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대 총선 개표결과 한나라당은 애초 각 언론들이 예상한 170석에 전혀 미치지 못한 지역구 130석 비례대표 23석을 합해 153석을 얻는데 그쳤다. 이는 지난 2004년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이 획득한 152석에 단 1석을 넘긴 것으로 일단 자당의 힘으로 과반수를 넘긴 것은 분명하다. 반면 민주당은 82석을 얻는데 그쳐 여기에 민주노동당 5석과 창조한국당 3석, 호남권 무소속 6석까지 모두 합한다 해도 96석에 불과해 이들 모두가 연합해도 개헌 저지선에 미달하는 참패를 기록했다. 그러나 이회창 총재와 심대평 대표가 이끈 자유선진당은 애초 15~6석의 예상보다 3석 정도를 추가한 18석을 획득하여 무소속 당선자나 민주당의 충청권 당선자 중 2~3명만 영입에 성공하면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할 수 있는 희망을 보였다. 그런데 이번 총선에서 가장 성공했다고 평할 수 있는 친박연대와 친박 무소속은 박근혜 마케팅을 완벽하게 성공시키며 하나의 확실한 세력으로 등장했다. 일단 친박연대에서 당선된 14명과 친박 무소속으로 당선된 15명의 당선자가 친박연대 안으로 통합하면 친박연대는 30명 가까운 세를 형성, 절대안정 과반수에 미달한 한나라당을 자신들의 페이스로 이끌 수
사람 사는 일에 집도 돈도 필요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기를 쓰고 돈을 벌려고 하므로 돈이 많다는 것은 비난받을 일이 아니다. 하지만 자신이 많은 돈을 갖기 위해 타인을 손해나게 했다면 그것은 비난을 받아야 한다. 이른바 부자 청렴론이다. 즉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고 그렇게 번 돈을 절약하고 관리하면서 늘어난 재산이라면 그것은 비난 받을 일이 아니나 어떤 특정한 정보를 가지고 투기를 해서 돈을 불렸다면 그것은 비난을 받아도 마땅하다는 것이다. 이명박 초대정부 각료 후보자들의 재산신고 내용이 알려지자 지금 여론은 타는 불에 기름을 끼얹은 형국이다. 이 당선자 스스로 부동산 투기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한데다가 그가 스스로 발탁한 장관 후보자들 거의 상당수가 부동산 투기 의혹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후보로 추천된 장관 후보자 중 가장 부자는 유인촌 문화관광부 장관 후보자다. 그는 본인과 부인의 재산을 합해 140억 원대의 거부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유 후보자는 연예인 출신으로 현재 중앙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연극영화과 교수이다. 그는 MBC에서 22년 동안 방영되었던 농촌드라마 전원일기에 끝까지 출연했고 그외 KBS에서 시사프로그램 사회자도 오래 했으므로 그 출연료 등
한 편의 코메디를 잘 구경했으나 그 결말은 너무 씁쓸하다. 예비 여당 한나라당에서 요 몇 달, 특히 요 며칠 사이에 벌어진 사건들을 두고 하는 소리다.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뒤 한나라당 내 이명박 당선자 측 홍위병들은 당을 이명박 당으로 개조하는데 모든 전력을 쏟았다. 이에 대항하여 이명박 당에서 그나마 지분이라도 챙기려는 박근혜 전 대표 측의 논리는 “당을 당헌당규에 따른 원칙대로 운영하라”였다. 그런데 이명박 측의 4.9총선 공천목표가 당에서 박근혜 색깔을 지우는 것이었고 여기에 가장 좋은 무기가 박근혜 측이 전가의 보도로 사용하던 이 당헌당규였다. 그리고 그 당규 3조 2항 “부정부패 관련 유죄판결을 받은 자 공천배제”가 그들의 입맛에 맞았다. 이 조항에 박근혜 전 대표 측의 원내 죄장이자 그동안 당에서 이명박 측의 새 확산을 막아 온 김무성 최고의원이 걸려든 것이다. 물론 이 조항에 걸려든 사람은 김 최고만이 아니라 김영삼 전 대통령의 아들인 김현철 씨도 있다. 하지만 그 무게가 김 최고와 김현철씨는 비교하기가 어렵다. 결국 이명박 당선자 측은 김영삼 전 대통령과의 관계가 삐걱대더라도 박 전 대표 측의 김 최고를 제거한다면 그보다 더한 수확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꾸려지면서 이명박 당선자에게 '당선자'보다는 '당선인'으로 불러달라고 언론에 공식적으로 요청했다. 인수위 측은 그 이유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법에 '당선인'으로 되어 있으며 또 중앙선관위도 '당선인증'을 발부했으므로 '당선인'이 맞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국내 각 언론은 인수위의 요청을 받아들여 '당선인'이라고 호칭하면서 신문기사에도 '당선인'으로 표기하고 있다. 그런데 10일 헌법재판소는 인수위의 이 같은 요청을 거절하고 '당선자'라고 호칭했으며 언론도 그렇게 써달라고 주문했다. 이에 대해 헌재는 인수위법 보다는 헌법이 상위법이며 우리나라의 법체계의 근간이 되는 헌법에 '당선자'라고 명기되어 있으므로 그렇게 써야 한다고 못박았다. 그러자 다시 인수위원회가 발끈하고 나섰다. 인수위는 11일 헌법재판소가 '당선자'로 써달라고 주문한 데 대해 "당선인으로 사용할 것"이라고 일축하면서 ‘당선인’이 맞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동관 인수위 대변인에 따르면, 인수위는 이날 오전 간사단 회의에서 전날 헌재가 '당선자'가 맞다는 입장을 밝힘에 따라 이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고 전하며 인수위 측은 계속 '당선인'으로 쓰겠다
지난 2004년부터 2006년까지 한국정치는 박근혜를 빼고 생각할 수 없었다. 비록 원내의석 120여 석의 제1야당 대표였으나 어쩌면 대통령보다 더 막강한 힘을 가지고 정계를 주도했다. 한나라당이 곧 박근혜이고 박근혜의 동선이 한나라당 동선이었다. 노무현정권의 핵심추진과제였던 국가보안법은 박근혜 때문에 토씨하나 건드리지 못했으며 우격다짐으로 통과시킨 사학법 개정안은 2년 내내 정국의 걸림돌이었고 결국은 정부 여당이 양보해야 했다. 이런 박근혜를 도저히 어쩌지 못한 노무현 대통령은 공동정부, 대연정, 등을 제안하며 대통령직만 빼고 다 줄테니 국정을 함께 운영하자고 치맛자락을 잡았다. 그래도 박근혜는 꿈쩍도 하지 않았으며 결국 2004년 4.15 총선 이 후 치러진 각종 선거에서 연전연승했다. 그런데 2007년 12월 19일 이후 박근혜는 어느덧 한나라당의 한 계파 수장으로 전락해버렸다. 대통령선거 홍보물에까지 ‘이명박근혜’라는 문구를 집어넣을 만큼 박근혜의 존재가치를 이명박과 공동운명체라고 했던 이명박 당선자 측이 지금 그렇게 부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국내 거의 모든 언론도 이와 다르지 않다. 대선 이후 박근혜의 움직임과 발언은 이제 자파 의원들의 공
대선 직전 국회를 통과했던 '이명박 특별검사법' 시행이 26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되었다. 따라서 이 당선자는 취임 전에 특검 수사라는 또 하나의 관문을 통과해야 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는 특검의 수사결과에 따라 당선자 신분으로 기소될 수도 있으며 이렇게 되면 법 이론적으로는 현직 대통령으로 법정에 서게 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렵다. 결국 이런 우려 때문에 한나라당에서는 특검법에 대한 대통령 거부권을 요구 했으나 노무현 대통령은 이 법안을 국무회의에 상정했고 국무회의는 절차에 따라 시행을 의결했다. 이로써 노무현 대통령이 이 특검법에 거부권을 행사하기는 사실상 어려워 졌다. 국회를 통과해서 국무회의에 의해 의결된 ‘이명박 특검법’에는 특별검사의 수사대상으로 옵셔널벤처스 주가조작 및 관련 횡령 의혹, 검찰의 전 BBK 대표 김경준씨 회유 의혹, ㈜다스의 실소유주 논란, 도곡동 땅 의혹, 상암동 DMC 특혜분양 의혹 등이 담겨져 있다, 사실상 이번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나온 이 당선자에 대한 모든 의혹을 특별검사가 수사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중 특검팀이 가장 쉽게 결론을 내릴 수 있는 부분이 사실은 BBK 관련 사건들이다. 이 사건들은 이미 검찰이 상당부
무소속 이회창 선거대책위 측은 “이회창 후보가 선거일 하루를 남기고 자체 여론조사를 한 결과, 1위인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를 박빙으로 따라 잡은 뒤, 대역전을 노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네이션코리아와 전화 인터뷰를 가진 이회창 선대위 측 핵심 관계자는 “지난 11월 한나라당을 탈당한 뒤 무소속으로 단신 출마를 선언, 점퍼차림으로 전국을 누빈 이회창 후보를 국민이 진정한 대통령 감으로 인정한 결과가 나타나고 있어 기대가 된다”라며 매우 고무되어 있었다. - 이 명박 후보가 BBK에 관련되었다는 동영상이 나온 뒤 정말 지지율이 빠지고 있나?= 17일 자체적으로 조사한 내용을 살펴보면 그동안 독주를 거듭하던 이명박 후보의 지지율은 광운대 강연 BBK관련 동영상이 나온 16일부터 조사당일인 17일까지 매일 높은 한자리수의 지지율 하락을 기록했으나 그렇게 떨어져 나온 지지층이 소폭으로 신당 정동영 후보쪽과 우리 후보쪽, 그리고 문국현 후보쪽으로 이동 중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어떻게 다르다는 것인가?= 투표일이 하루 앞으로 다가오면서 이명박 후보에게서 나온 지지층이 이회창 후보 쪽으로 모이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다. 그리고 이는 선거운동 종료를 얼마 남겨놓고
25일,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오는 12월 19일 치러질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한나라당 후보로 중앙선관위에 정식 등록했다. 그리고 이날 한나라당 클린정치위원장인 홍준표 의원은 현재 이명박 후보가 연루의혹을 받고 있는 BBK 주가조작 사건을 김경준 단독 사기사건이라고 일방적으로 주장하며 종결선언했다. 이는 계속 터져나오는 의혹을 변명하면서 해명이 되기는 커녕 의혹만 더 커지고 있으므로 이 사건에서 차라리 발를 빼는 것이 더 타격이 적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으로 보인다.하지만 이명박 후보가 대선후보로 등록한 직후 이 후보는 또다시 부동산에 얽힌 의혹이 터져 나오며 한나라당만이 아니라 지지자들까지 당혹케 했다. 즉 지난 6월 당내 경선 당시 자신이 소유한 부동산 가액을 일부 누락(22억여원)했다고 스스로 밝힌 것이다. 이명박 후보는 이날 353억8030만원의 재산, 총 12억1342만원의 납세액을 신고했다. 이는 경선 당시 당 선관위에 신고한 331억 원보다 5개월여 만에 22억여 원이 늘어난 것이다. 이에 대해 나경원 대변인은 “부부 공동명의인 강남구 논현동 주택을 신고하면서 주택과 대지부분을 합쳐 신고해야 하는데, 후보의 대지 분을 사무착오로 누락해 22억 원이
이명박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가 계속되는 악재를 만나 대세론에 급제동이 걸리며 휘청거리고 있다. 그동안 줄곤 50%대의 여론 지지율이 꺼지지 않으며 차기 대통령에 가장 근접했던 이 후보는 투표일 한 달을 남긴 19일, 한겨레가 조사한 여론조사에서 36.7%로 내려 앉으며 40%대의 지지율도 무너진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이날 mbc 가 조사한 여론조사에서도 이 후보는 40%대를 넘기지 못하고 39.5%를 기록한 것으로 봐서 비록 sbs 조사에서 41.4%를 기록하고 있기는 하지만 지난주에 비해 전반적으로 5~10%정도 하락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리고 이는 그동안 이명박 후보의 자녀 위장취업 관련 기사의 댓글에서 나타난 부정적 여론이 한 몫 단단히 했던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특히 이 같은 댓글의 주인공들이 20~30대의 젊은 층으로써 이들의 부정적 여론은 이 후보에게 치명적으로 작용할 것 같다. 즉 이들 연령층은 인터넷으로 퍼지는 여론에 매우 민감한데다 여론 전달이 매우 급속도로 이루어진다. 또 이들에게 부정적으로 비쳐진 경우 이를 회복하기가 쉽지 않다. 이들 계층은 우선 고학력 계층인데다 지역색에 비교적 덜 민감하며 또 자신들과 밀접한 관련이 없는 것에는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대선출마 선언이 있던 날부터 삼성동 자택에 머물며 세간의 많은 억측을 자아냈던 박 전 대표는 그러나 그의 정치적 주장인 원칙과 정도를 벗어나지 않은 원론적 언급으로 구구한 억측들에 대해 답했다. 지난 닷새 동안 머물렀던 삼성동 자신의 자택을 나선 박 전 대표는 12일 몰려든 기자들을 향해 "한나라당으로 정권교체를 해야 한다는 처음 생각에 변함이 없다"고 말하고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무소속 출마에 대해서는 "정도가 아니다"고 밝혔다. 또 이명박 대선후보가 전날 기자회견에서 박 전 대표를 `정치적 파트너이자 소중한 동반자'로 선언하며 당 화합책을 제시한 데 대한 반응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는 "저는 제가 한 일에 책임을 지는 사람"이라는 말로 답했다. 이어서 무소속 이회창 후보의 출마에 대해 "그런 차원에서 이 전 총재가 출마한 것은 정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으나 "다만 이 전 총재가 이런 비난을 감수하고 출마한 데 대해 한나라당이 여러 가지를 뒤돌아보고 생각해야 한다"고 말해 한나라당과 이명박 후보에게 책임이 있음도 내비쳤다. 따라서 이처럼 겉으로나마 박 전 대표가 한나라당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대선출마 선언이 임박한 것 같다. 국내 모든 언론들의 촉각도 그가 발표할 국민에게 드리는 글을 어제 발표할 것이냐에 맞추고 있는데 그 선언에 담길 내용은 궁극적으로 대통령 출마선언일 것이라고 못을 박고 있다. 하지만 반대로 “제발 출마 선언 말고 ‘한나라당 지지자는 똘똘 뭉쳐 이명박 후보를 도와 좌파정권을 종식시켜야 합니다’라고 선언해 주세요”라고 희망하는 사람들도 없지는 않다. 그들은 바로 지금 대통령 직 쟁취길 8부 능선을 넘었다고 생각하는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 지지자들이다. 따라서 이들은 지금도 이회창 전 총재 집 앞에서 출마반대 농성을 하고 있다. 또 지난 두 번의 대통령 선거에서 대놓고 노골적으로 이회창 대통령 만들기에 나섰던 조선일보를 비롯한 국내 대형 보수신문들은 지금 이회창 출마를 저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조선일보는 아예 연 이틀간 사설을 통해 이회창 전 총재를 아주 나쁜 사람으로 몰고 가고 있다. 동아일보는 아주 한 술 더떠서 여론조사 기사를 통한 노골적 이명박 띄우기로 이회창 죽이기를 하고 있다. 이들 신문의 이런 행태들은 이들 신문들의 지난 행태와 비교하면 '인심은 조석변이란 얘기가 바로 이거로구나'하
그는 정치를 하기 전만 해도 대쪽판사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법과 원칙을 중시, 우리나라 법조인들의 표상이라는 평판을 받았었다. 그리고 그는 이 같은 평판을 바탕으로 대법관을 지내고 감사원장을 역임하는 등 국가의 기강을 세우는 직책들을 두루 설렵했다. 이후 김영삼 정부 총리로 인준을 받고 총리직에 올랐으나 법에 명시된 총리의 권한을 행사하려다 청와대와 충돌, 결국 총리직까지 스스로 내던진 것으로 알려지면서 그의 주가는 더욱 올랐다. 또 한 때 국민 지지율 70%까지 받으며 이회창 대세론으로 곧 대통령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두 번의 대권 도전에서 모두 석패했다. 그리고 이전 얻었던 대쪽판사, 원칙주의자 등의 평판도 소멸되어 갔다. 거기다 노무현 대통령 취임 후 대대적으로 실시된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에서 대통령 선거자금을 차떼기로 받은 것이 밝혀지면서 지탄을 받으며 대국민 사과까지 한 뒤 야인으로 돌아갔다. 따라서 이 같은 그의 정치인생 10년은 그의 인생에서 성공한 60년 후의 실패한 10년이라는 멍에를 지우며 많은 회한을 남겼을 것이다. 또 이런 현상들이 그로서는 용납할 수 없는 일들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실패한 10년은 비록 그의 실패에 결정적
이명박 후보 대선가도의 마지막 폭탄이라고 불리는 ‘BBK 사건 김경준’의 입국이 현실화 되고 있는 가운데, 뉴스의 초점은 김경준 귀국이 이 후보의 몰락을 가져 올 것인가에 쏠려있다.현재 한겨레, 경향, 오마이, 프레시안과 본보인 네이션코리아는 이번 대선정국의 핵폭탄이 사실상 김경준과 BBK 주가조작 사건이라고 보고 집중 취재 보도하고 있다. 이중 특히 한겨레 21은 미국 현지까지 가서 김경준의 인터뷰까지 시도하는 등 심층취재에 열을 올리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이 같은 언론의 보도보다는 국회 국정감사가 열리면서 각종 관련 자료들이 신당의 의원들을 통해 쏟아지는 등 이명박 후보가 BBK주가조작 사건에 연루되었을 것이라는 폭로가 줄을 잇고 있으며 이와 반대로 또 한나라당과 이 후보 측에서는 이 같은 신당 의원들의 폭로를 김대업식 폭로라고 평가절하 하면서 파장을 줄이기에 급급하고 있다.그런데 28일, 신당 정봉주 의원은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주가조작의 핵심으로 지목돼온 BBK는 이 후보가 공동대표였던 LKe뱅크의 100% 출자회사임이 은행 공식문서를 통해 확인됐고, 이로써 `BBK주식은 한 주도 갖고 있지 않다'는 이 후보의 거짓말이 드러났다"고 주장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의 여론조사 지지율은 현재도 50~55%대로 그 기세가 꺾이지 않고 고공행진을 계속 중이다. 반면 이 후보를 제외한 여타 후보들의 지지율은 다 합해도 30%내외에서 오락가락하며 이 후보의 추격에 힘겨워 하고 있다. 따라서 이대로만 간다면 이제 50여일 남은 대통령 선거에서 이명박은 제 17대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당선될 것이다. 그러나 여론조사 지표상으로 보면 이렇게 강고한 지지층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이명박 후보지만 지금도 한나라당과 그 지지층 사이에선 어딘지 모를 불안감에 휘둘리고 있으며 이 때문에 당 안팍에서 끊임없이 후보교체론이 흘러나오며 그 대안으로 이회창 박근혜 등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또 사실상 후보출마 선언만 하지 않았을 뿐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최근 움직임을 보면 그가 대선출마에 대한 마음을 굳힌 것이 아닌가 의심할 수 있는 징후가 곳곳에서 보인다. 그리고 이 전 총재가 무소속으로 대선에 출마하는데 그 우군으로 박근혜 전 대표를 지지했던 그룹들이 도사리고 있음도 감지된다. 10년 와신상담이라는 말로 정권교체가 최대의 목표인 범 보수 세력은 그렇다면 왜 아직도 지지율 50%가 넘는 후보를 두고 이처럼 안정되지
지난 15일 치열한 경선전 끝에 신당은 정동영 후보를 당의 대통령 후보로 정식 지명했다. 그러나 정치 분석가들은 정 후보가 사분오열된 여권을 하나로 묶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측했다. 이는 그동안의 신당 경선이 지난 8월 치러진 한나라당의 경선과 비교해도 매우 험악한 파열음을 내며 경선판이 깨지지 않을까 우려할 정도로 계파 간 심각한 분열양상을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 후보는 후보로 지명되지마자 스스로 몸을 낮추며 경쟁자들을 예우하고 그동안 각을 세웠던 노무현 대통령에게도 사과하는 등 여권통합작업에 몸을 내던졌다. 그리고 그 결과 경쟁자였던 손학규 이해찬 두 후보로부터 선대위원장직을 승낙 받으며 적극적인 협조를 끌어냈고 신당의 잠재적 대주주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으로부터도 확실한 지지를 약속 받았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보면 정 후보가 진짜 정치인이라는 것을 실감케 한다. 즉 경선에서 승리한 대통령 후보임에도 약속시간이 30분 이상 늦은 패자 손학규 전 경기지사를 만나면서 몸을 낮추고, 손 전 지사의 “차가 막혀서 늦었다”는 변명을 웃으며 받아넘기면서 손 전 지사가 스스로 멋쩍게 만들므로 그의 지지를 이끌어 낸 것만 봐도 그의 정치적 기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