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공천을 둘러싼 이명박 박근혜 양측의 갈등이 깊어지고 있는 가운데 한나라당 총선기획단이 본격적인 활동에 착수, 양측의 힘겨루기가 어디로 튈지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우선 14일 이명박 당선자는 신년 연두회견에서 "강재섭 대표를 중심으로 당이 공식적으로 공천문제를 다루게 될 것"이라는 말로 당헌ㆍ당규에 규정된 '당권ㆍ대권' 분리 원칙을 지키겠다는 방침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그는 박 전 대표 측이 제기하고 있는 '밀실공천' 공세에 상당히 강도 높은 언급을 했다. 그는 "한나라당도 국민이 바라는 방법으로, 당에서 공정하게 공천문제는 잘할 수 있다고 본다"고 전제했으나 "당의 어느 누구도 개인적 이해나 계보의 이해를 떠나 협력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고 밝혀 사실상 박 전 대표를 겨냥한 것이다.
특히 당선자가 '계보'라는 단어를 언급함으로 박 전 대표 측 의원 32명이 모인 것을 지칭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그리고 '물갈이' 논란에 대해서도 우회적이긴 하나 그 필요성을 강조해 그의 내심을 살필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
그는 "이제 새로운 정부가 국정을 원활하게 수행하기 위해서는 국민으로부터 안정적 지지를 받는 숫자가 됐으면 좋겠다"라고 말한 뒤 "국민은 선거를 통해서 모든 분야가 변화되기를 원한다"고 강조한 것으로 박 전 대표 측의 대폭 교체가 사실상 불가피하다는 의지를 은연중에 드러낸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당선자 측 공세에 박 전 대표 측은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자세다. 박 전 대표는 이날 여성신문사에서 주최하는 '올해의 여성' 수상식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 당선인의 이야기를 들었다"며 "너무 당연한 이야기인데 어떻게 실천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맞받았다.
그는 특히 강재섭 대표에 대해 "당내에서 영남지역 물갈이 40%라는 이야기가 자꾸 나오고 있다"며 "강 대표는 일련의 이야기에 대해서는 모욕감을 느낀다고 이야기하지 않다가 내가 이야기하니까 모욕감을 느끼는 이유를 알 수가 없다"고 강 대표를 비난했다.
그리고 이어서 그는 "제가 할 이야기는 이미 다 했다. 이제 당에서 어떻게 하느냐만 남아 있다"고 말해 당 주류 측의 행태를 지켜본 뒤 행동에 옮길 것임을 내비쳤다. 그런데 박 전 대표는 전날인 13일 일부 지인과 만난 자리에서도 "난 모든 각오가 돼 있다. "고 말한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다시 이 당선자가 15일 강재섭 대표와 만난 자리에서 "비선 조직에서 공천 조직을 준비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이는 박 전 대표 측이 원하는 방향에 대해 원론적이나마 답변을 보낸 셈이다. 또 이는 또 박 전 대표가 "할 이야기는 다 했다. 당에서 어떻게 하느냐만 남아있다"고 한 지 딱 하루 만에 나온 당선자의 반응이다.
이에 대해 박 전 대표 측의 좌장 격인 김무성 최고위원은 "우리가 주장하던 것이므로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며 "당선인과 당대표가 방향을 잘 잡았고, 당에서도 그 뜻을 잘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박 전 대표의 또 다른 측근은 "이렇게 넘어갈 수 없다. (당선자의)측근들 이야기가 끊임없이 나오며 이를 해석하면 그 내용은 뻔한데 이를 믿으라는 말이냐, 말장난 같은 것이다"라며 "당선자의 말이 신뢰를 얻으려면 측근들에게서 어떤 말도 나오지 않도록 하고 또 비선들이 그런 행동을 못하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했다는 것을 밝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리고 이날 출범한 한나라당 총선기획단 첫 회의에서 박 전 대표 측이 공개적으로 반대한 당협위원장 전수 여론조사 실시 및 공천심사위원회 내. 외부인사 비율을 위원장을 포함한 외부인사 6명과 내부인사 5명으로 잠정 결정한 것에 대해 다시 비판을 쏟아냈다.
한 측근은 "외부인사 비율이 6명이라는데 외부 인사 가운데 중립이 어디 있느냐? 뻔한 것 아니냐? 중립을 가장한 당선자 측 외부 인사들이 과반을 점한 그런 공심위라면 해보나마나다"라며 "우리에게도 공심위 자리를 배분해야 한다. 그 결과를 보고 결심을 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때문에 향후 공천심사위 구성에서 박 전 대표 측 몫이 어느 정도 되느냐와 공천심사위원장에 어떤 인물이 뽑히느냐 등을 둘러싼 본격적인 `격전'이 불가피한 상황인 셈이다. 더구나 공천과 관련한 여론조사 부분에서는 대단히 민감하게 반응했다.
박 전 대표의 또 다른 측근의원은 이에 대하여 "여론조사는 공천신청을 받은 뒤 진행해야 한다. 그런데 만약 현재 당협위원장과 현역의원들을 상대로 여론조사를 하면 지금까지의 경험상 교체 의견이 높게 나올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며 "따라서 현직을 대상으로 하는 여론조사는 여론조사 자체가 살생부 작성을 위한 근거 마련으로밖에 볼 수 없다"고 비판했다.
한편 15일 한나라당에는 총선 의석수 분석 보고서가 나돌았다. 그리고 이 분석 보고서에 의하면 박 전 대표가 당에 잔류할 경우 243개 지역구 가운데 158석, 48% 득표율로 비례대표 27석을 획득, 총 185석의 의석을 확보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반면 박 전 대표가 탈당해 이회창 전 총재와 연대할 경우 지역구와 비례대표 각각 129석과 18석 확보에 그쳐, 과반 확보에 실패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 때문인지 유독 15일엔 위에 언급한 당선자의 얘기 말고도 이명박 당선자와 강재섭 대표까지 박 전 대표를 추겨 세우는 발언들이 도드라졌다. 이 당선자는 중국 후진타오 주석의 특사로 방한한 왕위 부부장과 오찬을 함께하는 자리에서 박 전 대표를 두고 차기 지도자라고 추겨 세우는가 하면 강재섭 대표 또한 ‘한나라당의 보배’ 운운하면서 박 전 대표를 극찬한 것이다.
이런 가운데 박 전 대표는 16일 이 당선자의 특사로 중국을 방문한다. 그리고 귀국한 다음 “모든 각오가 되어 있다”고 배수진을 친 발언 속에 담긴 ‘각오’가 어떤 듯인지 알 수 있는 행보를 보일 것인지가 주목되고 있다. 그가 정치생명을 걸고 진검을 빼어들 것인지가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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