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전 미국 펜실베이니아에서 방화로 딸을 숨지게 한 혐의로 복역중인 한국인 남성의 무죄가 입증될 것인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당시에는 모든 정황이 사건 조사관들에게 방화라는 확신을 갖게 하는 것이었으
나 이후 과학적인 분석이 발전하면서 과거에 방화를 판단했던 기준이 잘못된 것이었
음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1989년 7월29일 새벽 펜실베이니아주 먼로카운티에 있는 한 교회 캠프에서 화재
가 발생해 이한탁씨의 장녀 지윤씨가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한국에서 뉴욕으로 건너가 의류 사업을 했던 이씨는 가족을 데려오기 위해 주 6일씩
열심히 일한 결과 가족을 데려올 수 있었다.
그러나 1년여가 지나면서 딸이 조울증을 앓았고 목사의 권유로 이를 치유하기
위해 펜실베이니아의 이 교회 캠프에 머물고 있던 중 화재사건이 일어났다.
화재 조사관들은 불은 항상 위로 번지고, 정상적인 불은 천천히 번지지만 휘발
성물질 등에 의한 불길은 급속히 타오르고, 유리가 정교하게 깨지며, 높은 열로 침
대 등의 스프링이 내려앉고, 그을린 나무에 악어 등처럼 많은 기포들이 나타나는 현
상 등을 들어 방화로 결론짓고 이씨를 범인으로 지목했다.
소방대장을 겸임하고 있던 주 경찰관 토머스 존스는 당시 보고서에 "이씨는 거
의 감정이 없는듯 했고 그의 부인이 뉴욕에서 사건 현장에 뒤늦게 도착했을 때 그녀
를 위로하려는 노력도 보이지 않았다"고 기술했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한국의 남자들이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전통적으로 많은 감
정을 드러내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이씨도 "한국에서 남자들은 잘 울지 않는다"
며 "딸이 갑자기 죽었을 때 정신을 잃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고 말
했다. 이씨는 사건 당일 기도를 하다 지쳐 잠들었다. 타는 냄새 때문에 일어나보니
딸이 있는 방에서 불이 나고 있어 일단 밖으로 뛰어나갔다. 딸이 보이지 않아 다시
집으로 들어가 딸을 찾았지만 보이지 않아 딸이 이미 밖으로 나간 것으로 생각했다
고 주장했다.
그러나 사건 조사관들을 이미 방화라고 확신했고 재판에서 배심원들도 이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은 채 유죄 판결을 내렸다. 이후 항소에서도 이씨의 주장은 받
아들여지지 않았다.
펜실베이니아 법원은 이씨의 사건이 방화에 대한 잘못된 과학적 근거에 의해 이
뤄졌다는 주장을 계속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화재에 관한 연구들은 방화를 판단하는 기준에 대한 오래된 믿음이 잘못
됐음을 밝혀냈고 1992년 이후 화재예방협회의 화재.폭발 조사에 관한 지침에 과거의
믿음이 틀렸다는 것이 명시됐다.
화재연구소의 부소장이었던 리처드 커스터는 "그들이 나쁜 조사관이어서 그랬던
것은 아니다. 그 때는 그런 방식으로 밖에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제 71세가 된 이씨는 "절대 딸을 살해하지 않았고 불을 지르지도 않았다. 나
는 감옥에 있어야할 사람이 아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씨의 변호사는 11월27일 주
대법원에 항고했다.
(이스트스트라우즈버그<美펜실베이니아주>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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