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언어혼란전술로, ‘희망버스’라는 ‘좌익난동버스’를 타고 온 좌익들이,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문제를 사태로 발전시키고 있는 상황에 장애인이 이용되고 있다고 한다. 경찰들이 이 난동자들을 막고자 하였을 때, 맨 앞 선두에 이들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 있어서 길을 터주고 말았다는 뉴스를 접하고, 필자(筆者)는 한탄을 금치 못하였다.
우리의 어린 시절은 마을마다 반드시라고 할 만큼 장애를 앓는 어린아이들이 많았다. 천연두 앓다가 곰보가 된 경우는 너무 흔했고, 신체 일부를 쓰지 못하는 아이들도 많았다. 입술이 갈라진 째보는 선천성이어서 가족 전부가 째보라는 놀림을 받고 살았다.
친구 중에는 다리를 저는 아이도 많았다. 특히 우리 마을은 ‘알레다리’라고 부르는 절름발이가 많은 것이 특징이었다. 팔이 짧은 곰배팔이도 있었다. 등이 굽은 곱추도 간혹 눈에 뜨일 만큼, 우리 어린 시절은 의학에 대한 지식과 혜택이 부족한 탓으로 한 집에 가족 누군가는 반드시 장애인이 있었다. 우리 가족 중에도 종조부께서 벙어리였다.
한마디로 장애 백화점 같은 시절이었다. 그래서 필자(筆者)는 장애를 앓는 사람들에게 너무도 친화적인 느낌을 받는다. 어린 시절, 필자(筆者)는 장애를 앓는 마을 형이나 누나에 업혀서 살았고 귀여움을 받고 살았었다.
다리를 절면서, 때알이라고 부르는 야생딸기를 한 아름 꺾어들고 오는 길에 동네 아저씨는
“재학아, 이거 먹어라.‘
하면서 성큼 건네주시곤 하였다. 생각할수록 아름다운 추억이었다.
그런 순수를 지닌 장애인들이 언젠가부터 정치적으로 이용당하는 것을 보았다. 필자(筆者)는 민노당 좌익들이 사회적 약자(弱者)를 보호 한다는 명분으로 장애인들을 정당에 끌어들이는 것을 보았다.
민노당이 사회주의식 절대평등을 주장하고, 정치적으로는 북한에 동조하여 반미운동에 몰입하고, 경제적으로는 사유재산마저 부정하는 집단임을 국민들은 모른다. 그저 사회적 약자를 돕는 정당으로만 알려진 것은 바로 장애인을 끌어들였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좌파라는 끔찍한 정체를 감추기 위해 장애인을 이용한 것이었다.
잠자리 유충(幼蟲)인 물도레는 빨간 알몸을 감추기 위해 작은 나뭇가지며 나뭇잎 조각을 온몸에 붙이고 산다. 이처럼 민노당도 빨간 정체를 감추기 위해 장애인을 끌어다 몸에 붙이고 사는 것이다. 민노당은 종북주의(북한을 따르는)를 세상에 천명하고 사는 집단이다.
우리는 장애인을 사회적 약자(弱者)라 생각하지 않는다. 동등한 사랑과 동등한 인권을 지닌 인격체로 대할 뿐이다. 그런 우리는 장애인들에게 선동을 가르치지 않는다. 그리고 이용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민노당 좌익들은 장애인이 갖는 장점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었다. 그 누가 다리를 절고 휠체어에 탄 연약한 장애인들에게 돌을 던지고 침을 뱉을 것인가. 베풀고 보호하여야 할 동정의 대상에 대해 먼저 양보와 관용을 베푸는 것이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이다.
그러나 이 동정의 우산 속에 민노당은 몸을 감추고 숨어서, 이명박 정부를 손가락질 하고 반미를 외치고 있었다. 심지어 민노당의 반정부 투쟁과 반미투쟁에 장애인들이 동원되기도 했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장애인이 없는 나라가 북한이다. 장애인이 처음부터 없는 것이 아니라 선천적 장애인들은 모조리 잡아다가 수용소에 넣고 죽을 때까지 붙잡아 두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식을 낳지 못하도록 수술을 해버린다. 그러니 장애인들은 더 이상 자식을 낳으며 가정을 이루지 못하고 죽어간다. 원천적으로 장애인이 발생할 여지가 없는 것이다. 한마디로 수용소에서 조용히 죽으라고 하는 것이 북한의 장애인 정책이다.
믿지 못하겠으면, 북한이 자랑하는 평양의 거리 풍경을 보라. 지나가는 수많은 사람들, 거기 어디에 장애인들이 있던가. 우리 대한민국의 거리엔 장애인들을 위한 시설이 얼마든지 있다. 주차장이며 보도 불럭의 턱까지 깎아서 장애인들의 통행을 돕고 있다. 북한의 어디에 그런 장애인을 위한 시설이 있던가를 생각해 보라.
민노당을 비롯한 사회주의자들은 북한처럼 철저한 유물론자들이다. 그리고 모든 사고(思考)와 행동을 북한에 맞추고 산다. 한마디로 종북주의자들이다. 오죽했으면 진보신당이 그들과 갈라섰겠는가.
그러므로 민노당의 장애인을 위한다는 명분은 물도레처럼 자기 정체를 감추기 위한 의도라 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진정 장애인들을 위하고자 한다면, 그들을 길거리 집회에 동원하지 말았어야 했기 때문이다. 장애인들에게 싸우고 악쓰게 하지 않고, 그들에게 사랑과 평온을 가르치는 것이 옳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민노당, 참으로 붉은 물도레 같은 사회주의자들. 아니 김일성 신봉론자(信奉論者)들은 더 이상 장애인을 정치적 이용물로 이용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데일리안 광주전라=정재학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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