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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희는 그들을 고소하라

뉴시스와 영화단체 충돌, 최대 피해자

김태희는 영화 <중천>은 흥행시키지 못했지만, 김용호 기자를 스타로 띄웠다.

인터넷 신문 뉴시스의 김용호 기자는 현재 ‘충무로가 주목하는’ 사람이 됐다. 탤런트 김태희가 주연한 영화 <중천>에 대해 악의적 기사를 수차례 썼다는 이유다. 한국영화제작가협회 등 9개 단체가 1월 23일 ‘영화인들은 뉴시스의 취재를 거부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하면서 갈등은 공식화 됐다.
‘뉴시스는 과연 언론인가’라는 항의를 포함한 이 성명서에는 사실상 모든 영화인 단체들이 서명한 셈이다. 영화잡지 「씨네21」은 김용호 기자의 기사를 ‘찌라시’라고 비하하는가 하면 양측의 인터뷰까지 실어가면서 공방전을 부추겼다.

사실 김용호 기자는 <중천>이 채 개봉되기 전부터 ‘김태희가 연기를 못하는 이유’, ‘김태희, 100짜리 영화에서 '재롱잔치'', ‘<중천> CG 표절 의혹… 창의성 제로’ 등의 기사를 통해 여러 차례 영화를 ‘깠다’. 영화에 대한 실망인지 주연배우 김태희의 연기에 대한 비난인지 모를 기사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사실상 <중천>은 개봉 이전부터 논란에 휘말렸다.

그 ‘논란’은 누가 봐도 영화를 홍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쪽은 아니었다. 실은 치명타였다. 영화를 보러가는 관객들 또한 적어도 김태희의 연기에 대해서는 아예 기대를 접었을 정도로, 김용호 기자의 기사는 자세하면서도 집요했다. 비난은 해를 넘겨서도 여전해 ‘망한 영화 <중천>을 싸고도는 사람들’까지 이어졌다. 확인사살까지 감행할 태세였다.

김용호 기자는 분명 잘못했다. 기사 형식의 글을 빌어 개인적 소견을 객관적인 ‘사실’로 유포했다. 영화에 대해 악평이든 혹평이든 평가를 내릴 수는 있다. 다만 그것은 ‘기사’로 나갈 게 아니라 필자 개인의 의견임을 밝혀야 했다.

영화 <중천> 내에서의 연기력 평가만이 아니라 김태희의 인생과 연기 전체를 싸잡아 ‘곱게만 자라서 연기를 못 한다’ 는 식의 비난을 쓰면서 ‘기사’임을 표방한 것은 지나쳤다. 신문사의 ‘기사’로서 나간 글은 그 자체로 정설로 받아들여질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뉴시스 편집장까지 김 기자를 두둔하며 이런 ‘기사’들을 정당화시켰다는 데 있다.

영화인들로서도 관망만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가뜩이나 한국 영화의 거품이 빠지고 있는 민감한 시점에서 김용호 기자의 극히 주관적이고 반복적인 악평들은 영화계를 자극할 만 했다. 채 개봉도 되지 않은 영화를 몇몇 기자들로 인해 ‘손해’보는 위험을 더 이상 묵과하지 않겠다는 대대적인 실력 행사가 아닌가. 어쩌면 김용호 기자는 빌미였을 수도 있다. 이참에 언론을 길들여보겠다는 의도도 엿보인다. 한때 그 많던 비평가들이 모두 사라져버린 영화비평 현장에는 기자들만 붐비더니, 이제는 기자들도 밀려날 때가 된 것일까.

이 와중에서 의아한 것은 김태희의 무반응이다. 이 사태의 최대 피해자는 김용호 기자도 영화인들도 아닌 김태희이기 때문이다. 김용호 기자는 갑자기 ‘스타’가 되었고, 영화인들은 자신들의 단결된 힘을 보여 주었다. 둘 다 손해 보지 않았다. <중천>을 비롯해 김 기자가 혹평한 영화들은 영화 자체의 문제점으로 인해 흥행에 실패했을 뿐이다.

그러나 아무도 김태희를 위해 변명하지 않는 동안, 그녀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 ‘연기 못 하는’ 배우로 낙인찍히고 말았다. 김용호 기자가 그토록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 연기력 논란은 사태가 확산되면서 기정 ‘사실’처럼 굳어졌다.

김태희가 누구인가? 지난 가을 악성 댓글을 단 네티즌을 온라인이 아닌 오프라인 검찰에 고소했던 장본인이 아닌가. 그랬던 그녀가, 어쩌면 온라인에서의 ‘소리 없는 아우성’에 불과한 댓글을 그토록 못 참아 사법 역사에 길이 남을 고소장을 작성했던 그녀가, 왜 이 사안에는 눈 감고 있는지 의아할 뿐이다.

연기력 구제불능의 배우로 낙인찍히고, 130억짜리 영화 <중천>의 패인이라는 무거운 짐을 졸지에 혼자 짊어지게 된 김태희는 왜 김용호 기자와 영화인단체들을 고소하지 않는가? 진짜 명예훼손은 몇몇 ‘키보드 워리어’들의 손끝이 아니라, 이번의 ‘고래 싸움’을 통해 유포되었다.

이번 사태가 남긴 것은 결국, 김태희가 영화판에서 차기작을 찍을 수 없으리라는 전망뿐이다.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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