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럼즈펠드 미국 국방장관이 자신의 사임 발표 이틀 전 이라크 정책에 대한 대규모 조정 필요성을 담은 비밀 메모를 백악관에 제시한 사실이 3일 밝혀져 파장을 낳고 있다.
백악관은 문제의 메모가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 전략 재검토 작업의 일환"이라며 럼즈펠드를 두둔, 오는 6일 있을 이라크연구 보고서 발표를 계기로 대대적인 이라크 정책 변화가 있을 수 있음을 시사했다.
◇ 해들리 "일종의 빨래 목록"= 스티븐 해들리 백악관 안보 보좌관은 문제의 메모가 전날밤 뉴욕타임스 인터넷판에 의해 폭로된데 대해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 정책의 일부 주요 변화에 열린 마음을 갖고 있다"면서 럼즈펠드의 제안 내용들을 검토중이라고 말했다.
럼즈펠드 메모는 이라크 미군의 주력 부대를 이란과 시리아 국경에 집결시키고, 취약 지역에서 철수시킨 미군을 신속대응군으로 전환하는 것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해들리 보좌관은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인들이 일어서면 미국은 내려설 수 있다'고 말했듯이 우리는 명확히 어느 시점에서는 미군 철수를 시작하길 원한다"면서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 정책 재검토를 여러 기관에 요청했으며, 럼즈펠드 장관이 한 일은 매우 유용한 것이며, 재검토할 아이디어들의 빨래 목록(laundry list)과도 같이 한데 모아 놓은 것"이라고 말했다.
◇ 이라크 전략, 대대적 수정 가능성= 해들리 보좌관은 부시 대통령은 진정으로 모든 아이디어들을 검토하길 바라고 있으며 이라크 보고서에 대해서도 의회 지도자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를 알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부시 대통령은 지난 1일 주례 라디오 연설을 통해 "이라크에서의 성공을 위한 최선의 방안을 도출하려면 초당적 협력이 중요하다"면서 "모든 건의를 살펴 본뒤 최종 결정을 내릴 것"이라며 전략 변화 용의를 거듭 천명했다. 그는 또 지난달 30일 누리 알 말리키 이라크 총리와 만나 "미국은 이라크 연립정부를 더욱 잘 지원하기 위해 변화를 기할 준비가 돼 있음을 전했다"고 말했다.
부시 대통령의 이러한 언급은 국무부 및 국가안보회의(NSC) 관리들이 지난달 29일 까지만 해도 워싱턴 주재 외교관들을 만난 자리에서 "이라크 연구 그룹이 어떤 건의를 하든 이라크 정책에는 주요 변화가 없다"고 말했던 것과 배치되는 것으로 최근 모종의 결단을 내렸을 가능성을 암시하고 있다.
한편 국방부 관계자들은 이라크의 미군 지휘부가 갑작스런 철수나 병력 증강에 반대하는 점 등을 들어 급진적인 전략 수정에 반대해왔기 때문에 내부 갈등도 예상된다.
◇ "럼즈펠드는 부정직"= 럼즈펠드의 비밀 메모는 21가지 선택가능 사항을 예시하면서 "대대적 조정(major adjustment)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밝혔다. 그는 그간 이라크에서의 미국의 노력이 "충분히 잘, 충분히 빨리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고 밝혀왔을 뿐 수정 가능성을 시사한 적은 없었다.
이 메모는 ▲ 110개에서 55개로 축소된 미군 주둔지를 2007년 4월까지 10~15개로 감축하고 ▲ 주력부대를 이란과 시리아의 국경에 배치, 저항세력의 침투와 이란의 영향력을 감소시키며 ▲ 미군을 이라크내와 인접 쿠웨이트쪽으로 철수시켜 기동 타격대 형식으로 유지하고 ▲ 미군 협력 지역만 치안을 제공하고, 취약 지역엔 재건 활동을 중단하며 ▲ 이라크 군인들을 미군 조직에 동참, 훈련시키는 '역 임베딩' 등을 거론하고 있다. 그러나 이라크 미군의 철수 시한은 담고 있지 않다.
럼즈펠드는 이 메모가 국방부가 아닌 광범위한 전문가들과의 대화를 통해 얻은 개인적인 아이디어라고 설명했다.
이라크 정책 실패를 자인하지 않았던 럼즈펠드가 중간 선거 하루전 날 이러한 메모를 작성한 것에 대해 이라크에서 복무했던 퇴역 소장인 폴 이스턴은 워싱턴 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정직하지 못하며 이기적" 이라고 말하고 "그러나 이라크 미군들은 부적절한 '고도의 정치술'이라며 이를 무시할 것이기 때문에 사기에 별 영향을 미치지는 못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브루킹스 연구소의 마이클 오핸런 연구원은 "부시 대통령 정책의 설계사인 그가 물러나면서 이라크 정책이 실패중이라고 말한 것은 대통령에게 훨씬 큰 압력을 가하는 것"이라면서 "부시 대통령이 현재의 노선과 유사한 정책을 옹호하기가 어려울 것" 이라고 예측했다.
(워싱턴=연합뉴스) 박노황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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