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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농업이 전부이던 시절 지주(地主)의 위임을 받아서 소작권(小作權) 즉, 소작인(小作人)들을 관리하는 자를 마름이라 했다. 이 마름들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지주는 지역의 민생들로부터 덕망가로 칭송을 받고, 아울러 소작인들은 처자식들의 궁기(窮氣)를 면하게 하고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지주로부터 소작권을 위임받은 마름이 자신만의 배를 채우기 위하여 지주와 소작인들의 사이를 이간, 음흉한 간계를 꾸며 지주의 눈을 속이고 소작인들에게 군림하면서 소작인들에게 혹독한 소작료(도조(賭租))를 받아 마침내 지주를 패덕(悖德)한 사람으로 만들고 소작인들을 절망으로 내몰아 끝내 이것이 세상을 어지럽히는 원인이 되었다.

지주와 소작인들의 사이를 이어주는 마름이 올곧다면 지주와 마름 그리고 소작인들이 함께 공생 발전하지만, 반대로 간교한 마름을 만나면 마름의 배만 부를 뿐 지주와 소작인들은 공멸한다는 말이다.

부연하면 대지주가 자신의 땅을 총괄하는 마름을 두고 마름은 다시 자신의 밑에 구역 또는 마을을 관리하는 중마름을 두고 해마다 소작인을 선별하고 죽지 못해 사는 소작인들로부터 소작료를 혹독하게 갈취하는 구조다.

그러나 지주가 자신의 대리인으로서 소작 농민으로부터 소작료를 징수ㆍ보관했다가 상납하는 일을 맡은 마름을 해고하고, 직접 자신의 논밭을 경작할 소작인들을 선정하거나 변경하는 경우가 있는데 ① 일반적으로 소작료를 많이 징수하지 못하는 경우와 ② 혹 지주의 소작인 배려 인심에 반하여 소작료를 가혹하게 징수하거나 중간 착복하는 등 부정부패와 ③ 자신의 농토가 줄어들어 관리인 즉, 마름들을 줄여야할 경우 3가지다.

이 지주와 마름 다시 중마름과 소작인으로 이어진 악습구조를 오늘날에 대비하여 보면, 지주는 회사이고, 마름은 정규직이고, 중마름은 용역회사이고, 소작인은 비정규직이라 할 수 있다.

요즈음 존재감을 잃은 민주노동당과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세우고 당의 지지 기반을 넓히기 위해 한진중공업 노사분규에 개입한 민노총 조직원인 김진숙과 다시 김진숙을 내년의 총선과 대선을 위한 도구로 악용하고 있는 야당의 유치한 행위를 보면서 옛 역사에서 아니 불과 반세기전까지 우리 민생들이 악질 마름들에게 당한 악습을 반복하면서 미망에 빠져 있었던 과거 우리 구태를 보는듯하여 한심하기만 하다.

2011년 삼복염천의 부산영도를 달구고 있는 희망버스투어는 민노총 조직원 김진숙의 한진중공업 크레인 점거농성을 노동자를 위한 희망으로 본 것인데, 기가 찰 일이 이것이다.

지금이야말로 정부와 국민들은 경거망동하지 말고, 과연 김진숙의 행위가 진실로 노동자를 위한 건설적인 대안이고 희망인지 냉정히 봐야 한다.

또한 노사와 노사분규를 부추기고 서로를 일방적인 가해자와 피해자로만 설정 증오를 불러일으키고 선동하는 등의 저급한 정치문화를 철저히 경계하며 단호히 막아야 할 것이다.

끝으로 악질 마름 세습 귀족노동자를 대변하고 있는 김진숙을 노동자를 위한 희망이라며 떠들고 있는 희망버스에 묻는다.

비인간적이고 노동자를 노예로 만들고 있는 저급한 노동정책의 산물인 850만 비정규직들의 눈물은 보이지 않는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아무 때나 채용했다 아무 때고 해고하면서 왜 정규직 노동자들은 회사가 죽든 살든 해고하면 안 되는가?

똑같은 사람, 똑같은 일, 똑같은 능력, 똑같은 생산력임에도 불구하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구분 차별하는 것 자체도 우습지만 정규직 노조원 몇 명을 살리자고 협력업체에 종사하는 비정규직들과 그 가족들을 궁핍과 실직의 공포로 내모는 것이 옳은 일인가?

희망버스투어라는 거창한 대의명분에 기계적인 논리와 인간만이 향유한다는 도덕이라는 것을 가져다 붙여도 과연 옳은 일이며 합리적인 행동인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며, 희망버스가 아니라 절망과 인간차별의 버스다.

참으로 인간의 가슴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존재감을 잃은 민주노동당과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세우고 지지 기반을 넓히기 위해 한진중공업 노사분규에 개입한 민노총 조직원 김진숙과 다시 김진숙을 내년의 총선과 대선을 위한 도구로 악용하고 있는 야당과 그에 동조하는 희망버스는 문명한 우리 사회에서 결코 함께 공존할 수 없는 현대판 악질 마름들과 그에 기생 동조하는 중마름들일 뿐이라는 말이다.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그리고 자신들만 살기 위해 회사와 협력업체를 파산시키고 이에 종사하는 수많은 비노조원들을 실직으로 내몰아 죽이려는 김진숙과 그에 동조하는 희망버스는 자신의 배만을 채우기 위하여 지주와 소작인들을 죽이는 악질 중마름에 다름 아니다.

한번 마름이 대를 이어 마름노릇을 하듯이, 공개 채용해야 할 노동의 현장을 노조원들의 자녀들로 세습하여 채우면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자신들을 보호하는 보호막으로 쳤다가 필요가 없으면 언제든 미련 없이 썩은 생선을 버리듯 내치면서 노동의 현장을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차별하고 있는 오늘의 현실이, 과연 노동자를 위한 정의로운 세상인지, 희망버스투어에 참여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양심에 먼저 묻고 부끄럽지 않아야 할 것이다.

정부는 하루속히 이 불법적인 현대판 악질 마름들의 농간을 법치의 칼날을 세워 응징하고, 모든 노동자들이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차별되지 않고, 회사는 능력에 의해 채용과 해고를 자유롭게 하여, 저급한 노사문화를 한 차원 높은 상생의 미래로 발전시켜 나가는 터닝 포인트로 삼기를 바란다. (데일리안 광주전라=박혜범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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