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임형두 편집위원 = 한국화교와 재일교포-. 이들은 단일민족성이 강한 한국과 일본에서 각각 소수자로 살고 있다. 해당국에 정주하며 우여곡절의 운명을 겪어오는 등 유사점도 많다.
한국화교는 현재 약 2만 명. 가장 많을 때엔 8만 명(1942년)을 넘었으나 해방이 되면서 급격히 줄었다. 재일교포는 이보다 훨씬 많은 90만 명을 헤아린다. 이 가운데 민단 소속이 75만 명이고, 조총련 소속이 15만 명이다.
이들은 대대로 한국과 일본에서 거주해온 정주 외국인이라는 점에서 단기 체류 외국인들과는 다르다. 사회의 합법적 일원으로 살면서 각종 의무를 내국인과 똑같이 이행해왔으나 권리행사와 복지혜택에서는 차별을 받고 있기도 하다.
이유는 정주국의 국적을 보유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국화교들은 대부분 대만 국적이고, 재일교포들은 남한이나 북한의 국적을 갖고 있다. 거주국에서는 영주권 자격을 획득해 살아간다.
이들 한국화교와 재일교포의 역사는 차별로 점철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화교의 경우 특히 해방 이후에 갖가지 차별을 받아왔고, 그 결과로 화교인구가 크게 줄었다. 현재도 국적상 외국인이어서 공무원, 교사 등이 될 수 없으며, 각종 복지혜택의 수혜대상에서도 제외돼 있다.
재일교포 역시 노동과 납세 등의 의무는 내국인과 동일하면서도 공무원 임용과 같은 권리행사와 복지혜택에서는 원천적으로 배제돼 다른 취급을 받는다. 이주가 일제 때 주로 이뤄졌다는 특수성은 좀처럼 고려되지 않는다.
물론 차별 상황이 조금씩 개선되고 있는 건 사실이다. 한국화교의 경우 한때 부동산소유금지 등 다양한 정책적 수단으로 정부가 앞장서 억압했다. 재일교포도 지문날인제도 등으로 오랫동안 차별받은 바 있다.
영주권 확보도 격세지감의 진전이다. 한국화교의 경우 2002년에 영주권 제도가 도입되면서 이주 100여년 만에 임시 거주자 딱지를 뗐다. 이로써 한국화교의 법적 지위는 1965년에 영주권이 허용된 재일교포와 유사한 상황이 됐다.
한국화교와 재일교포의 차이를 말해주는 시금석 중 하나로 참정권을 꼽을 수 있다. 한국화교는 지방선거에 국한해 2006년부터 참정권을 행사해온다. 그해 5.31지방선거에서 최초로 자신들이 사는 지역대표를 뽑는 투표에 참여한 것이다.
반면, 재일교포는 참정권에서 여전히 소외돼 있다. 정치적 의사표시 기회가 모두 막혀 있는 것이다. 이들의 심정은 참정권 허용 후 "한국 땅에서 45년을 살아왔으면서도 선거권이 없다고 생각하니 그동안 많이 서러웠다"고 털어놓았던 한 한국화교의 소회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재일교포의 참정권 문제가 며칠 전 이명박 대통령의 방일 때 잠시 언급됐다.
이 대통령은 "우리나라는 (외국인이) 영주권을 얻으면 3년 안에 선거를 할 수 있도록 국제사회 규범에 맞게 법을 만들었다"며 "(일본에서도) 지방참정권을 주는 게 맞지 않겠느냐"고 요청했다. 이에 후쿠다 야스오 총리는 "국가제도와 관련된 골치 아픈 사안"이라는 정도로 슬쩍 피해갔다. 향후 일본이 어떻게 화답할지 궁금하다.
한국화교와 재일교포는 누대에 걸쳐 지금의 정주국에서 살아왔고, 평생을 그곳에서 살아갈 사회의 일원이라는 점에서 권리도 그에 걸맞게 강화돼야 하리라고 본다. 그런 점에서 "한국화교의 처지가 재일교포가 처한 상황을 거울에 비춘 것과 마찬가지"라는 소수자 문제 전문가 박경태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의 견해는 새겨둘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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