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연합뉴스) 김현준 특파원 = 시각장애가 있는 데이비드 패터슨 미국 뉴욕주지사의 고위 보좌관들은 하루 일과를 마감할 때에 매일 한 곳에 전화를 한다.
패터슨 주지사의 다음날 일정과 현안, 그가 만나야 할 사람들의 신상에 관한 것 등을 전화에 남겨 녹음해 둬서 패터슨 주지사가 저녁에 들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미국의 다른 주지사들이 두꺼운 브리핑 서류나 이메일 등으로 보좌진들의 보고를 받는 반면 시각장애인인 패터슨 주지사는 이같이 보좌진들이 녹음해 둔 것을 듣는 것으로 다음날의 업무를 파악한다. 보좌진들은 그의 전화를 '배트폰'이라고 부른다.
뉴욕타임스(NYT)는 성매매 추문으로 사임한 엘리엇 스피처 전 주지사 후임으로 지난달 17일 취임한 패터슨 주지사가 어떻게 업무를 보고, 주 정부 관계자들도 어떻게 그에게 맞춰 가고 있는지를 21일 소개했다.
신문에 따르면 보좌진들은 정해진 전화로 5분 정도씩 주요 사항들을 보고해놓지만 패터슨 주지사가 저녁에 관저 등에서 이를 다 들으려면 몇시간이 걸린다.
패터슨 주지사는 "어제는 각각 5분짜리인 메시지가 43개가 있었다"면서 이를 모두(총 215분) 들으려면 3시간도 넘게 걸린다고 말했다. 패터슨 주지사는 이날 새벽 1시까지 녹음된 보고들을 들었지만 다 듣지는 못했다.
패터슨 주지사는 20년간의 오랜 생활로 주의회 건물 내에서 빠른 속도로 걷는 등 평소 시각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게 행동한다. 그러나 그의 왼쪽 눈은 전혀 안보이고 오른쪽 눈도 색과 큰 물체만 볼 수 있다. 그같은 장애를 가진 그에게 맞추기 위해 뉴욕주 주도인 알바니의 주정부는 내면적으로 여러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그는 연설시 프롬프터를 읽을 수 없기 때문에 보좌진들이 녹음해 둔 내용을 몇 번씩 들어 기억한 뒤 이를 토대로 연설한다. 분량이 많은 서류나 책들은 다른 사람들이 거의 들을 수 없을 정도인 빠른 속도로 들려주는 특별한 녹음기를 통해 내용을 듣는다.
그가 호텔이나 학교 등 대중들이 많이 모이는 행사에 참석할 때는 경호원들이 그의 등이나 팔에 손을 대고 부드럽게 길을 인도한다.
걷는 도중에 아는 사람을 만날 경우 그는 측근들에게 그가 누구인지 속삭여서 알려주지 말고 일상적인 목소리로 얘기해주도록 하고 있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인사를 나누는 것처럼 보이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는 주지사 관저의 구조를 파악 중이다. 그는 관저의 모든 것을 파악하겠다면서 40개가 넘는 방의 가구를 이동시키지 말 것을 보좌진들에게 주문하기도 했다.
패터슨 주지사는 끊이지 않는 일정을 포함해 업무가 워낙 많은데 대해 "매일 따라 잡아야 하는 큰 경기를 치르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 말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june@yna.co.kr
(끝)
ⓒ 미디어워치 & mediawatch.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