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지난달 베이징(北京) 북미회동에서 이른 바 `초기단계 이행조치'를 수용하면 서면으로 체제 안전을 보장할 수 있다는 제안을 한 것으로 알려져 관심을 끌고 있다.
그동안 미국이 북한에 ▲영변 5MW원자로 가동중단 ▲가동중단 확인을 위한 IAEA
사찰 ▲핵프로그램 신고 ▲핵실험장 폐쇄 등의 이행을 요구했다는 사실은 알려져왔
지만 북한에게 해 줄 수 있다고 밝힌 상응조치의 내용은 구체적으로 전해진 게 없었
다.
미측은 다만 상응조치 차원에서 경제.에너지지원 등을 검토할 수 있다는 뜻을
밝혔지만 그 제공 시기와 구체적 내용물은 명시적으로 언급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
다.
때문에 북한이 그동안 줄기차게 직.간접적으로 체제보장을 요구해온 점을 감안
하면 북한의 초기 이행조치에 대한 미국의 `체제안전 보장'이 갖는 의미는 클 수 밖
에 없다.
북한은 미국의 제안에 대해 `돌아가 답을 주겠다'는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
다. 이후 북한이 중국을 통해 `회담이 열리면 논의하자'는 입장을 보여 결국 6자회
담이 성사된 것으로 알려진다.
북미 관계정상화의 초기 조치로 볼 수 있는 서면안전보장은 지난해 채택된 9.19
공동성명에 기초한 것이다.
9.19성명 제1항은 '미합중국은 한반도에 핵무기를 갖고 있지 않으며 핵무기 또
는 재래식 무기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공격 또는 침공할 의사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였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의 제안은 북한이 초기 이행조치 세트를 받아들이면 9.19성명에 담
긴 북한 체제 안전 보장을 `각서' 형태로 제공할 수있음을 표현한 것으로 정리된다.
문제는 북한의 반응이다. 만약 북한이 미국의 서면 안전보장에 대해 '말장난에
불과하다'는 판단을 할 경우 북미간 협상은 고비를 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반면 미국의 수뇌부가 참여하는 서면 보장서에 대한 '진정성'을 받아들일 경우
협상에 탄력이 붙을 가능성도 있다.
외교전문가들은 북한이 미국의 '서면 안전보장' 제안을 쉽게 받아들일 지 속단
할 수 없다고 전망하고 있다.
북한으로서는 어렵게 실시한 `핵실험'을 강조하면서 핵무기 보유국에 상응하는
더 큰 조치를 요구할 가능성이 높아 보이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이 요구하는 초기단
계 이행조치보다 더 낮은 '이행조치'를 역제안할 가능성도 있다.
통상의 핵폐기 4단계 절차인 동결-신고-검증-폐기 중 2단계까지를 요구하는 미
국의 제안보다 낮은 수준의 이행조치 만으로 서면 안전보장을 이끌어 내겠다는 속셈
을 드러낼 수 있다는 얘기다.
그리고 미국이 요구한 조치를 이행할 경우 구체적인 경제.에너지 지원까지 해달
라고 요구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미국 입장도 마찬가지다. 북한이 제안을 전면 수용하지 않는데도 서면 안전보장
을 쉽게 제공하려 할지는 불투명하다는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결국 이번 회담에서는 핵폐기 관련 1단계 조치인 북한의 핵시설 동결 및 동결에
대한 사찰, 미국의 서면 안전보장을 기본 거래품목으로 설정한 상태에서 서로 `덜
주고 더 받기' 위한 치열한 신경전이 펼쳐질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연합뉴스) 조준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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