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 김모(49) 씨는 최근 영화 `괴물'을 인터넷에서 다운로드받았다. 그는 두 가지에 놀랐다. 첫째는 개봉관을 떠난 지 얼마안되는 최신영화를 손쉽게 인터넷에서 다운로드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었고 둘째는 거액의 제작비를 들인 이 영화를 그것도 DVD로 출시되기도 전에 거의 무료로 다운로드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실상은 무엇인가. 서울시내 거리를 돌아다니다 보면 불법 복제해 DVD로 구운 영
화들을 파는 노점상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콘텐츠의 불법 복제, 불법 다운
로드, 불법 판매가 만연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콘텐츠 제작의 힘을 약화시
킨다. 좋은 콘텐츠를 제작해도 제값받고 팔기가 힘든 상황에서 콘텐츠 제작 산업이
활성화되겠느냐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좋은 콘텐츠를 만들어도 제작자가 당연히 챙겨야 할 돈을 못 챙기게 하는 유통
이 문제인 것이다.
◇ 불법복제 = 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KIPA)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불법 복제에
따른 경제적 손실은 약 8천535억원으로 추정된다. 부문별로 보면 영상이 2천725억
원,음악이 2천595억원, 게임이 1천587억원 등으로 추산됐다.
국내에서 국내외 콘텐츠를 불법 복제하는 것도 문제지만 해외에서 한국의 콘텐
츠를 불법 복제하는 것도 역시 문제다. 전문가들은 한류의 영향으로 우리의 온라인
콘텐츠의 해외수요가 급증하면서 해외 현지에서의 국내 콘텐츠 불법복제 피해도 심
각한 상황이라고 말한다.
최영호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전략기획본부장은 문화산업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
해서는 디지털 유통질서를 확립해 불법 복제를 방지해야 하며, 하나의 원작을 여러
모로 이용해 콘텐츠 제작자가 저작권으로 많은 돈을 벌게 하는 원소스멀티유즈 정
책이 필수라고 말했다.
최 본부장은 "우선 콘텐츠 유통은 저작권에 기반을 둬야 하며 저작권자에게 제
대로 값어치가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음악 파일의 불법 다운로드를
막기 위해 문화콘텐츠 식별체계(COI)를 음악파일에 부착해서 유통을 원활하게 하
고 불법 복제를 추적하는 것이 가능하도록 하는 방안이 도입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제는 영화 등 동영상도 문제다. 최 본부장은 "최근에 음악의 불법복제
는 많이 잡혔는데 영화 불법 다운로드가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면서 "영화의 불법
유통을 막고 저작권을 보호하는 기술을 연구중"이라고 말했다.
심상민 성신여대 교수(문화정보학)는 최근 `융합시대 디지털 콘텐츠 산업 활성
화 방안'을 주제로 미디어미래연구소가 주최한 세미나에서 "디지털 콘텐츠 시장이
신규 서비스의 등장과 유통채널의 확대로 지속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면서도
콘텐츠 시장 발전의 걸림돌로 불법복제 문제를 지적했다.
그는 "문제는 디지털 콘텐츠는 그만큼 불법 복제가 쉽다는 것이며, 불법복제 심
화에 따라 경제적 손실 및 피해가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라면서 "P2P(peer to peer:
인터넷에서 이루어지는 개인 대 개인의 파일 공유 기술 및 행위) 등 신기술에 대한
대응 미비로 불법 복제 문제가 확대되고 있다"고 말했다.
◇ 유통 = 심상민 교수는 "온라인 콘텐츠의 성장률(20%)이 전체 콘텐츠 시장 성
장률(15%)을 상회하여 점진적으로 오프라인 콘텐츠 시장을 대체하는 중"이라고 말
했다. 그는 새로운 유통채널로 IPTV, 위성 및 지상파 DMB, 와이브로 등을 꼽았다.
하나의 콘텐츠를 제작하면 과거에는 예컨대 지상파 텔레비전에서만 소비했으나
지금은 케이블TV, 위성TV, 위성 및 지상파 DMB, IPTV 등으로 다시 유통된다. 그러
나 여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 콘텐츠는 다시 인터넷상에서 여기저기 떠돌아다
니면서 수익을 창출한다. 즉, 각 방송사의 인터넷 사이트는 물론이고, 인터넷 포털이
나 동영상 전문 사이트 등을 통해 전체 또는 부분적으로 인터넷 이용자들에게 제공
되는 것이다.
송해룡 성균관대 신방과 교수는 그의 저서 `디지털 미디어, 서비스 그리고 콘텐
츠'에서 "인터넷을 통한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은 생산과 유통과정에서 정보와 물류
를 분리시킴으로써 비즈니스의 모습을 근본적으로 바꿔놓고 있다"고 말한다. 디지털
화된 콘텐츠는 그것이 영화이건, 사용자제작콘텐츠(UCC)건, 아니면 음악이건 간에
인터넷을 통해 수많은 복제본들을 순식간에 세계 어느 곳에라도 배포할 수 있게 됐
다.
송 교수는 인터넷을 통한 콘텐츠 유통시장의 특징으로 ▲ 시공간의 제약없이 전
세계를 대상으로 동시마케팅, 주문처리, 대금결제, 고객지원 등을 가능하게 함으로
써 비즈니스의 방식과 수단을 변화시키고 있으며 ▲ 가격 단일화 현상과 함께 새로
운 단일 세계시장을 형성할 수 있고 ▲ 인터넷 정보검색엔진 기능으로 가장 좋은 제
품을 쉽게 찾을 수 있다는 점 등을 꼽았다.
그러나 문제점도 있다.
심상민 교수는 "콘텐츠 유통 플랫폼의 핵심 기반이 될 기술 요소에 대한 정의와
단계별 확보 노력이 부진하고, 시장지배사업자인 유무선 포털의 유통 장악으로 콘텐
츠 제공사와의 수익 불균형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포털이 콘텐츠 유통의 핵이 되고 있다"면서 "포털의 막강한 능력 때문에
콘텐츠 만드는 시장이 제대로 대접을 못받을 수 있고, 이와관련한 포털과 콘텐츠 제
작자간의 갈등이 나타날 수도 있다"고 말한다. 그는 "현재의 유통시스템에서 다양한
참여자, 이해관계 당사자들이 서로간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시스템이 아직 몇몇 분
야에서 미흡하다"면서 "이것은 빨리 손질되지 않으면 미래에 갈등이 증폭될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동영상 사이트 엠군 등에 프로슈머(prosumer: 자기 사용과 만족을 위해 제
품, 서비스 또는 경험 등을 직접 생산하는 사람)들이 올린 UCC(사용자 제작 콘텐츠)
들이 많아졌는데 비즈니스 측면에서 보면 시장구조가 초창기이기 때문에 여러가지
이슈가 파생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일반 아마추어들이 만든 콘텐츠의 가치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 또 수익분배를 어떻게 할 것인지가 속히 연구돼야 한다"고 말
했다.
그는 한국의 콘텐츠 유통시장의 문제점에 대해 ▲ 콘텐츠의 분야와 내용이 심하
게 편재돼 있어 다양성에 문제가 있고 ▲ 양질의 콘텐츠가 부족하고, 그나마 있는
것들도 제값에 거래되지 않는 문제가 아직도 존재하며 ▲ 대부분의 콘텐츠 업체가
영세해 큰 유통시장에서의 경험이나 역량이 부족하고 ▲ 학생들의 학습과 관련한
콘텐츠 등 공적인 콘텐츠들이 제대로 유통되지 못한다는 것 등이라고 지적했다.
(서울=연합뉴스) 김대영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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