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이상원 기자 = 이명박 대통령과 후쿠다 야스오 일본 총리가 21일 정상회담에서 한.일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재개를 위한 실무협의를 개최키로 합의함에 따라 한.일 FTA 협상의 재개 가능성이 높아졌다.
하지만 협상 재개를 위해서는 협상 중단 요인으로 작용했던 일본 측의 개방 의지가 실무협의에서 확인돼야 하고 협상이 재개돼도 타결까지는 농수산물, 개성공단 등 난제가 많아 험로가 예상된다.
1998년 11월 양국 통상장관들이 민간연구기관 간 공동연구를 하기로 합의하면서 추진된 한.일 FTA는 2003년 12월 22일 서울에서 제1차 협상을 시작, 2004년 11월 도쿄에서 6차 협상까지 했지만 일본 측이 농산물 등에 대한 개방 의지를 보이지 않아 협상이 중단됐다.
◇ 조바심 내는 일본
협상이 중단된 사이 한국이 미국과 FTA를 타결하고 유럽연합(EU)과의 FTA 협상을 진행하는 한편 중국과의 FTA도 추진하자 일본 측은 한.일 FTA 협상의 재개 필요성을 제기하는 등 협상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움직임을 보였다.
특히 한.미 FTA 타결 이후 일본 언론들은 통상협상에 소극적인 자국 정부를 비판하면서 한.일 FTA를 재개해야 한다고 촉구했으며 일본 정부도 총리나 관방장관의 입을 통해 협상 재개 의사를 내비쳤다.
일본 업계는 한.미 FTA가 타결되자 자동차, 디스플레이, 휴대전화 등 일본 주력 수출품의 최대 경쟁국인 한국이 미국에 관세 없이 수출하면 자신들의 경쟁력이 약화될 것으로 우려했다.
또 아세안 등 주변 국가 및 경제권과 FTA를 추진하고 있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라도 한국과 FTA를 빨리 체결해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
◇ 日 개방의지 확인돼야 협상 재개
한.일 FTA 협상이 재개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전제 조건들이 충족돼야 한다.
한국 정부는 한.일 FTA 재개 가능성이 거론될 때마다 협상 재개를 위해 일본 측과 협의할 용의가 있지만 FTA 협상 출범 당시 합의한 높은 수준의 포괄적 FTA를 지향한다는 기본원칙이 반드시 준수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번 중단된 협상을 다시 시작했다가 또 중단하면 양국 관계에 치명적인 손상이 오는 만큼 확실한 개방의지를 확인한 다음 협상을 재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측은 전제 조건으로 관심 사항인 일본 농수산물 시장 개방 수준 제고, 비관세 장벽 해소, 정부조달 시장 개방, 산업협력 및 개성공단 생산품에 대한 특혜 원산지 부여 등에 대한 일본 측의 확실한 개선 의지 등을 제시하고 있다.
이 대통령도 "한.일 FTA 문제를 협상하기 전에 기업 간 문제, 취약한 부분에 있어서의 협력이 전제되면 양쪽에 도움이 되는 그런 부분으로 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해 한.일 FTA에 앞서 양국 간 기술격차 및 무역적자 해소 등이 전제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 농산물.제조업.개성공단 난제 예상
협상이 다시 시작되면 농산물, 제조업, 개성공단 등이 난제가 될 전망이다. 농산물은 일본 측의 민감분야가 될 것이고 제조업과 개성공단은 한국 측의 민감분야다.
농산물 분야는 한국 측이 한.일 FTA를 통해 가장 기대한 분야다. 다른 국가나 경제권과의 FTA에서는 수비하는 쪽이었지만 일본과의 FTA에서는 공격적인 입장이다.
일본은 한국 농산물을 대규모로 수입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국가 중 하나이기 때문에 한국은 일본과 FTA를 체결하면 다른 FTA로 피해를 본 농민들에게 보상을 해 줄 수 있다.
하지만 일본은 농산물 분야의 개방에 부정적이다. 일본 정치권에는 `농수산족'으로 불리는 농어촌 출신 의원들이 버티고 있어 일본이 농산물 분야에서 대규모 개방을 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한국과의 FTA 협상에서도 56%만 개방하겠다고 주장했다가 결국 협상이 중단됐고 한국 측은 90% 이상을 개방해야 협상을 재개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제조업 분야에서는 일본과 한국 측 입장이 바뀐다. 제조업 분야에서 최고의 경쟁력을 자랑하는 일본 제품들이 무관세로 들어오면 그렇지 않아도 사상 최고 기록을 갈아 치우고 있는 대일 무역적자는 더 확대될 수 있다. 일본 업계가 한.일 FTA 협상의 재개를 요구하는 이유다.
대일 무역적자는 2006년 253억9천200만 달러, 2007년 298억8천만 달러로 2년 연속 사상 최대를 기록했고 올해 1.4 분기에도 83억700만 달러로 지난해 동기보다 14.1% 늘어났다.
산업연구원은 한.일 FTA로 관세.비관세 장벽이 철폐되면 대일 무역적자는 64억 달러 이상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에 따라 국내 통상전문가들은 부품.소재 분야에서의 투자협력이 이뤄진 이후 한.일 FTA의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개성공단에서 생산되는 제품을 한국산으로 인정하는 문제도 협상에 부담을 줄 수 있다. 북한의 미사일 사거리 안에 있는 일본 입장에서는 개성공단 문제를 단순하게 정치적 문제로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 한국경제 도약 vs 양극화 심화
한.일 FTA의 기대효과로는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이 함께 있다.
긍정적인 측면으로는 FTA로 무역이 증가하고 규모의 경제와 생산성 증대로 산업 구조조정이 촉진되며 제조업 분야에서 자원배분의 효율성 증대로 일본의 부품소재를 사용하는 국내 완성재 업체의 가격 경쟁력이 강화될 수 있다.
하지만 일본의 부품소재를 사용한 완성재 업체가 대부분 대기업이어서 제조업의 양극화가 심화돼 신성장 동력을 저해할 가능성이 있고 대일 무역적자가 확대되거나 만성화될 수도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T)의 김양희 연구위원은 "미래의 산업발전 방향에 맞게 협상을 체결하고 이에 필요한 협상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지적하고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합리적인 이해 조정과 국내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lees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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