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년 의사생활 아깝지만 어쩌겠어요…"
탈북자 김순희(43.가명.여)씨는 12일 서울 대치동 섬유센터에서 열린 '2006 새
터민 채용한마당'을 찾았다.
김씨는 북한에서 의과대학(6년 과정)을 졸업하고 19년 간 의사로 일하다 지난해
8월 입국했다. 하지만 북한에서 받은 의사자격증을 갖고 나오지 않아 남한에서 다시
의료업에 종사하지 못하고 있다.
"자격증을 보여줄 수 없어 의사국가고시를 볼 기회도, 의대에 편입할 수도 없었
어요. 예과에 입학해서 처음부터 다시 공부하라는데..그러면 10년을 또 기다려야 하
잖아요."
김씨는 어쩔 수 없이 '북녘 경력'을 접어두고 완전히 다른 분야로 취업을 준비
해야만 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회계 분야.
그는 "전문 사무직 가운데 회계 분야에 도전하기로 결심하고 올해 6개월 간 직
업전문학교에 다녔다"며 최근 중급 전산회계 자격증을 취득했다고 밝혔다.
지난 1년 간 남한 사회에 적응하기도 어려웠지만 생소한 전산.회계 용어나 시스
템을 이해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하루 5시간 수업이 끝난 뒤 자정까지 혼자 공부하기는 기본이었고 시험기간에는
2-3시간 쪽잠을 잤다. 김씨의 표현을 빌리자면 '밤을 팬(샌)' 날도 여러 차례.
직업학교에 마련된 특설반에서 '왕언니'인 김씨는 어린 급우들보다 더 열심히
공부할 수 밖에 없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그는 이번 취업박람회에는 병원 회계, 노무사 사무, 회계 전문기업 등에 원서를
냈다.
"지금 남녘에 의사 출신 새터민이 50명 이상인 것으로 알고 있어요. 하지만 의
료분야에서 일하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기회가 된다면 언제라도 다시 일하고 싶은
데.."
김씨는 여전히 아쉬움이 있지만 회계분야에서 열심히 일해 '북한 출신은 뭔가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면서 "한 살이라도 나이 더 먹기 전에 취업하고 싶다"
고 말했다.
김씨는 그러나 "새터민 취업박람회에 참여한 기업은 단순 사무직을 원하는 경우
가 대부분"이라며 탈북자들이 다양한 전문분야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폭넓게 주
어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자신의 경우처럼 북한에서 전문직 종사자가 남한에서 '단절'을 경험하는 경우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탈북자를 교육하고 있는 직업학교 관계자도 "매년 열리는 새터민 취업박람회는
참여 기업 수를 채우는 데 급급하고 수강생들도 '경험 차원'에서 참여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새터민의 취업 수요를 보다 정확히 파악하는 동시에 기업의 관심과 참여
를 독려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정부에서는 수강료를 지원하는 정도여서 새터민을 위한 특설반
운영이 거의 불가능하다"면서 "새터민의 취업 수요는 높아지는 반면 이들을 위한 취
업 프로그램은 줄어들고 있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관계자는 "구직 탈북자와 관심 기업을 연결하는 고리가 없다"며 "취업
박람회가 탈북자 취업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통일부와 노동부가 주최한 이날 '채용한마당'은 40개 기업이 참여한 가운
데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4시간 동안 열렸다.
(서울=연합뉴스) 함보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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