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이명박 대통령과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일본 총리가 정상회담에서 `미래의 비전을 중시하는 한일 간 신시대'라는 화두를 던졌다. 이 대통령의 말마따나 과거를 잊을 수는 없지만 과거만 붙들고 있어서는 더 나은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 이는 인간사에서나 국가 간의 관계에서나 두루 통하는 진리다. 다가오는 태평양시대의 빼놓을 수 없는 주역인 한국과 일본이 미래지향적 신시대를 개척하지 못한다면 당사자인 두 나라는 물론이고 동북아와 국제사회에도 커다란 손실이 아닐 수 없다.
문제는 실천이다. 자칫 수사(rhetoric)밖에 남지 않는 게 외교다. 서로 체면을 차리고 의전을 챙겨야 하는 정상회담은 더 그렇다. 한국과 일본이 `가깝고도 먼 이웃'에서 `가깝고도 가까운 이웃'으로 다가서야 한다는 명제는 수없이 되풀이됐고 그에 따른 수사도 무수히 남발됐다. 하지만 한일 두 나라가 진정한 선린(善隣)으로 거듭나고 있는가는 의문이다. 두 나라는 아직도 과거사와 일본의 역사교과서 문제를 놓고 얼굴을 붉히고 있고 갈수록 확대되는 무역 역조를 해결해야 하며 독도 문제에서도 이견이 여전하다. 국익이 걸린 만큼 쉽게 양보할 사안들이 아니나 자기 입장만 고집해서야 발전이 있을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과거사라는 `지뢰'부터 제거하려는 이 대통령의 시도는 함의하는 바 크다. 양국은 이전에도 관계 개선 의지를 표명한 게 한두 번이 아니나 과거사 문제만 불거지면 앞서의 합의는 말짱 헛일이고 양국 관계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악순환이 이어지곤 했다. 이 대통령은 재일동포 리셉션에서 "일본에 대해 만날 사과하라고만 요구하지 않겠다"며 과거에 집착하지 않고 양국 관계에 새 지평을 열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그렇다고 일본이 `과거사 문제는 이제 끝났다'고 속단해서는 곤란하다. 우리가 과거사를 완전히 묻어 버리고 일본에 면죄부를 준 것은 결코 아니며 "과거에 마음 상한 일을 갖고 미래를 살 수 없다"는 이 대통령의 실용외교 정신을 살린 것뿐임을 직시해야 한다. 일본도 호혜 정신을 발휘해 양국 관계 발전의 걸림돌을 들어내려는 노력을 행동으로 옮길 필요가 있다. 일본인 피랍자 문제에 그렇게 매달리면서 수십 만 일본군 성노예 문제에는 눈과 귀를 막는 이중적인 잣대로 국제사회의 지탄을 받는 것은 일본 같은 대국이 취할 태도가 아니다.
정상회담이 수사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 성과로 이어지려면 `행동계획(action plan)'이 필요하다. 이번 정상회담이 양국 관계를 `성숙한 동반자 관계'로 격상시킬 토대를 마련했다고 평가받는 것도 구체적인 조치들이 제시됐기 때문이다. 우선 양국 정상의 `셔틀외교' 복원이 돋보인다. 양국 정상이 당일 또는 1박2일의 짧은 일정으로 편하게 만나다 보면 아무리 어려운 난제도 길이 열릴 것이다. 3년 만에 재개되는 `셔틀외교'가 올해에만 5~6차례나 열린다니 참여정부 후반의 1년4개월 동안 양국 정상회담이 한 번도 이뤄지지 않았던 것과는 천양지차다. 젊은 세대 교류 대폭 확대, 자유무역협정(FTA) 실무회의 6월 개최, 일본 부품.소재 기업 전용공단 한국 내 설치, 6자회담 공조 등도 같은 맥락이다. 이 대통령과 후쿠다 총리는 이번에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 구축에 절호의 모멘텀을 제시했다. 이 모멘텀을 잘 살려 가시적인 성과를 내는 게 양국 정부와 국민에게 남겨진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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