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30일 통합신당을 `지역당'으로 규정한 발언이 알려지자 열린우리당은 벌집을 쑤셔놓은 듯 했다.
우리당 의원들은 노 대통령이 이날 몇몇 청와대 참모들과 만난 자리에서 여당내에 광범위한 공감대를 얻고 있는 통합신당 추진 움직임을 "지역당을 만들자는 것"으로 평가절하면서 "열린우리당을 지키겠다"고 발언한 데 대해 강력히 반발했다.
노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통합신당파 의원들에게 `신당은 지역당에 불과하니 그토록 지역당을 만들고 싶으면 너희가 나가서 해보라'는 메시지로 해석됐기 때문이다.
우리당 의원들은 "노 대통령이 어떻게든 활로를 찾아보려는 여당에 찬물을 끼얹고 내분을 부추기고 있다", "짜증나서 더이상 못 들어주겠다", "이제 전면전이 불가피하다"는 등 격한 반응을 보였다.
또 우리당 의원들은 지난 28일 국무회의 석상에서 탈당과 임기 중 탈당 가능성을 시사한 발언을 했다가, 29일 목포 방문에서는 "노무현 당신 임기 얼마 안남지 않았냐? 그렇지 않다"며 국정에 의욕을 보였고, 이날에는 신당을 지역당이라며 여당내 대다수 의원들과 각을 세우는 등 매일 입장이 급변하고 있는 데 대해 "대통령의 진의가 뭔지 도대체 모르겠다"며 혼란스러워했다.
◇당 지도부 = 김근태(金槿泰) 의장과 김한길 원내대표는 극도로 말을 아꼈다.
김 의장은 이날 본회의장 앞에서 기자들로부터 노 대통령의 발언에 대한 논평을 요구 받고 "(내가) 맷집이 약해서...다음에 얘기하자"면서 "오늘은 비정규직법 등이 국회를 통과한 날인데 이 일에 신경쓰자"며 답변을 피했다.
김 원내대표 역시 "대통령 발언을 정확히 못 봐서 당장 말씀드릴 사안이 아닌 것 같다. 기다려보자"며 반응을 자제했다.
당은 공식적으로는 정중한 반응을 보였지만 노 대통령의 "신당은 지역당" 주장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반박했다.
우상호(禹相虎)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우리당은 새로운 시대정신을 구현할 신정치세력을 결집하려는 것으로 결코 지역주의로 회귀하기 위한 지역당을 만들 의사가 없다"고 밝혔다.
우 대변인은 또 "노 대통령께서 평생 지역주의에 맞서 싸우신 것을 잘 알고 있고, 우리당 창당정신에도 지역주의 극복이 명기돼있다"며 "앞으로 우리당이라는 이름을 지키든 새로운 신당을 만들든 지역주의 극복 정신을 버리지 않을 것이니 이 점에 대해서는 대통령도 크게 걱정 안 하셔도 된다"고 말했다.
당 비대위원인 정장선(鄭長善) 의원은 "대통령 말씀이 자꾸 바뀌는 것 같아서 혼란스럽다"며 "국정이 혼란스러워질 것 같아서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비대위원은 "대꾸하고 싶지 않다. 이러니까 우리가 대통령에게 정치에 관여하지 말고 국정에만 전념하라는 것 아니냐"며 "당을 지키려면 진작부터 그렇게 하든지, 탈당을 하겠다고 했으면 일관되게 해야하는 것 아니냐. 정말 나라가 걱정된다"고 말했다.
◇통합신당파 = 여당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통합신당파 의원들은 노 대통령의 발언이 당에 대한 노골적인 폄하와 무시에서 나온 것일 뿐만 아니라 신당추진의 명분과 동력을 훼손하는 것으로 보고 거친 표현을 써가며 정면으로 반발했다.
익명을 요구한 당직자는 "그런 식으로 말하자면 청와대는 한마디로 `부산신당'"이라고 반박한 뒤 "언제는 탈당한다고 했다가 또 안 한다고 하는데 헷갈리고 짜증난다. 더 말하고 싶지도 않다"는 반응을 보였고, 수도권의 한 재선의원은 "대통령이 워낙 변덕이 심해서 종잡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친노직계 모임 의정연구센터의 상임고문인 김혁규(金爀珪) 의원 조차 "우리당내에서 추진되는 통합신당이 노 대통령에게 지역당 회귀라는 이미지를 준 모양이지만 우리가 지역당을 하자고 신당을 추진하는 것은 아니다"며 "우리는 전국정당을 하려고 통합신당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석현(李錫玄) 의원은 "통합개혁세력이 지역주의를 초월해서 뭉치자는 것이 지역주의냐"고 반문하고 "영호남이 손잡아야 지역주의가 없어진다는 식의 생각 자체가 지역주의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라며 노 대통령을 비판했고, 양형일(梁亨一) 의원은 "우리당내에 지역당에 찬성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는데 신당의 취지를 단정적으로 지역당 회귀라고 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선병렬(宣炳烈) 의원은 "여당이 지지도가 낮으니까 사랑받는 길을 모색하고 있고, 그게 정계개편이고 통합신당 논의"라면서 "아직 통합신당의 모습을 아무도 모르는데 미리 지역당이라고 말하는 것은 당의 가열찬 노력에 대한 폄하"라고 서운함을 드러냈다.
한 재선의원은 "노 대통령에게 남은 건 오기 밖에 없는 것 같다"며 "결국 우리당과 대통령이 전면전으로 갈 것 같은 데 결국 대통령이 (당에서) 쫓겨날 것"이라고 막말을 하기도 했다.
유재건(柳在乾) 의원은 "토론이 활발해지고 신당의 색깔이 명확해지면 대통령의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을 것"이라며 비교적 온건한 반응을 보였고, 신당문제에 중립적 입장을 취해온 최재성(崔宰誠) 의원은 "지금은 말을 아끼고 정치적 공방을 자제해야 한다"고 자제론을 폈다.
◇친노그룹 = "당에 대한 애정표시", "지역주의 극복을 위한 염원 피력" 등 긍정적인 해석이 우세한 가운데 일부 의원들은 노 대통령이 잇따라 자극적인 발언을 하는 데 따른 여론 악화 가능성을 우려하기도 했다.
노 대통령 측근인 이광재(李光宰) 의원은 "대통령은 당을 지키고 돕겠다는 원론적인 메시지이고 당에 대한 애정을 표시한 것"이라며 "(신당이) 지역당이 돼선 안된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화영(李華泳) 의원은 "대통령의 오랜 정치적 염원은 지역주의를 극복하는 정당의 실현이고, 그 신념을 한 번 더 밝힌 것"이라며 신당을 지역당으로 규정한 데 대해서는 "지역주의라는 편의성에 기대려는 것에 대한 불편함을 표시한 것이지 단선적으로 해석해선 안된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대통령이 지금까지 정치에 관여한 바 없는데 자꾸 정치에 손을 떼라면서 깊이 개입해온 것처럼 예단해서 말하는 데 대해 불편하고 섭섭한 마음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친노 성향인 한 여성의원은 "국민들이 불안해 하는데 가만히 좀 계시지 왜 자꾸 그러는지 모르겠다"며 노 대통령의 잇따른 정치발언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우려했다.
(서울=연합뉴스) 맹찬형 류지복 기자
mangels@yna.co.kr
jbryoo@yna.co.kr
ⓒ 미디어워치 & mediawatch.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