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3월 대검 중수부 주변에서는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의 이름이 심상치 않게 등장했다.
중수부가 수사 중이던 금융브로커 김재록씨 사건과 관련해 이 전 부총리의 중ㆍ
고교, 대학 동문인 금융계 인사들의 이름이 수사 선상에 오르내렸기 때문이다.
비슷한 시기에 감사원이 외환은행 매각 절차 감사에 나서고, 검찰도 여러 갈래
이던 외환은행ㆍ론스타 관련 수사를 중수부에서 통합수사하기로 하면서 이 전 부총
리의 금융권 인맥을 일컫는 이른바 `이헌재 사단'이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김재록씨가 외환은행 매각에 관여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이 전 부총리가 공직
에서 물러나 있을 때인 2003년 조성한 이헌재 펀드가 론스타와 관련돼 있지 않겠느
냐는 의혹까지 불거졌다.
이런 의혹은 이헌재 펀드의 '계승자'로 꼽히는 보고펀드의 변양호 공동대표가
외환은행 매각 당시 재경부 금융정책국장으로 막강한 권한을 가졌다는 점 때문에 그
럴 듯하게 확산됐다.
무엇보다 이 전 부총리는 2003년 외환은행과 론스타 펀드 사이에 매각 계약이
체결될 무렵 론스타의 법률 자문을 맡았던 김&장에 고문으로 몸담고 있었다는 사실
때문에 막후에서 모종의 해결사 역할을 맡지 않았겠느냐는 의혹을 강하게 받았다.
정태인 전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은 올해 4월 초 한 인터넷 매체와 인터뷰에서
" 외환은행 불법매각 건은 당시 변양호 재경부 금융정책국장, 김석동 금감위 감독정
책1국장 등 '이헌재 사단' 작품이다"고 주장하면서 의혹은 눈덩이처럼 커졌다.
변양호 전 국장이나 김석동 현 금감위원장, 정문수 당시 외환은행 이사회 의장,
이달용 외환은행 부행장은 이 전 부총리와 경기고 동문이다. 이강원 당시 외환은행
장은 이 전 부총리의 광주서중 후배였다.
외환은행 매각 의혹이 불거지기 전부터 `이헌재 사단'이란 말이 통용될 정도였
던 데다, 핵심 인물들이 모두 이 전 부총리와 학연 등으로 연결돼 있었던 점 때문에
`이헌재 사단'에 대한 세인의 관심은 지대했다.
◇ 출국금지에서 무혐의 결론까지 = 검찰은 이 전 부총리와 관련된 의혹이 끊이
지 않자 6월 16일 이 전 부총리의 출국을 전격 금지했다.
감사원의 감사 결과를 사흘 앞둔 시점으로, 외환은행 본체 수사에 착수한 뒤 3
개월 만이었다.
검찰은 하루 전날 외환은행 서울 한남동 지점에서 이 전 부총리가 2002년 이 지
점에서 10억 원을 대출받을 때 제출한 서류와 2003∼2004년의 대출금 상환 내역 자
료를 확보해 분석에 들어가면서 `태풍'을 예고하는 듯했다.
이 전 부총리는 2000년 8월 재경부 장관 퇴직 당시 보유 자산만 25억 원 가량이
었고 외환은행과는 거래가 없었음에도, 주택 구입 자금으로 외환은행에서 10억 원을
대출 받은 점이 논란이 되기도 했다.
검찰은 지난달 말까지 김진표 전 경제부총리, 권오규 당시 청와대 정책수석, 이
정재 당시 금감위원장 등 전ㆍ현직 고위 정책 라인을 모두 조사하면서도 이 전 부총
리는 마지막까지 조사를 하지 않아 `단서를 잡은 것 아니냐는 등' 배경을 놓고 여러
해석이 분분했다.
하지만 검찰은 수사 착수 8개월 여만인 지난달 30일 이 전 부총리를 참고인 자
격으로 소환하면서 "오늘 하루면 조사가 충분하다"고 미리 밝혀 그를 사법처리 대
상에서 일찌감치 제외했음을 내비쳤다.
검찰은 이달 1일에는 5개월 보름여 만에 이 전 부총리의 출금을 해제했다.
◇ `찻잔 속 태풍'으로 막내린 의혹 수사 = 이른바 이헌재 사단으로 분류되는
금융계 인사들 중 외환은행 헐값매각 의혹 사건으로 직격탄을 맞은 인물은 이강원
전 외환은행장이다.
이 전 부총리의 `직계'로 통하는 변 전 국장은 두 차례나 구속영장이 기각돼 불
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게 됐다.
경기고 동문인 유회원 론스타 코리아 대표는 네 차례나 구속영장이 기각되는 전
무후무한 기록을 남겼고, 이번 기소 대상에서는 제외됐다.
검찰은 유회원씨의 영장 기각 재항고 수용 여부가 대법원에서 결정되면 유씨를
기소하기로 방침을 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재록씨 사건 때부터 경기고-서울대 동문, 재경부, 금감위, 금감원, 민
간기업 등의 거물급 인사 수십 명의 이름이 거론됐던 것에 비하면 외환은행 헐값매
각 의혹과 관련해 `이헌재 사단'의 역할은 거의 규명되지 않은 셈이다.
검찰 관계자는 수개월간 계속된 이 전부총리 관련 의혹에 대해 "범죄 혐의가 드
러난 것은 없다"는 한마디로 종지부를 찍었음을 우회 선언했다. 이헌재 사단을 둘러
싼 각종 의혹은 `찻잔 속 태풍'으로 그친 것이다.
(서울=연합뉴스) 이광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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