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 고분을 떠올릴 때마다 애틋한 생각이 든다. 발굴 시 발견되는 왕과 함께 묻힌 시녀, 즉 순장(殉葬)당한 어린 소녀의 주검은 참으로 애처로운 장면이었다. 왜 죽어야 하는지 충분한 해명을 듣지 못한 채, 15-6세 어린 소녀는 통치자의 곁에 꽃다운 삶을 마감하였다. 죽어서도 모셔야 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이 퇴임까지 함께 갈 순장(殉葬) 내각을 구성하려나 보다. 순장이란, 순사(殉死)라고도 한다. 통치자 등 신분이 높은 사람이나, 남편이 죽었을 때 신하나 아내가 뒤를 따르는 습속은 세계적으로 분포하는데, 중심을 이룬 것은 신분 계층이 있는 사회, 뚜렷하게 가부장제적(家父長制的)인 사회, 특히 초기 고대문명과 그 영향권에 있는 사회에서 성행하였다.
아마도 이명박 대통령은 순장을 각오할 만한 충성도 높은 신하를 배치시킬 것이다. 그러나 국가의 운영은 순장을 위한 내각 구성이 아니라 차기 대통령에게 연결시킬 능력 있는 사람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퇴임 후 안전장치를 생각할 게 아니라, 더욱 발전적인 미래를 위한 인재를 선발해야 한다고, 필자(筆者)는 믿는다.
“나는 한 번 목욕할 때 세 번 머리를 거머쥐고(一沐三握髮ㆍ일목삼악발), 한 번 식사할 때 세 번 음식을 뱉으면서(一飯三吐哺ㆍ일반삼토포) 찾아오는 천하의 현인들을 놓치지 않고자 했다.”
중국 주(周)나라 주공(周公)이 인재를 얻고자 목욕과 식사도 제대로 못했다는 고사다. 주공이 나라의 기반을 닦을 수 있었던 비결은 히딩크식 표현으로 여전히 인재에 배고팠기 때문이다. 주공은 공자마저 “내가 오래도록 꿈에서 주공을 보지 못하다니(吾不復夢見周公)”라면서 흠모했던 성인이다. 이 ‘토포악발(吐哺握髮)’의 전통은 삼국지 조조(曹操ㆍ155∼220)로 이어진다.
아마도 조조만큼 유능한 인재를 사랑한 인물은 드물 것이다. 조조는 유능한 장수를 얻으면 자신이 입고 있는 도포를 벗어 장수를 감싸준다. 이에 감읍한 장수는 충성을 다하였다. 그는 인재를 찾는 심정을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산은 높아지기를 마다하지 않고, 물은 깊어지기를 마다하지 않는 법, 주공처럼 인재를 얻기 위해 먹던 음식을 뱉는다면, 천하가 나를 복종하고 따르리(山不厭高, 海不厭深, 周公吐哺, 天下歸心).”
조조가 적벽대전을 앞두고 읊은 ‘단가행(短歌行)’의 말미다. 인재에 허기져 하는 그의 심리를 토로한 것이다.
중국에서 조조가 되살아나고 있다. 중국 허난(河南)성에서 조조의 무덤이 발굴됐다. 그는 죽기 전에 72개의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를 무덤인 의총(疑塚)을 만들게 했다고 전한다. ‘위무왕이 항상 사용하던 호랑이를 때려잡는 큰 창(魏武王常所用格虎大戟)’이라 새겨진 석패(石牌)가 발견됐다지만 진위 논란은 여전하다.
조조 무덤 발굴 소식이 전해지자 조조에 대한 중국인의 평가가 흥미롭다. 조조를 ‘난세의 간웅(奸雄)’이라고 평가한 사람은 8.9%인 데 반해, 78.1%가 ‘세상을 호령(叱咤風雲ㆍ질타풍운)한 영웅’이라고 답했던 것이다.
왜 중국인들은 조조를 긍정적으로 평가할까? 그것은 조조의 용인술(用人術)에서 답을 찾는다. 조조는 적벽대전 2년 후인 210년부터 세 차례에 걸쳐 널리 인재를 구하는 ‘구현령(求賢令)’을 반포했다. 명성과 출신보다 실력과 재능을 중시해 ‘인재만을 등용한다’는 정책이다. 세계 1등 기업으로 도약한 삼성의 ‘인재경영’론과 맥을 같이한다. 결국 삼국은 위(魏)나라가 통일했고, 삼성은 일본을 극복했다.
이처럼 항시 어느 때라도 군주는 인재등용을 허술히 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이명박 대통령은 순장내각을 구성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비록 정권이 누구에게 넘어간다 하여도 행정은 유능한 전문가에게 맡겨져야 하기 때문이다. 이 나라는 정치인들이 이끌어갈 지 몰라도, 경영은 유능한 행정관료의 손에 의해 결과를 이룬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명박 대통령은 부디 조조처럼 ‘토포악발(吐哺握發)’하길 바란다. 인재 등용이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유일한 해결책이요, 일자리 문제 해결의 첩경이기에 하는 말이다. (데일리안 광주전라=정재학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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