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학=데일리안광주전라 편집위원)6월이 오면, 생각나는 죽음 하나가 있다. 이미 까맣게 잊혀진 의미 없는 죽음. 오늘은 그렇게 떠난 한 인간의 죽음을 생각해 본다. 그것은 이적단체(利敵團體) 범민련(조국통일범민족연합)을 이끌었던 강기남 목사의 죽음이다. 노무현 전(前) 대통령의 자살 약 한 달 후의 일이다.
유서를 보면, 아마도 강기남 목사는 노무현 자살 이후, 들끓는 반(反) 정부 정서에 불을 붙이려는 의도를 갖고 죽음을 택하였으리라 짐작된다. 그러나 세상은 강기남의 죽음에 대해 아무런 감동도 동요도 없었다. 그러므로 그는 한갓 흔하디흔한 잊혀진 자살자였을 뿐이다.
이 죽음을 놓고, 민주당 천정배 의원이 자살한 강기남 목사를 ‘훌륭한 통일운동가’로 지칭하는 것을 보았다. 참으로, 제대로 된 빨간 생각과 빨간 언어이다. 초록은 동색이요, 안으로 굽어지는 팔이다. 천정배가 극찬한 그 강기남은 다음과 같은 인물이다.
2009년 현 정권과 이명박 대통령을 비난하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한 강희남 목사(89)는 이적단체인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창설을 주도한 친북좌파 인사다. 일부는 강 목사를 '1990년대 통일 운동을 이끈 재야 원로'라고 평가하지만 실제로 그의 행적은 통일운동이라기보다는 노골적인 친북행위가 더 두드러진다.
범민련은 1989년 당시 북한 주석 김일성의 지령을 받은 친북인사 문익환, 계훈제 등이 북한에 제안해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가 이를 수락하는 형식으로 출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강 목사는 범민련 초대 의장을 지냈다. 범민련은 △연방제 통일 △미군 철수 △국가보안법 철폐를 표방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범민련은 1991년 11월에 서울고등법원에서 '이적단체'로 판시받았고, 1997년 5월 대법원에서 북한의 대남적화통일노선을 추종한다는 이유로 다시 이적단체로 규정됐다.
범민련은 김정일 정권 주장을 답습하는 등의 이적행위를 일삼았다. 북한이 로켓을 발사하자 "조선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위성 발사국으로서의 과학기술력을 전 세계 앞에 자신있게 과시했다"고 주장했다. 또 이 로켓이 궤도를 이탈한 것으로 알려진 이후에도 "조선의 자주노선이 궤도를 이탈할 리 만무하다"는 주장도 했다.
강 목사는 1994년 김일성이 죽자 조문하겠다며 범민련 남측본부 대표단을 이끌고 방북을 기도해 국보법상 탈출예비죄로 구속됐다. 당시 그는 '북에 조문 간다. 길 비켜라'는 글을 내걸고 택시를 타고 직접 북한으로 향하는 '쇼'를 벌이다 붙잡혔다. 그는 앞서 86년 11월에도 국보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다.
또 강 목사는 좌파 단체들과 연계해 2005년 인천 자유공원 내 맥아더 장군 동상 철거를 주장하며 폭력시위를 벌였다. 당시 일부 시위꾼들은 시위를 저지하던 경찰을 죽창으로 공격해 여론의 비난을 받았다.
강 목사는 자살하기 전에는 6ㆍ15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실천연대)와 우리민족연방제통일추진회의(연방통추) 등에서도 활동했다. 실천연대와 연방통추는 광우병 촛불시위를 주도했던 '광우병국민대책회의'의 주축을 이룬 단체이다.
강 목사는 유서에서 "지금은 민중 주체의 시대다. 4.19와 6월 민중항쟁을 보라. 민중이 아니면 나라를 바로잡을 주체가 없다. 제2의 6월 민중항쟁으로 살인마 리명박을 내치자"고 썼다.
생명을 무엇보다도 중시하는, 생명이란 오지 신만이 주시고 거두어 간다는 기독교 교리에 의하면, 자살이란 신의 뜻을 거스르는 행위. 즉 배교(背敎)의 의미가 있다. 그러므로 목회자의 자살이란 일반인의 자살과는 확연히 다른 것이었다.
강기남 목사는 일반의 신도들조차 금기시하는 자살을 선택함으로써 스스로 목회자의 자리에서 내려왔으며, 신의 숭고한 생명 중시(重視) 사상에서 공산주의자의 생명 경시(輕視)로 전락한 그는 기독신앙의 배교자(背敎者)가 되었다.
강기남 목사의 배교행위는 이것뿐만이 아니다. 진정한 목회자는 하느님의 뜻을 받들어 세상에 실천해야 한다. 거기엔 신의 모든 것, 즉 사랑의 사상과 사랑의 약속을 실천해야 하는 것이 목회자이다. 그러나 강기남 목사는 사랑보다는 살해(殺害), 평화보다는 살륙(殺戮), 베품보다는 약탈(掠奪)을 선택한 공산사상에 경도(傾倒)된 자이다. 더구나 500만 사상자와 1000만 이산가족을 발생시킨 6.25 전쟁의 책임자 김일성을 영생으로 받들자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대(代)를 이어 300만을 굶겨 죽인 김정일에 충성하자는, 인간으로서 납득이 어려운 언행을 보인 자였다.
그러므로 그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비상식적인 목사였고, 신의 뜻을 저버린 사이비 복사였다. 그런 그가 다음과 같은 선동의 글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제2의 6월 항쟁으로 살인마 리명박을 내치자.”
여기에는 세 가지 이해할 수 없는 주장이 있다.
첫째, 이명박 대통령이 살인마라는 주장.
강기남 자살 당시 이명박 대통령 집권 2년 동안, 나는 이명박 대통령께서 나라 경제 회생을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는 줄만 알았지, 죄 없는 국민을 죽이는 살인마인 줄은 몰랐다. 내가 모르는 동안 혹시 사형수들 사형집행이라도 하였는가.
조사해 보니 세상을 놀라게 한 흉악범들조차 아직도 사형이 집행되고 있지 않았다. 그러니 무엇을 보고 살인마라 하는가? 아마 노무현의 자살을 놓고 그런 말을 한 것인가?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은 노무현이에게 박연차로부터 돈 받아먹으라고 시킨 일조차도 없다. 강기남은 자신의 자살에도 이런 거짓을 덧씌워 놓았던 것이다.
둘째, 왜 이명박이 아니고 ‘리명박’일까.
강기남은 이명박 대통령을 ‘리명박’이라고 불렀다. 이 표기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강기남이 북한 인민공화국 사람이라는 것을 스스로 고백하고 증명하는 일이라 할 수 있다.
북한은 두음법칙이 적용되지 않은 표기법을 고집하고 있다. 두음법칙이란, 이를테면 발음의 첫소리가 ‘ㄴ’이나 ‘ㄹ’로 시작되는 단어는 이 음운들이 탈락되거나 약한 음으로 발음되는 음운현상이다. 예를 들면 ‘녀자 -> 여자’,‘로인 -> 노인’으로 발음되고 표기되는 현상이다. 그러나 북한은 두음법칙을 무시하고 ‘녀자’, ‘녀성동무’로 일관되게 쓰고 있다.
강기남이 적은 유서 속의 ‘리명박’ 표기는 북한식 표기법이다. 따라서 그는 대한민국의 국어 표기가 아니라 북한 인민공화국 표기법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러니 스스로 인민공화국 사람이 틀림없다는 자기고백적인 표현이라 할 것이다.
셋째, 왜 이 시대가 민중의 시대이며, 왜 민중이 이명박 대통령을 전복(顚覆) 시켜야 하는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는 민중이 주체가 되는 사회가 아니라, 다양성의 사회이다. 다양성의 사회란 민중(근로인민대중의 준말 =프롤레타리아)이 주체가 되는 사회가 아니라, 각계각층의 다양한 직업의 사람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며, 힘을 모아 발전하여 나아가는 사회란 뜻이다.
국민이 뽑은 대통령을 전복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국가 전복(顚覆)의 의도를 읽을 수 있는 부분이지만, 이 사회가 민중 하나만 주체적으로 존재한다는 억지는 절대 수용할 수 없다.
이명박을 북한식 언어표기인 ‘리명박’으로 부르는 공산주의자가, 그것도 신(神)의 자식으로 살아야 하는 목회자가 신의 교리를 버리고 자살하면서 남겨놓은 피를 부르는 선동의 문장들. 참으로 목사라고 해서 다 같은 목사가 아닌 모양이다. 이제 곧 문성근이 선동하는 백만 민란일이 다가온다.
그리고 2년 전 6월, 북한이라는 적을 이롭게 하기 위해 온갖 책동을 다하던 이적단체 범민련 초대 의장이었던 강기남 목사의 자살. 그리고 이 범민련에 외할아버지 류낙진 씨의 사망 때 조문객이 낸 조의금 7000만원을 헌금한 텔런트 문근영의 집안이 생각나는, 그리고 20011년 6월29일 벌인다는 좌파 민란 선동이 굵은 장맛비 속에 묻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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