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의문사는 사건 관련자의 양심고백을 통해 해결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고 이번 진상규명은 이런 차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군의문사위)는 12일 과거 단순 사망으로 처리됐던 2건의 의문사에 대해 `구타에 의한 사망'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지난 1월 3년 시한의 대통령 직속 기구로 출범한 군의문사위가 거의 1년만에 처음으로 사건을 둘러싼 의혹을 걷어내고 실체를 밝혀내는 성과를 거둔 것이다.
이 같은 성과는 군의문사위에 200여건의 진정을 제기한 의문사 관련 유족들에게도 `진실의 빛을 볼 수 있다'는 희망을 불어넣어주고 있다.
의문사의 경우 진실을 밝히는 데는 무엇보다 당시 사건 관계자는 물론 목격자 등의 진술이 핵심이다.
군의문사위가 이번에 `구타 사망사건'으로 결론 내린 2건도 예외가 아니다.
1980년대 강원도 제1야전군사령부 소속 야전부대에서 발생한 김모(당시 20세. 경기) 하사 사망사건의 경우 군의문사위에 조사를 제기한 진정인은 유족이 아닌 구타현장을 목격했던 당시 동료였다.
이 동료의 진술을 근거로 군의문사위는 김 하사가 군당국의 조사대로 회식 후 구토로 기도가 막혀 질식사한 것이 아니라 선임 부사관의 구타에 의해 사망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또 가해자인 A하사를 찾아내 자신의 구타로 인해 김 하사가 사망했을 가능성을 시인받는 한편, A하사가 이후 20여년을 죄책감에 시달리며 살아왔다는 진술도 얻어냈다.
1996년 강원도 모 교도대 경비교도대원으로 근무하다 구타와 각종 가혹행위를 견디다 못해 자살한 박모(당시 21.서울) 이교(이등병에 해당)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당시 동료 등의 증언이 없었다면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게 군의문사위의 설명이다.
의문사 사건의 이런 특성 때문에 향후 군의문사위의 조사는 여전히 난관이 산적해 있다.
무엇보다 국방부 등 관련부처에서 자료제공 등을 통해 적극 협조하고 있지만 과거사, 특히 1990년대 이전에 발생한 의문사의 경우 당시 사건기록이 미비해 증거 확보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또 전국 곳곳에서 생업에 종사하고 있는 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조사도 상당한 시간과 인내가 필요하다.
사건 관련자에 대한 강제조사권은 물론, 직권조사권도 없다. 단지 3차례의 소환에도 불구하고 불응할 경우 1천만원의 과태로를 부과할 수 있을 뿐이다.
이번 사건처럼 사건 관련자들의 증언과 양심고백을 이끌어 내기를 기대하기도 쉽지 않다.
군의문사위 김호철 상임위원은 "앞으로 사건 조사에 탄력이 붙어야 하는데 2건에 대한 진실규명에도 불구하고 탄력이 붙을 현실적 사유가 별로 없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는 또 "가장 바람직한 해결책은 관련자들의 진실고백"이라며 "피해자는 물론, 어떤 의미에서는 가해자와 목격자도 고통 속에 살아온 만큼 진실고백을 통해 모두가 아픔을 치료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7월 `군의문사진상규명 등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출범한 군의문사위에는 현재 282건의 진정이 제기됐으며 군의문사위는 이 가운데 164건에 대해 사전조사를 거쳐 본조사를 진행중이다.
군의문사위는 이번 조사결과를 토대로 이미 순직처리된 김 하사에 대해서는 국방장관에게 사망원인에 대한 재심의를, 박 이교에 대해서는 가혹행위와 구타가 자살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 점 등을 들어 법무장관에게 `공무상 사망'으로 심의해 줄 것을 각각 요청하기로 했다.
김 하사는 이미 순직처리에 따른 국가유공자 대우를 받고 있기 때문에 특별한 후속 혜택은 없을 것으로 보이지만 군의문사위의 `구타 사망' 결론은 김 하사의 명예회복과 유족들의 국가에 대한 보상청구 근거 등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군의문사특별법에는 `군의문사위는 피해자의 보상 및 명예회복에 관련해 필요한 사항을 국방장관에게 요청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군의문사위는 "국방장관도 법을 준수하는 국가기관의 수장인 만큼 의문사위의 요청을 받으면 적어도 답변 수준 이상의 적절한 조치를 할 의무가 있는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서울=연합뉴스) 이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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