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아의 유전적 결함을 발견하지 못하고 충분한 검사를 권유하지 않아 `원하지 않는 아이'를 출산하게 했다면 의사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판결이 처음으로 나왔다.
서울서부지법 민사 11부(이현승 부장판사)는 12일 A씨 부부가 "임신중절을 하지
못하고 유전병을 지닌 아이를 출산하게 된 데 대해 3억원을 배상하라"며 서울 모 병
원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검사 담당자들은 A씨 부부의 자녀 5명 가운데 중절된 1명
을 제외한 나머지 4명이 유전자 결함으로 생기는 진행성 근위축증(SMA) 환자였기
때문에 태아가 같은 병을 앓을 확률이 높았음에도 정확도 97.5%의 검사를 신뢰하고
재검사 또는 추가 검사를 권유하지 않은 데 대한 과실이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A씨 부부가 적절하게 임신중절을 할 기회를 병원측이 빼앗았다는 점에
서 재산 및 정신적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지만 검사의 정확도가 97.5%로 신뢰도
가 높고 재검사나 추가검사 또한 오류 가능성이 있으며 추가 검사가 태아나 산모에
게 위험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 손해배상 책임을 70%로 제한했다.
A씨 부부는 2003년 10월 융모막 검사를 통해 태아의 유전자 검사를 받고 결손이
없다는 판정을 받은 뒤 출산을 결정했으나 아이가 SMA 환자라는 진단을 받자 병원
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SMA는 유전자 결함 때문에 척수 세포가 퇴화하면서 점차 근육이 위축되는 병으
로 ▲ 생후 6개월 이내에 증상이 나타나 2세 이내에 사망하거나 ▲ 6∼18개월 이내
에 증세가 나타나 10∼20대까지 생존하거나 ▲ 18개월 이후에 나타나 줄곧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등 세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이현승 부장판사는 "A씨 부부가 앞서 5차례 아이를 가졌는데 4명이 환자였다는
특수한 점이 있다"며 "병원측이 이들 부부의 가족력을 자세히 알고 있으면서도 설명
을 충분히 해주지 않고 심층 검사를 권유하지 않은 것이 주요 과실"이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장재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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