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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소수민족에 대한 중국 정부의 탄압에 항의하는 시위에 참가했다가 해외로 피신했으나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 접경 지역에서 테러리스트로 몰려 관타나모 수용소에 구금됐던 위구르 이슬람교도 청년의 파란만장한 인생 역정이 스웨덴 정부의 망명 허가로 급반전됐다.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IHT)이 소개한 영화와도 같은 스토리의 주인공은 올해 33세인 위구르 이슬람교도 아델 압두 알-하킴.

하킴은 지난 1997년 위구르인에 대한 중국 정부의 탄압에 항의하는 시위에 참가했다가 공안에 체포돼 감금된 채 폭행을 당했다.

이후에도 위구르인에 대한 중국 정부의 학대와 차별이 계속되자 이에 염증을 느낀 하킴은 1999년 동료 아부 바케르 카심과 함께 중국을 탈출, 키르기스스탄을 거쳐 터키로 향했다.

하킴과 카심은 터키로 가던 도중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 접경 산악지대에 잠시 머물게 됐으나 이 때가 마침 '9.11 테러' 직후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 명분으로 아프가니스탄전쟁을 일으킨 2001년 말이었다.

자신들이 머물던 아프가니스탄 마을에 폭탄이 빗발치자 하킴과 카심은 이를 피해 파키스탄 쪽으로 월경했고 그곳에서 현상금을 노린 현지 주민들에 의해 테러리스트 용의자로 미군 측에 넘겨졌다.

하킴과 카심을 미군 측에 넘긴 현지 주민은 1인당 5천달러의 현상금을 챙겼다고 신문은 전했다.

미군 측에 신병이 인도된 둘은 아프가니스탄 칸다하르의 미군 수용소에서 6개월을 보낸 뒤 쿠바 관타나모의 미 해군기지 수용소로 이송됐고 4년간의 '무단' 구금 끝에 "테러리스트가 아니다"라는 결정 아래 풀려났다.

미 당국은 하킴과 카심을 중국으로 되돌려보낼 경우 박해를 받을 우려가 있다는 판단에 따라 제3국으로 보냈고 유일하게 이들을 받아들인 알바니아로 보냈다.

튀르크어를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알바니아에서 이들은 일자리도 구하지 못한 채 고립된 생활을 하던 하킴은 우연히 스웨덴에서 열린 인권 관련 국제회의에 참석하게 됐고 4일간의 비자로 입국한 스웨덴에서 '한 번 해보자'는 식으로 지난 20일 망명을 신청했다.

하킴은 망명 신청이 받아들여지리라 크게 기대는 안 했지만 스웨덴 정부는 신속하게 망명을 허가했고 하킴은 스웨덴 수도 스톡홀름 교외 순뒤베리의 여동생 아파트에 새로운 '둥지'를 틀게 됐다.

아담한 아파트에서 가진 인터뷰를 통해 그는 "나는 4년 반이나 감옥에 갇혀있었고 '이게 내 인생이구나' 자포자기했었다"며 "이제는 그저 평범한 사람의 삶을 살고 싶을 따름"이라고 소박한 소망을 밝혔다.

economa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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