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상 극대화 노린 협상카드..`9.19 성명에 위배'
관련국 `무시'..`패키지 딜'로 돌파 여부 주목
북한이 베이징(北京)에서 열리고 있는 제5차 2단계 6자회담에서 핵무기와 핵 프로그램을 분리해 거래하는 이른바 `살라미 전술'을 준비한 것으로 보여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북한은 이번 회기 개막일인 지난 18일 기조연설에서 "조건이 성숙하면 현존하는
핵프로그램을 포기하는 논의도 가능하다"고 언급하면서도 "조건이 성숙되지 않은
현단계에서 핵무기 문제를 논의하고자 할 경우엔 핵군축 회담 진행을 요구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기조연설 직후만 해도 외교가에서는 `핵군축 회담' 언급에 무게를 뒀었다. 하지
만 북측 매체의 보도를 통해 북한이 핵실험까지 한 `자칭' 핵보유국으로서, 이미 보
유하고 있는 핵무기는 기존 핵 프로그램과는 별도의 보상을 해줘야 폐기할 수 있다
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는 분석이 설득력있게 제기됐다.
재일본 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인 조선신보는 20일 자에 "김계관 외무성 부상이
다른 참가국 대표들에게 밝힌 조선의 비핵화 공약 이행 로정도(로드맵)는 현 단계
에서 핵무기를 제외한 현존 핵계획의 포기문제를 토의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분석
했다.
북한은 20일까지 진행된 사흘간의 회담에서 BDA(방코델타아시아) 문제의 우선
해결을 요구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핵폐기 이행과 상응조치에 대해서는 특별히 한 이
야기가 없으며 기조연설 이후 핵무기-프로그램 분리 전략을 재천명하지도 않은 것으
로 알려졌다.
하지만 북한이 19~20일 이틀간의 회의로 1차 BDA 실무협의를 마무리 지은 만큼
앞으로 전개될 회담에서 BDA 선(先) 해결 요구는 유지한 채 본격 협상을 시도할 가
능성이 없지 않아 보인다.
미국의 제안에 대한 자신들의 입장을 밝히면서 본격적으로 핵무기와 핵프로그램
분리론을 제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한의 이 같은 조짐은 결국 핵실험을 계기로 `핵무기 개발 도상국'에서 자칭 `
핵 보유국'으로 위상이 명실상부하게 바뀐 만큼 보유한 핵무기는 따로 값을 쳐 줘야
폐기할 수 있다는 논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9.19 공동성명 1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
계획을 포기할 것을 공약했다'는 문구를 담아 북한이 포기할 대상에 핵무기까지 명
시적으로 포함시켰다.
하지만 북한은 핵실험이라는 상황 변경 요인을 내세워 핵무기와 핵프로그램을
찢어서 최대한 협상력을 높이려는 전략을 펴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북한의 태도를 그들의 전매 특허인 `살라미 전술'로 보고
있다. 마늘로 양념한 이탈리아 소시지인 `살라미'를 잘게 썰 듯이 하나의 카드를 잘
게 썰어 보상을 극대화하는 전략이라는 것이다.
문제는 북한이 이 같은 전략을 실제로 구사할 경우 미국을 포함한 나머지 참가
국들이 받아 줄 수 있는 여지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핵무기와 핵프로그램을 나눠서
보상하는 방안에 동의하는 모양새가 되면 북한의 핵실험에 `페널티'을 가하기는 커
녕 핵실험에 따른 지위 변화를 인정해 주는 격이 되기 때문에 수용되기 어렵다고 전
문가들은 보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핵폐기의 절차적인 측면에서 현존 핵 프로그램과
핵무기를 동시에 포기시키기는 어렵기 때문에 분리해서 포기토록 하는 방안이 현실
적이라는 시각도 없지 않다.
6자회담 진행 과정에서 북한은 이미 보유한 핵무기를 최후의 보루로서 지키려
할 것으로 보이는 상황이기 때문에 덮어놓고 그것부터 포기하라고 관련국들이 요구
할 경우 북한의 반발이 자명해 협상이 난항을 겪을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한미 등이 핵폐기의 통상적인 순서에 근거해 행동 대 행동을 1 대 1로 조합하는
접근방식에서 탈피, 전체 로드맵 아래 몇가지 핵폐기 조치와 그에 대한 상응조치를
큰 덩어리 몇 개로 묶어 협상하는 `패키지 딜' 방안을 제안한 것도 이런 점을 감안
한 전략인 셈이다.
이 같은 전략 속에 핵무기처럼 북한이 끝까지 지키고 싶은 것들과 북한이 가장
필요로 하는 바를 연결한 패키지를 북한이 조기에 받아 들이도록 하겠다는 게 관련
국들의 복안인 것이다.
`패키지 딜'을 통해 나머지 회담 참가국에 가장 시급한 해결 과제인 현존 핵무
기의 폐기를 마지막 단계까지 끌고가지 않고 조기에 해결하자는 아이디어인 셈이다.
북한의 핵무기-핵프로그램 분리 전략과 관련국들의 `패키지 딜' 방안이 이번 회
담에서 모종의 접점을 찾을지 초미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베이징=연합뉴스) 조준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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