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 지도부의 통합신당 추진을 비판하는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편지공개를 계기로 신당창당을 둘러싼 당내 갈등이 한층 첨예화되고 있다.
일단 노 대통령을 정치적 후견인으로 삼고 있는 친노(親盧) 세력은 자신들에 대한 지원사격 성격이 짙은 이번 편지글로 인해 상당한 힘을 얻은 듯 고무된 분위기인 반면, 통합신당세력은 "국민이 짜증을 낸다"며 노골적인 `항명' 태세를 보였다.
친노 진영은 당장 노 대통령의 편지가 나오게 된 직접적 계기라고 볼 수 있는 당 지도부의 설문조사 작업을 저지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나섰다. 참여정치실천연대(참정연) 상임대표인 김형주(金炯柱) 의원은 5일 "전당대회 자체를 신당창당 정당화 수단으로만 생각하는 뻔한 설문에는 참여하기 어렵다"며 "의원 생각만으로 당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도 당헌에 위배된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또 "민주주의 정신은 전당대회를 통해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고, 당원 들이 합리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올바른 수순"이라며 전당대회 개최를 요구했다. 노 대통령이 편지글에서 "이 문제(신당창당)는 당 지도부와 대통령 후보 희망자, 의원 여러분만으로 결정할 수는 없다"고 못박은 것과 같은 맥락에서 통합신당파를 겨냥한 친노그룹의 파상공세인 셈이다.
최근 집단행동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친노성향 당원들은 더욱 직접적인 형태로 행동에 나섰다. 친노성향 당원이 중심이 된 `전국당원대회 준비위원회'는 이날 영등포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비상대책위원회 해산과 전당대회 준비위원회 구성을 촉구했다.
이 모임 대변인을 맡고 있는 윤지용씨는 "지난 6개월간 비대위는 막강한 권한에 도 불구하고 당내 혼란을 더 부추겼다"고 주장했다. 친노성향 당원들은 오는 10일 전국당원대회를 열고 `당 정상화를 위한 당원대책 위원회'를 구성하는 등 비대위를 압박할 계획이다.
그러나 당내 대세를 이루고 있는 통합신당파는 친노세력의 반격에 밀릴 수 없다며 단단히 배수진을 치는 분위기이다. 특히 비대위는 친노세력이 중단을 요구하는 설문조사도 이날 비대위에서 문항에 대한 점검작업을 마무리 한 뒤 예정대로 6일부터 강행하겠다는 방침이다.
당의 핵심관계자는 "설문조사에 문제가 있다는 주장은 유치한 문제제기"라며 " 계획대로 설문조사를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근태(金槿泰) 의장의 한 측근도 "의원총회에서 139명의 의견을 다 들을 수 없기 때문에 설문조사를 하겠다는 것 아니냐"며 설문조사 실시방침을 분명히 했다.
한 고위당직자는 친노성향 당원 1천여명이 전국당원대회 개최를 추진하는데 대해 "1만명이 모여도 구의원 한명 당선시키지 못할 숫자"라고 평가절하했다. 김한길 원내대표가 이날 공개석상에서 "국정에 전념하는 것은 대통령의 레임덕 을 최소화하는 길이기도 하다"고 `레임덕' 문제까지 거론한 것도 비대위의 강경한 분위기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한 비대위원은 "노 대통령이 왕따를 당하고 있는 것을 본인만 모르고, 국회의원 들과 당원들이 노 대통령을 왜 싫어하는지 본인만 모르는 것 같다"며 "노 대통령이 미망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서울=연합뉴스) 고일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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