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쿼터 축소의 여파가 벌써 한국영화계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듯하다.
1일 개봉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스파이더맨3'는 개봉 6일 만에 전국적으로 255만 관객을 불러모으며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함께 개봉된 한국영화 '아들'의 같은 기간 전국관객 수는 25만 명. '스파이더맨3'는 '아들'보다 10배나 많은 관객을 모았다.
지난 주말 '스파이더맨3'를 상영한 스크린은 전국적으로 816개나 됐다. 이는 우리나라 총 스크린 수의 절반에 이르는 수치다. 외화 한 편이 스크린을 독식하는 결과를 낳은 것.
이를 두고 영화인들은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고 입을 모으며 9일 오후 서울 중구 정동 세실 레스토랑에서 '스크린쿼터 축소 이후 한국영화의 현황'이란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제작자ㆍ감독ㆍ프로듀서ㆍ영화노조ㆍ배우 등 각계 영화인을 대표하는 단체의 대표가 참석해 스크린쿼터 축소에 따른 분야별 현장 상황을 보고하고 현재의 어려움을 타개할 수 있는 방안을 논의했다. 양기환 스크린쿼터 영화인대책위원회 상임집행위원장 직무대행의 사회로 최영재 스크린쿼터문화연대 사무국장, 정윤철 영화감독협회 공동대표, 장동찬 영화제작가협회 사무처장, 최진욱 영화산업노조 위원장, 김길호 매니지먼트협회 사무국장 등이 발표에 나섰다.
최영재 사무국장은 임권택 감독의 신작 '천년학' 상영 일수를 예로 들며 한국영화의 위기를 설명했다. 그는 "'천년학'은 서울 37개 스크린에서 평균 10일 상영된 후 대부분 종영했다"며 "이는 단기간의 흥행성적을 기준으로 상영일수가 결정된 결과"라고 밝혔다.
최 국장은 "이는 또한 관객의 평가 기회를 박탈한 처사"라면서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정 규모 이상의 멀티플렉스 극장에 다양성 영화상영관 설치를 의무화하고 편법 상영을 막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윤철 감독은 한국영화가 어려운 현실에 놓인 원인으로 5가지를 지적했다. ▲포화상태에 이른 관객 수 ▲장르문학과 전문 시나리오 작가의 부재에 따른 영화의 다양성 부족 ▲스크린쿼터 축소로 인한 유통망 붕괴 ▲구태의연한 마케팅의 문제점 ▲전 세계 동시 개봉, 디지털 배급으로 인한 프린트 수 제한 불가 등이 그것.
정윤철 감독은 이런 문제점을 타개하기 위한 방법으로 제작 규모의 축소를 주장했다. 그는 "이제는 100만 관객을 기준으로 손익분기점을 맞출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면서 "보통 영화 한 편이 100만 관객을 동원하면 30억 정도의 수익이 발생하는데 한국 영화의 제작 규모를 여기에 맞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장동찬 사무처장은 외화에 대한 반독점 규제법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한 국가의 영화가 다른 나라의 영화산업을 독점하는 것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면서 "외화에 대한 반독점 규제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외화에 대한 반독점 규제 법안은 스크린 수로 독과점을 방지하고자 하는 스크린쿼터와는 국가에 기초를 둔다는 의미에서 다르다"면서 "개별 영화의 규제가 아니라 한 나라가 산업을 독점하는 것을 방지한다는 점에서 할리우드의 무차별 폭격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한 충무로 제작사들의 M&A를 통한 대연합을 제안했다. 소규모 제작사들이 발전적 의미로 통합, 지분구조의 변화를 통해 운영과 제작을 분리하고 영화를 만드는 데 전념하는 크리에이티브 체제를 만든다는 것이 핵심이다.
(서울=연합뉴스) sunglo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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