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내 친노(親盧)그룹 등 당 사수파가 비상대책위 해체와 전당대회를 통한 새로운 지도부 구성을 요구하는 이면에 담긴 구상이 뭔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현재 당 사수파가 주장하는 당 진로 결정 방식은 우선 김근태(金槿泰) 의장을
필두로 한 비대위를 해체하고 당내 각 정파가 고루 참여하는 전당대회준비위원회를
구성한 뒤 내년 초 전대에서 당 해산과 합당 등에 대한 권한을 위임받는 새 지도부
를 선출, 당의 진로를 결정하자는 것이다.
현 지도부와 통합신당파가 전당대회 때까지 비대위를 존속시키면서 전대준비위
는 실무기구 성격으로 설치하고 설문조사 등을 통해 의제를 결정한 뒤 전대에 안건
으로 상정해 당 해산 등 진로를 최종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과는 차이가 크다.
우선 당 사수파가 `적법절차'를 강조하며 전대 표 대결을 주장하는 배경에는 현
역의원들의 세력분포에서 통합신당파에 현저한 약세를 보이고 있는 상황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즉, 한때 55만명에 달했던 기간당원 숫자가 8만명 수준으로 급감하는 사이 친노
성향 당원의 비율은 오히려 높아진 만큼 전대에서 표 대결을 할 경우 쉽게 밀리지
않을 수 있고 여기에 `지역당 회귀 반대'란 명분을 내세우면 의외의 결과가 나올 수
도 있다는 기대감에 따른 것이다.
친노성향인 김두관(金斗官) 전 행자부 장관은 "원내 의원들 중에서 다수가 통합
신당파를 형성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전당대회에서는 상당히 상황이 다를 것이
라고 알고 있다"고 말했다.
당 사수파가 현 비대위에 전대 의제를 설정할 권한이 없다는 논리로 설문조사
실시에 강하게 반발하는 것은 전대에 앞서 미리 당내 분위기가 당 해산과 신당 추진
쪽으로 휩쓸리는 것을 막기 위한 방책으로 풀이된다.
또 전대 의제를 새 지도부 선출로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의 이면에는 설사 표 대
결에서 패해 통합신당파 후보가 새 의장에 당선되더라도 지도부내에 당 사수파 인
사를 최대한 진입시킴으로써 일방적으로 끌려가는 상황만은 막아보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화영(李華泳) 의원은 "의제 설정을 비대위가 할 게 아니라 전대에서 당 해산
을 전제로 구성된 지도부가 위임받아서 해야 한다"며 "비대위가 설문조사 등 변칙적
인 수를 쓰려 하는 게 문제"라고 주장했다.
결국 당 사수파의 구상은 현역의원 중심의 정계개편 논의를 당원들이 참여하는
전대 공간으로 확대시켜 표 대결을 통해 진로를 확정하도록 하되, 수적 열세로 새로
운 당 의장을 차지하지 못하더라도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자산과 부채를 함께
승계할 세력을 확보하겠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그 핵심에 노 대통령과 정치적
운명을 같이 하는 문제가 들어있다.
그러나 통합신당파 가운데 적지않은 의원들이 한자릿수 지지율로 추락한 노 대
통령과 함께 갈 경우 내년 대선에서 필패한다고 보고 결별을 필수조건으로 여기고
있어 당 사수파의 구상대로 전대가 이뤄질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이 때문에 당 사수파 내에서 참여정치실천연대 대표인 김형주(金炯柱) 의원처럼
서로 상처 입히기를 중단하고 합리적 결별을 한 다음에 정치상황의 변화에 따라 재
통합이나 연대 등을 고려할 수도 있다는 주장도 고개를 들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맹찬형 김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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