이 넘으면 사회에 환원하라, 흉년에 땅을 사지 마라, 과객은 후히 대접하라, 사방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는 내용으로 돼 있다.
이는 상생(相生) 정신을 바탕으로 한다. 남이 잘 살아야 나도 잘 산다는 호혜와 상호의존의 지혜다. 남은 나를 위해 있다는 상극(相剋)과는 근본부터 다르다. 상극의 세상에는 단절과 대립밖에 없다. 부자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한 게 바로 '육훈'이다.
'육연'은 스스로 초연하게 지내고(自處超然), 남에게는 온화하게 대하며(對人靄然), 일이 없을 때는 마음을 맑게 가지고(無事澄然), 일을 당해서는 용감하게 대처하며(有事敢然), 성공했을 때는 담담하게 행동하고(得意淡然), 실의에 빠졌을 때는 태연히 행동하라(失意泰然)다.
'육훈'과 '욕연'을 대하다 보면, 참 부자는 멋진 품격의 대인(大人)이라는 생각이 든다. 가진 자의 책임의식과 솔선수범이 따르기 때문이다. 그만큼 내적 기반이 탄탄하다는 뜻도 된다. 이는 "(단순한) 부의 축적은 가장 저급한 우상 숭배에 불과하다. 인간에게는 사회를 위한 부의 환원이라는 숭고한 우상이 있어야 한다"고 했던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의 말과 상통한다.
한국 최대 부자인 삼성가가 혹독한 시련기를 맞았다. 삼성특검을 받은 삼성그룹의 이건희 회장은 22일 일선 퇴진 등의 경영쇄신안을 발표해 나라 안팎에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이병철 전 회장이 1938년에 삼성상회를 설립한 지 꼭 70년 만이다.
쇄신안을 놓고 진정성과 효과에 대해 찬반 양론이 있으나, 아무튼 '부자가 3대를 넘기기 힘들다'는 말을 다시한번 실감케 한다. 이병철-이건희-이재용으로 이어지는 승계 과정에서 간단치 않은 고비를 만났기 때문이다. 이는 정주영-정몽구-정의선으로 이어지는 현대가도 비슷하다. 현대가 역시 비자금 조성 혐의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이들이 겪는 진통은 시대의 귀감이 될 진정한 부자상이 무언지를 묻고 있다. 무한자기확장본능을 갖기 쉬운 기업과 기업인에게 경주최부잣집의 '육훈'과 '육연'은 온고지신의 가르침을 무겁게 안겨준다. 부자의 금도와 사회책임 말이다. 자본주의는 결국 인간주의와 균형을 이룰 때 가치가 더 빛나는가 보다.
ido@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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