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구 "민간 힘 못믿는 좌파정권 관성 고쳐야"
(서울=연합뉴스) 이승우 기자 = 새 정부 초기 당정 관계에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추가경정예산 편성 등 정부가 추진하는 주요 정책방향에 대해 여당인 한나라당이 제동을 거는 일이 잦아졌고, 일부 당직자들은 정부의 정책 접근 방향과 시각 자체를 노골적으로 문제삼고 있다. 몇몇 서민 정책의 경우 여당이 정부 측에 "빨리 내놓으라"고 독촉하는 모습도 눈에 띈다.
이는 한나라당이 정부를 상대로 초반부터 기선을 제압해 당정관계에서 확고한 주도권을 쥐려는 제스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른바 `군기 잡기'에 나선 셈이다.
◇이한구 "3가지가 부족" = 총대는 여당 정책을 총괄하는 이한구 정책위의장이 멨다.
이 정책위의장은 23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정부가 여러가지 면에서 나름대로 선진국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지만 국민의 눈에 비춰봤을 때 부족한 게 세 가지 있다"고 `쓴 소리'를 했다.
그는 먼저 정부의 추경편성 방침을 겨냥해 "시장의 힘에 의해 경제를 운영하기 보다 정부의 힘에 의해 직접적인 효과를 겨냥한 접근방법을 취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런 성향은 고쳐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는 또 혁신도시 재검토 논란과 관련, "지방 문제에 대해 너무 소홀히 대하고 있다. 혁신도시와 같은..."이라면서 "평소 (돈)있는 사람, 괜찮은 사람들 지역 얘기는 자주 나오면서 정말 어려운 지방정책은 잘 안 나오는 상황에서 루머가 나오니 걷잡을 수 없이 된 것을 정부는 인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중산층 이하 서민들과 중소기업, 취약계층과 관련한 정책이 기대만큼 빨리 나오지 않고 있다"면서 "당이 이를 열심히 보완하려 하고 있는데 정부의 태도에는 그런 것들을 적극 나서서 뭔가 조치를 취하려는 태도가 부족하다"고 질타했다.
그는 전날 정부가 추경 편성안을 의결했을 때도 " 한나라당이 무엇을 하느냐는 정체성에 문제가 생길 수 밖에 없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한 바 있다.
강재섭 대표도 평화방송 라디오에 출연해 "(추경 문제를) 계속 협의하겠다. 금주에도 만날 기회가 몇번 있으니 협의를 계속하려고 한다"며 정부를 설득하겠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한나라당이 이처럼 정부와의 관계에서 `까칠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은 `강부자 내각', 혁신도시 재검토 논란 등으로 서민 지지층의 급격한 이반 현상이 나타나면서 당 지지율이 계속 떨어지고 있는 점을 우려한 측면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정협의 `삐걱' = 이 정책위의장은 이날 오후 국회에서 열린 당정 협의회에서도 이 같은 `3대 문제점'의 보완을 요구하며 부처 관계자들을 질타했다.
이 정책위의장은 인사말에서 "지난 10년 동안 좌파 정권이 집권하는 과정에서 공무원도 좌파정권의 철학에 대응하느라 행정에 관성이 붙었을 것"이라며 "민간 힘을 믿지 못하고 지자체의 자율성을 안주고 매사 중앙집권에서 빨리 가시적으로 보이게 하려는 성향이 아직도 매우 강하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여권이 혁신도시를 원점에서 재검토한다는 루머가 돌고 있는 것과 관련해 "지방 사정에 대해 너무 무관심하고 대책이 소위 `현지적합적'이지 못하다. 조금 더 적극적으로 지방의 어려움에 대해 대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또 그는 "정부 정책을 보면 서민생활 개선이 손에 잡히는 게 없고 심지어 한나라당이 총선공약으로 중소기업 특별지원, 취약계층 지원 프로그램 등을 낸 것도 행정 차원에서 반영하려는 것인 지를 모르게 돼 있다"고 지적했다.
시작부터 미묘한 기류가 흘렀던 만큼 당정은 이날 협의회에서 100여 개의 법안을 논의했으나 곳곳에서 이견이 노출되면서 대부분 결론을 내지 못했다.
특히 당은 국가재정법을 개정해 추가경정 예산안을 통과시켜 달라는 정부의 요구를 일거에 거절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이 정책위의장은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추경은 정부가 백날 올려봐야 통과시켜주지 않을 것이다. 꿈 깨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당이 처리 필요성을 강조한 각종 감세 및 민생 관련 법안들에 대해서는 정부가 강하게 난색을 표했다는 후문이다.
당은 기업 관련 감세법안과 생필품 특소세 면제법, 장애인 LPG 특소세 면제법, 신용카드 매출 세액공제 확대법 등의 조속한 처리를 요구했으나 정부는 세수 감소를 이유로 반대한 것으로 전해져 향후 당정 협의가 순탄치 않을 것임을 예고했다.
또한 국방부가 추진중인 군복무 가산점 부여 법안 등은 여성부가 반대하는 등 부처 내에서도 이견이 노출됐다.
당정은 오는 26일 다시 협의회를 갖고 18대 국회에서 시급히 통과시켜야 할 법안들에 대한 조율을 재개할 예정이다.
lesli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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