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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실감나는 돈타령, '쩐의 전쟁'

대부업체 광고 출연 스타들 속속 계약 파기

SBS 수목 드라마 <쩐의 전쟁>(이향희 극본, 장태유 연출)의 주인공은 ‘돈’이다. 스토리라인은 철저히 돈에 의해서 움직인다. 모든 등장인물은 빚을 지거나 빚을 주거나, 돈을 만지거나 돈을 굴리거나 어쨌든 삶이 온통 돈과 깊이 연루된 자들이다. 서로 관계를 맺는 방식도 돈이 결정한다.

속칭 ‘쩐’이라 불리는 사채를 정면으로 다뤘다는 점에서 이 드라마는 방영 전부터 화제였고 현재는 대한민국 광고 시장을 재편할 정도로 뜨거운 감자가 되었다. 대한민국 국회는 연 66%의 고금리를 합법적으로 인정했고 연일 TV에선 대부업체를 좋은 금융상품인 것처럼 현혹하는데도 사채는 늘 남의 얘기처럼 들렸었다.

그러나 ‘쩐’은 실로 대단했다. 살인적인 사채 이자는 순식간에 한 집안을 박살낸다. 딸의 결혼식은 사채업자에게 부조금을 이자로 상납하는 날에 불과했다. 아버지는 신용카드를 반으로 잘라 날을 세운 ‘칼’로 손목을 그어 자살한다. 그 아버지가 자식들의 남은 삶을 위해 피로 쓴 유언은 “카드빚 쓰지 마라”였다. 드라마 <쩐의 전쟁>이 첫 회부터 단숨에 질러버린 돈의 파괴력이다.

돈을 만지는 최고의 폼 나는 직업이었던 애널리스트에서 단박에 돈 500원이 아쉬운 신용불량자로 떨어진 금나라(박신양 분)는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절규한다. “아버지, 이건 너무 웃기잖아요. 유언이 ‘카드빚 쓰지 마라’가 뭐예요.”

그렇다. 이 얼마나 우스운 만화적 전개인가. 그러나 이 우스운 스토리라인에는 누구도 쉽게 웃어넘길 수 없는 진실이 들어 있다. 그 얇고 가벼운 카드 한 장이 삶을 지옥으로 만들 수 있다. 아버지의 카드는 부메랑으로 돌아와 자신의 목을 친 단두대였다.

금나라의 몰락은 너무 빨랐지만 희망은 ‘바늘구멍’조차 보이지 않았다. 사랑하는 여자를 돈과 맞바꾸며 각서까지 써 ‘구걸’한 돈으로도 빚 막음은커녕 어머니 수술비도 댈 수 없었다. 금나라는 만화 주인공 ‘파워레인저’처럼 강해지고 싶지만, 현실의 그는 돈의 덫에서 한 발짝도 헤어나지 못한다. 박신양이 노래방에서 ‘파워레인저’ 주제가를 열창하던 장면은, 그래서 반어적으로 리얼리티를 확보했다.

박인권의 만화 <쩐의 전쟁>을 원작으로 한 이 드라마의 방영 이후 대부업체 광고에 출연했던 스타들이 속속 계약 파기를 선언하고 있다. 대부업체에 인터넷으로 조회만 해봐도 은행권에서는 대출 불가로 낙인찍힌다는 ‘정보’도 이 드라마가 방영되기 전에는 오직 당해본 사람만 알고 기막혀하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물론 <쩐의 전쟁>은 원작 만화뿐 아니라 드라마 또한 ‘무림 고수’를 만나 비법을 전수받고 성공한다는 지극히 ‘뻔한’ 영웅서사의 플롯을 가볍게 따라가고 있다. 그럼에도 시청자는 주인공 금나라에게서 대한민국의 2007년을 살아가는 한 젊은이의 고단함을 느낀다. 빚지기 쉬운 세상을 빚 안 지고 살아가기의 어려움을 절절히 알기에, 그 또한 결국 사채업자가 되어 돈 받아내기의 귀신이 되어감에도 여전히 금나라를 응원한다. 마침내 아버지의 (직접적) 원수 마동포의 현금 50억에 도달한 금나라의 활약이 기대되는 이유다.

오늘도 메일 박스에 수북이 쌓인 사채광고들을 지우는 일로 하루를 시작하는, 전화 한 방이면 묻지도 않고 대출해 준다는 숱한 ‘무이자’의 유혹을 요행히 견뎌낸 우리들 하나하나가 실은 ‘파워레인저’라고 <쩐의 전쟁>은 위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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