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현경숙 기자 = 작년 10월29일 삼성그룹 법무팀장을 지냈던 김용철 변호사는 자신 명의의 계좌에 50억원대의 현금과 주식이 들어있다며 이는 삼성그룹이 불법으로 조성한 비자금이라고 폭로했다.
거대 삼성그룹의 '컨트롤 타워'라고 할 수 있는 전략기획실의 핵심보직 중 하나인 법무팀장을 지낸 인물의 삼성 비자금 폭로는 삼성이나 기업계에 큰 충격을 준 것은 물론 우리 사회 전반에 일파만파의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김 변호사는 이후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과 함께 수차례의 기자회견이나 언론 인터뷰를 통해 삼성의 비자금 조성, 정.관계 및 검찰 대상 로비, 불법 경영권 승계 등에 대해 추가 폭로를 계속했다.
이때문에 검찰에는 삼성 비자금 특별감찰.수사본부가 설치됐고 로비의 대상이 됐다고 주장된 정부의 주요기관들은 김 변호사의 주장이 근거없는 것이라며 결백을 주장하고 나서기에 이르렀다.
검찰, 정치권, 관계가 얽힌 삼성 비리.부정에 대한 김 변호사의 주장은 지난해 12월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과 사회 전체를 들끓게 만들었으며 국회는 마침내 지난해 11월 23일 '삼성 비자금 특검법'을 의결했다.
특검법에 따라 올해 1월 10일 조준웅 특별검사팀이 출범했으며 특검팀은 사상 처음으로 이건희 회장 집무실인 승지원, 자택, 그룹 전략기획실이 위치해있는 삼성전자 본관 등을 잇따라 압수수색했다.
특검팀은 삼성증권, 삼성SDS, 삼성화재, 삼성생명 등 관련 계열사를 비롯해 용인에버랜드 미술품 창고를 압수수색했으며 이 과정에서 이건희 회장의 부인인 홍라희 여사도 비자금을 동원한 미술품 구입 혐의를 받았다.
특검이 진행되면서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CB) 배정의 핵심인물인 허태학 전에버랜드사장과 박노빈 에번랜드 사장이 소환된 것을 비롯해 이학수 전략기획실장, 김인주 전략기획실 차장, 이기태 삼성전자 부회장, 이수창 삼성생명 사장 등 삼성의 핵심 경영진이 줄줄이 특검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
이 회장의 외아들인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 홍여사도 검찰 소환 대상에서 제외되지 못했으며 특검 조사가 막바지로 치닫던 이달 4일과 11일에는 이 회장 자신이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
김 변호사의 거듭된 폭로와 특검이 진행되는 동안 삼성은 그룹의 전략 경영이 '올스톱'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비자금, 로비, 경영권 승계 등 하나같이 폭발적인 사안을 한꺼번에 건드린 김 변호사의 폭로에 대해 삼성은 '창업 이래 최대의 위기'로 느끼고 폭로와 특검에 대응하는 데 그룹 전력을 집중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지난해 11월 19일 고 이병철 회장 타계 20주년 행사에 이 회장이 감기, 몸살을 이유로 참석하지 못했으며 지난해 12월 1일 이건희 회장의 취임 20주년 기념 행사도 무산됐다.
매년 연말연초에 단행되던 신년도 사업계획 수립, 정기 사장단 및 임원 인사 등은 아직도 이루지지 않은 상황이며 사업계획 미정, 인사 지연 등은 삼성의 공격 경영을 실종시키는 원인이 됐다.
특히 그룹 계열사 중 전자, 전기 부문은 업종 특성상 적기의 의사결정과 투자 집행이 향후 1-2년 뒤의 기업 수익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이같은 상황은 향후 삼성전자가 글로벌 무대에서 후퇴하는 계기로 작용하지 않느냐는 우려를 불러일으켰다. 특검 사태로 인한 국제적 이미지 훼손도 삼성에는 큰 타격으로 작용했다.
이에 경제단체, 삼성 협력업체 등은 삼성 특검의 장기화에 반대하고 조기 종결을 공개적으로 요구하고 나서기도 했다.
그러나 삼성이 한국 사회에서 차지하는 위상과 비중 등에 관해 많은 관심을 갖게 했던 이번 사태는 삼성의 지배구조와 사업 관행 등에 관해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높였다.
사회 각계는 삼성이 이번 사태를 계기로 '환골탈태'해 국민으로부터 진정으로 사랑받는 기업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주문했고, 이는 한국 재계의 투명성과 기업관행이 한단계 업그래이드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모았다.
이 과정에서 이 회장 퇴진, 그룹 지배구조 개선, 세금을 제대로 내는 경영권 승계에 대한 요구가 터져나왔다.
삼성이 22일 발표한 이 회장 퇴진, 전략기획실 폐지, 삼성카드의 에버랜드 주식 매각을 통한 순환출자 고리 끊기, 이학수 전략기획실장 퇴진 등은 이같은 요구를 상당부분 수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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