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통해 위안부 고통 공감할 수 있길"
(서울=연합뉴스) 고미혜 기자 =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의 실상이 잘 알려지도록 한 것은 뉴스나 통계자료가 아니라 안네 프랑크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연극이었습니다. 이 연극이 일본군 위안부의 실체를 더 알리고 공감을 이끌어내는 데 기여했으면 합니다."
미국 극작가 라본느 뮬러가 위안부 문제를 다룬 희곡 '특급호텔'(4.30-5.5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의 국내 공연에 맞춰 한국을 찾았다.
뮬러는 21일 서울 대학로 서울연극센터에서 기자 간담회를 갖고 '특급호텔'이 담고 있는 메시지를 소개했다.
"'특급호텔'은 전쟁에서 희생된 여성의 고통에 관한 연극이면서 동시에 전쟁의 고통을 보여주는 반전연극입니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반전 문학은 남성에 대한 것이었는데, 여성을 통해 반전을 얘기하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고 싶습니다."
역사적 아픔을 담아낸 희곡을 주로 써왔던 뮬러는 1990년대초 일본에 체류하던 중 일본군 위안부에 관한 이야기를 처음 접하고 여기에 시적 상상력을 발휘해 '특급호텔'을 완성시켰다.
'특급호텔(Hotel Splendid)'라는 제목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 위안부 막사의 실제 이름이다.
위안부 여성 네 명이 자신의 고통스러웠던 경험을 이야기하는 내용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일본 군대에 유린 당하고 성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었던 네 여인의 삶을 호소력 있게 그려냈다"는 평가와 함께 미국 아칸소주립대학이 주관하는 2001년 국제평화상을 받기도 했다.
그는 외국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일본군 위안부의 실상을 알리는 데 연극만큼 효과적인 수단이 없다고 말했다.
"아픈 역사는 그것을 잊어버린 사람에게는 반복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관객들이 살아있는 배우들과 함께 하는 두 시간의 여정을 통해 '아, 이런 일이 있었구나'하고 생각했으면 합니다."
뮬러는 미국에서도 기회가 닿는대로 강연 등을 통해 일본군 위안부의 실상을 전해왔지만 그의 바람대로 연극을 통해 이를 전달하는 것은 사실상 이번이 처음이다.
미국에서 두 차례 워크숍을 갖고 관객들의 충격과 호응을 이끌어냈으나 민감한 사안인 만큼 제작자들이 꺼려 본격적으로 공연되지 못한 것.
서울연극제의 공식 참가작으로 올려지는 이번 한국 작품이 사실상 '특급호텔'의 세계 초연인 셈이다.
뮬러는 "배우들의 멋진 연기와 훌륭한 연출에 무척 기뻤다"고 한국 공연을 미리 본 소감을 전하며 "(한국 공연을 연출한) 박정의 연출이 내 작품에 숨을 불어넣어줬다"고 말했다.
뮬러는 이번 방한 기간에 '일본군 성 노예 문제의 연극화'와 관련한 세미나와 각종 강연에 참석하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집회에도 참가할 예정이다.
20일에는 경기도 광주시의 나눔의 집을 방문해 희곡의 주인공인 위안부 할머니들과 교감을 나누기도 했다.
"할머니들이 연극 소개를 듣고 연극 전단지를 꼭 끌어안으며, 이 문제를 다뤄줘서 고맙다고 하더군요. 늘 생각해왔던 것을 직접 현실로 봐서 무척 중요한 시간이었습니다."
극단초인은 '특급호텔' 공연에 위안부 할머니들을 초청하는 한편 이번 공연을 통해 발생하는 로열석 수익의 50%를 나눔의 집에 기부할 예정이다.
mihy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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