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 1인당 월 2만6천엔(약 35만원) 지급', '고속도로 무료화' 등 이른바 '퍼주기 공약'을 내걸고 집권에 성공한 일본 민주당이 채 2년도 지나지 않아 재정 상태를 제대로 고려하지 않았다고 사과했다. '반값 등록금', '세금급식' 등 최근 우리나라 정국을 휩쓸고 있는 포퓰리즘 정책의 말로가 이웃나라 일본에서 현실화된 셈이다.
오카다 가쓰야(岡田克也) 민주당 간사장은 21일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해 8월 말 중의원(하원) 총선거 당시에 내건 공약이 사실은 실현 가능성을 면밀하게 따져보지 못한 것이었다고 인정한 뒤 "국민에게 솔직히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는 정부가 제출한 적자 국채 발행법안을 통과시키려면 야당의 협조가 필요한 상황에서 제1야당인 자민당의 사과 요구를 받아들인 것으로 풀이된다.
오카다 간사장은 "실현할 수 없는 정책을 포함한 이유로 공약을 만들 때에 정책의 필요성이나 실현 가능성을 충분히 검증하지 못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며 "정권을 교체해 커다란 정책 전환을 한꺼번에 실현한다는 의욕에 넘쳤지만, 결과적으로 세출의 증대로 연결됐다. 자세히 따져보지 못한 점을 국민에게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또 "공약에 담은 정책이 재해 극복용 예산보다 더 중요한지 검증할 필요가 있다"며 앞으로 집권 공약을 중간 점검하겠다고 약속했다. 오카다씨는 22일 열리는 제1, 2야당 간사장과 만나 이같은 내용을 직접 설명할 예정이다.
무상 복지 정책으로 재정악화되며, 국가신용등급마저 하락한 일본
민주당은 2009년 8월 말 총선거에서 서민들의 생활을 돕겠다는 내용의 공약을 내세워 중의원의 3분의 2에 가까운 의석을 차지, 50년 이상 이어진 자민당 정권을 무너뜨렸고, 같은해 9월 초 새 내각을 발족시켰다. 그러나 무상복지 정책은 경기회복 효과를 내지 못했고, 재정 상황은 급속히 악화됐다. 국가신용등급이 한 단계 강등되는 굴욕도 당했다.
2008년에 등장한 미국의 오바마 정권과 함께 일본의 민주당 집권은 한국의 좌파세력에게 사회주의 노선이 부활했다는 기대감을 주었다. 그러나 오바마 정권 역시 최근 재정 감축안에 대해 여야 합의에 동의했다. 또한 자신을 지지한 미국 자동차 노조의 입장을 고려하여, 선거 기간 동안 일시적으로 한미FTA를 반대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지만, 자동차 시장 개방의 속도를 늦추는 선에서 한미FTA도 그대로 추진 중이다.
오히려 문제는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다. 2010년 지자체 선거 기간 중 이슈가 되었던 전면적 무상 세금 급식으로 야권이 승리하면서, 이제는 여당까지 ‘무상’을 외치고 있다. 제 1야당인 민주당은 3무 1반 정책(무상 급식ㆍ의료ㆍ보육, 반값 등록금)을 내놓고 있다.
이러한 민주당의 무상 정책에 대해 참여당의 유시민 대표마저 “민주당 무상복지 시리즈가 선거용 캐치프레이즈론 의미 있을지 모르지만 ‘신뢰의 위기’를 극복하는 데는 전혀 도움이 안 된다”며 정면 비판했다. 그는 “민주당이 3무1반(3+1정책)이라고 덜컥 내놨는데 구호일 뿐”이라며 “정책을 잘못 내면 신뢰는 더 깨진다”라고 지적했다. 이런 유시민 대표마저도 4.27 재보선에서 패배한 이후로 좌파정당과의 통합에 승부를 걸면서, 무상 시리즈에 편승하고 있다. 현재의 대한민국의 무상 정책들이 엄밀한 재정 및 복지논리가 아닌 정치 논리에 휩쓸리고 있다는 단적인 증거이다.
대표적인 포퓰리즘으로 꼽히는 세금급식 반대를 부르짖은 오세훈 서울시장은 최근 일본의 이 같은 상황을 예로 들며 "재원 조달 전망이 없는 정책은 반드시 막다른 길에 다다르게 된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서울시는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전면 무상급식’과 ‘단계적 무상급식’을 선택하는 투표로 결정했다고 20일 밝혔다. 주민투표청구심의회는 복지포퓰리즘추방국민운동본부가 제출한 주민투표 청구에 대한 심의를 통해 청구서상의 대상과 취지, 이유 등을 최대한 존중해 ‘전면적 무상급식안’과 ‘단계적 무상급식안’을 선택하는 주민투표를 실시하기로 의결했다고 설명했다.
총선과 대선 거치며, 무상 지하철, 무상 버스 공약까지 등장할 듯
이러한 서울시의 주민투표 추진에 대해 야당은 물론 여당에서조차 “단계적 무상급식과 전면적 무상급식 사이에 1000억원밖에 예산 차이가 나지 않는데, 무리하는 것 아니냐”는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미 여당은 재보선 패배 이후 황우여 원내대표가 주도하여 반값등록금 정책을 밀어붙이다, 결국 예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뒤로 후퇴한 상황이다. 이번 서울시의 주민투표가 단지 1000억원의 예산을 아끼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논리로 불필요한 곳에 세금을 투입하는 흐름에 제동을 걸 수 있느냐는 중대한 기로점이라는 점을 한나라당 스스로 경험한 것이다.
실제로 한나라당이 반값등록금에서 후퇴하면서, 좌파매체와 인터넷으로부터 집중 공격을 당하고 있다. 이럴 때 한나라당은 뭐라고 항변할 수 있겠는가. 이 한 문장밖에 없다.
“국가 전체 예산을 고려하여 꼭 필요한 곳에만 세금을 투입해야 한다”
그렇다면 당연히 한달에 5만원 정도 하는 급식비를 충분히 낼 수 있는 상위 50% 계층의 학생들에게까지 1000억원의 세금을 투입해서 무상으로 지원해야 하느냐는 문제부터 따져봐야 한다. 정치 논리만 배제하면 “그래도 필요하다”는 논리를 찾기 어렵다. 만약 “그래도 필요하다”라고 주장한다면, 급식 뿐 아니라, 보육, 의료, 등록금까지 모두 전면적으로 무상으로 가야한다는 논리에 다다르게 된다. 실제로 지금의 대한민국의 정치 현실이 그렇다.
좌파 청년조직에서는 실업급여에 만족하지 않고, 아예 취업이 될 때까지 정부에서 세금으로 지원하는 취업준비금까지 내달라 요구한다. 여기서 조금 더 나아가면 바로 일본의 민주당처럼 자녀 한 명 당 35만원을 지원하고, 모든 고속도로를 무상으로 전환하고, 무상버스, 무상 지하철 등등의 공약도 등장할 것이다.
더구나 대한민국은 미국이나 일본과 달리 내수보다는 무역의 비중이 훨씬 큰 나라이다. 무상 정책 등으로 재정을 확대하고 재정적자가 누적되기 시작하면 외환시장부터 충격을 받게 된다. 21세기경제학연구소의 최용식 소장은 1997년 IMF 외환위기의 본질을 1995년의 42.5%에 달하는 급작스런 재정팽창률 및 화폐발행증가률이라 분석한다. 정부에서 돈을 마음껏 풀다가 국제경쟁력은 떨어지고, 국내 소비만 증가하여 결국 대규모 무역적자를 초래하며 외환시장이 무너졌다는 것이다. 최용식 소장의 분석으로는 IMF 외환위기는 재정팽창을 시작한지 단 2년만에 들이닥쳤다.
무상공약 남발로, 20대와 30대, 세금에 의존하려는 습관 들일까 우려
내년에는 총선과 대선이 있는 해이다. 지금의 분위기로 보면, 야당은 물론 여당까지도 마구잡이식 재정을 투입하는 무상 시리즈 경쟁을 할 듯하다. 차라리 일본 민주당처럼 깨끗하게 사과하고 공약을 접으면 되지만, 또 정치논리에 휘말리며 계속 밀어붙였다가는 IMF 때보다 더 심각한 위기가 초래될 수 있다. 특히 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져야할 20대와 30대 세대들이 진취적인 도전보다는 어떻게 해서든 국민세금을 타내려는 습관을 들인 점까지 고려하면, 이번에 위기가 닥치면, 재기조차 불가능할 지도 모른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파퓰리즘 정책을 내세워 성장 잠재력이 완전히 바닥난 베네수엘라나 아르헨티나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서울시의 주민투표는 공식적인 방법으로 세금투입형 무상정책에 제동을 걸 수 있는 첫 시도이다. 오세훈 시장이 이번 주민투표를 두고 ‘한국전 낙동강 전선’으로 비유한 것은 과장은 있을지언정 거짓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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