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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묘일무 800년전 원형 되찾아”

20여년만에 추기석전서 변경 봉행

  • 연합
  • 등록 2006.12.06 13:27:24


*사진설명 :ⓒ연합

중요무형문화재 제85호인 성균관 석전대제(釋奠大祭.공자에 대한 제사)의 의식무인 문묘일무(文廟佾舞)가 최근 800년 전 원형을 되찾은 것으로 알려졌다.

6일 석전대제를 관장하는 성균관(관장 최근덕)에 따르면 지난 20여 년 동안 유지돼오던 96개의 문묘일무 춤사위 대부분이 최근 처음으로 변경됐으며 9월25일 추기석전 당시 공개적으로 시연됐다.

문묘일무는 공자의 생애와 사상을 노래와 의식으로 표현한 춤으로 춤사위 하나하나에 유교의 예악 사상이 심도있게 내포돼 있다. 800여 년 전 고려 예종 때(1116년) 중국에서 전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약식동작으로만 전해 내려오던 문묘일무가 처음 복원된 것은 1980년. 당시 국립국악원 연구자 및 안무가들이 명청대 문헌인 '반궁예악전서'를 근거로 96개의 춤사위를 정리ㆍ복원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임학선 성균관대 무용학과 교수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현행 문묘일무 춤사위들은 '반궁예악전서'에 나온 춤사위 해설을 전혀 따르고 있지 않으며 대부분 임의로 해석됐다.

일례로 '반궁예악전서'는 문묘일무 동작 중 초헌무(初獻舞)의 '자(自)' 악장을 '稍前, 向外, 開篇舞'(조금 앞으로 걸어나가가 밖을 향하여 약을 연다)로, '생(生)' 악장을 '蹈向裏, 開篇舞'(안을 향해 발을 딛으며 약을 연다)로 해설한다.

반면 최근까지의 춤사위는 두 가지 동작을 각각 "약을 든 왼손을 앞으로 펴서 서서히 왼쪽(서쪽)을 향한다. 적은 가슴에 둔다"와 "약을 앞으로 펴든 채로 오른쪽(동쪽)을 향한다"로 해석하고 있어 원래의 뜻과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임 교수는 "'자'에서는 약에 대한 지시가 없는데도 '약'을 언급하고, '생'에서는 '안'을 지시하고 있는데도 오히려 오른쪽을 지시하고 있다"면서 대부분의 동작이 크게 왜곡됐다고 지적했다.

임 교수는 "문묘일무의 동작 하나하나에는 공경과 사양, 그리고 겸손을 뜻하는 매우 정교한 상징이 깃들어 있다"면서 "절대 임의로 해석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국악원이 '반궁예악전서'를 참고하고서도 이를 충실히 복원하지 못했던 이유에 대해 임 교수는 "복원자들이 동작을 해설한 무보를 보지 못했거나 '궐리지'(1504), '남옹지'(1544), '춘관통고(1788)', '궐리지(1900)' 등 한국과 중국의 문묘일무 관련 문헌들을 찾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추정했다.

2000년부터 중국과 한국의 도서관들을 돌아다니며 중국문헌 13종과 조선시대, 개화기 때의 문헌 4종 등 모두 17종의 문묘일무도를 수집해온 임 교수는 문헌자료들을 근거로 학술대회 등을 통해 여러 차례 춤사위 오류를 지적해왔다.

최근덕 성균관 관장은 "문묘일무는 문(文)과 무(武)가 조화를 이뤄야하는 데 이전의 춤사위는 문만을 강조한 측면이 있다"면서 "임 교수가 복원한 춤사위는 진퇴가 분명한 것이 거의 800년 전 원형에 충실하게 복원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1980년 당시 복원작업에 참여했던 관계자는 "1980년 당시 복원한 문묘일무는 제2대 국립국악원장을 지낸 성경린 선생이 전래돼오던 약식동작들을 바탕으로 '반궁예악전서' 내용을 참고해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명나라 때 문헌인 '반궁예약전서' 상의 춤사위는 우리나라가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전적으로 참고할 수 없는 문헌"이라면서 "향후 임 교수 연구 결과에 대한 반박 자료를 제시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울=연합뉴스) 이준삼 기자
js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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