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능부패한 김대중 정권을 심판하는 선거
"대통령 아들들의 비리와 정권 실세의 부정부패를 보면 국정이 있는 나라인지 의심스럽다"
2002년 6.13 지자체 선거 때 한나라당 경기도지사 후보로 출마했던 손학규의 선거유세 발언이다. 당시 한나라당은 이회창 대선후보와 서청원 당대표가 서울시장의 이명박, 인천시장의 안상수, 경기지사의 손학규 등 수도권 빅3를 집중 지원했다. 약 한 달 전만 해도 지지율 50%를 넘나들었던 노풍의 바람을 지자체 압승으로 완전히 잠재우기 위해서였다.
한나라당의 전략은 철저히 당시 김대중 대통령을 공격하는 방식이었다. 김대중 정권은 아들 삼형제의 이른바 3홍비리 등으로 국민적 지지가 크게 떨어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손학규 후보의 지원유세를 나선 서청원 대표의 당시 발언들이다.
"이번 선거는 한나라당이 정권을 잡기 위한 선거가 아니라 도둑질을 많이 해먹은 정권을 심판하는 날"
“이번 선거는 지난 4년간 국민을 고통스럽게 만들어온, 부패하고 무능한 김대중 정권을 국민의 이름으로 심판하는 선거"
"이 정권 비리의 몸통인 DJ는 지금이라도 국민 앞에 머리숙여 사과하고 검찰에 조사를 받아야 한다"
한나라당의 이러한 공격은 국민 정서를 파고들었다. 표현이 과하긴 하지만, 없는 말을 지어낸 것은 아니며, 김대중 정권이 비판받을 여지가 충분히 있었기 때문이다.
민자당 입당, 국회의원 3선, 대변인, 장관, 경기도지사
손학규 전 지사는 민자당에 입당한 뒤, 국회의원 3선을 하며, 당 대변인, 보건복지부 장관을 거쳐, 결국 반 김대중 정서를 등에 업고 경기도지사로 당선되었다. 그뒤 청와대 출신을 부지사로 임명하는 등, 포용력을 보이며,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지자체장으로 인정받는다. 손 전 지사가 일약 대권주자로 올라선 데에는 이러한 경기도지사 경력이 가장 큰 힘이 되고 있다.
통합민주당에서 김영환 전 과기부 장관이 일찌감치 대선후보에 출마했다. 그는 김대중 정권 시절 청와대 대변인, 과기부 장관 등 이른바 잘나가는 신진 정치인이었다. 그 역시 손 전 지사와 함께 2002년 지자체 선거 때 경기도지사에 출사표를 던졌다. 당시 새천년 민주당의 경선 경쟁후보로는 진념이 나섰다. 경선하는 과정에서 노풍을 몰고 다녔던 노무현 후보가 이상하게 진념 후보를 지지하는 발언을 하면서, 경선은 싱겁게 끝났다.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뒤, 2003년 민주당은 분당사태를 맞는다. 노대통령과 친노세력이 열린우리당을 창당한 것이다. 이 당시 이른바 개혁적이고 신선하다고 평가받는 재야민주화 인사, 386 정치인들 대부분이 열린우리당에 합류했다. 그런데 김영환은 가장 절친한 정치 선배인 김근태를 따라가지 않고 민주당에 남는다. 그리고 김근태와 절연할 수밖에 없는 사연을 공개편지로 남기기도 했다.
그뒤 김영환은 민주당에서 상임중앙위원으로 당선되는 등, 당의 중심역할을 했지만, 탄핵사태를 거치며 총선에서 어이없게 낙선하고 만다. 와신상담 끝에, 2006년 지자체 서울시장 선거에 출사표를 던지지만, 한화갑 대표의 황제 공천 때문에 경선조차 하지 못하고 좌절했다.
손학규와 김영환의 차이는 경기도지사 선거
손학규와 김영환, 이 둘은 현재 같은 대선후보이다. 정치활동 기반도 같은 경기도였고, 모두 2002년 지자체 경기지사에 출마했다. 손학규는 반DJ 정서를 바탕으로 가볍게 경기지사에 당선되었고, 전격적인 한나라당 탈당을 거쳐 현재 범 개혁진영 대선주자 1위를 달리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도지사 당선될 당시 그토록 비판을 퍼부었던 김대중 전 대통령과도 자주 만나며, 지원을 받고 있다.
김영환은 대선출마 선언을 했지만, 아직까지는 여론조사 지지율에도 잡히지 않는다. 본인이 원했는지 모르겠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과 면담조차 하지 않았다.
이 둘의 정치적 지위의 차이는 경기도지사 선거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선거는 DJ냐 반DJ냐를 묻는 선거였다. 손학규 캠프는 이를 철저히 활용했다. 5년이 지난 뒤, 이른바 범여권, 다른 말로 표현하면 DJ진영의 유력 대권주자로 손학규가 올라서 있는 상황, 분명히 정상적인 정치현상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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