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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워' "영구없다"의 치밀하고 탄탄한 서사구조

한국의 이무기 전설은 전 세계인들의 호기심 대상


인류역사상 최고의 극작가라는 칭호가 결코 부담스럽지 않는 세익스피어의 몇 안되는 희극'한여름밤의 꿈'에서는 요정의 여왕 '오베론'의 심술궂은 장난으로 온갖 진풍경이 일어난다. 이때 이 희극을 보는 있는 관객들은 배꼽이 간지러워서 고통스러울 지경이다. '한여름밤의 꿈'이 참지못할 웃음을 유발하는 가장 큰 동력은 대한민국 최고의 희극 배우였던 심형래(현 디워 감독)가 한 시대를 풍미했던 '영구없다'의 서사구조와 괘를 같이 한다. 즉 관객들은 상황을 뻔히 다 알고 있는데 무대 위의 배우들만은 전혀 모르면서 사건이 전개되는 구조다. 즉 관객과 배우와의 인식의 간격, 거기서 파생되는 기대의 낙차 등이 관객들에게 참지 못할 웃음을 선사하는데 성공한다.

이는 숭고 우아 비장 골계(풍자와 해학)로 대별되는 미학의 4대범주에서 골계미, 그중에서도 특별한 악의나 공격성이 없는 해학미의 근간을 이루는 대표적인 서사구조다. 당연히 이 구조는 전 세계 희극배우들이 즐겨 사용하는 구조며 특히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영국의 대표적 희극배우 '미스터 빈'이 가장 즐겨 사용하고 있다.

생각 해보라. 관객들은 영구 머리 위에서 개미 운동장 만한 부스럼 딱지가 관객들을 웃기고 있고 이미 무대 위에서 종횡무진 활약하고 있음을 뻔히 다 알고 있는데, 시커멓게 썩어 들어간 치아를 드러내며 '영구없~다'를 연발한다.

무대 위에 있는 당사자가 천연덕스럽게 '자기 자신의 부재(不在)'를 외치는 이 우스꽝스러운 광경에 웃지 못하는 관객들은 오히려 이상하다. 세익스피어는 '베니스의 상인' 말미에서 재판관으로 분장한 포샤가 자신의 정혼자 바사니오와 그의 친구 안토니오에게 약혼반지를 선물로 받치라고 요구하는 장면에서도 '관객과 배우와의 인식의 간극'을 적절히 활용한다. 이 대목은 자칫 너무 진지했던 그 희곡에 고도의 해학미와 그에 따르는 인간적인 관용의 냄새를 불어 넣으며 그 극의 미학적 수준을 한단계 더 끌어 올리는 데 성공한다. 이 구조를 미약하게나마 이해할 센스가 있다면 한국의 관객들이 '영구없다'에 열광했던 일은 결코 한국 관객의 수준이 낮아서가 아니라 '영구없다' 자체가 본질적으로 가지는 구조적인 힘에 그 원인이 있음을 파악하게 될 것이다.

'기억은 있되 사유가 없는 미학자'

한국의 코메디 방송 편성의 속성상 한국의 희곡 배우들 개개인에게 주어지는 시간은 너무나 짧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한국의 몇 안되는 명 희극 배우 심형래는 거의 본능적이라 말할 수 밖에 없는 그만의 직관으로 이런 치밀한 구조를 안배해내는 놀라움을 보였다. 그만이 할 수 있는 특유의 분장과 명연기로 이런 구조를 더욱 집약시키고 그에게 주어진 짧은 순간순간을 최고도로 활용하며 관중들의 배꼽을 훔쳐갔다. 사실 영구 자신이 관객을 향해 '영구 없다'라고 외치는 것 만큼 위에서 말한 희극적 구조를 극한으로까지 완성시키는 플롯이 세상 어디에 있겠는가? 이건 심형래가 희극계를 떠난 후 후배 김창훈이 그의 뒤를 이으려 했지만 그는 많은 다른 장점에도 불구하고 그의 '배트맨~' 연기는 '영구없다' 만큼의 강한 페이소스를 이끌어 내지 못했다. 그 이유는 김창훈의 명연기에도 불구하고 그의 '배트맨~'에는 '영구없다'가 가진 이런 치밀한 구조가 없음으로 해서 '관객과의 인식의 간격 만들기'에 실패하면서 그저 단순하고 뜬금없는 '배트맨~'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세익스피어의 '한 여름밤의 꿈'에서 수십명이 동원되고 오랜 시간을 들여서 완성되는 구조를 우리의 희극배우 영구는 짧은 시간에 고도로 압축해서 거의 혼자만의 힘으로 만들어 낸다. 이건 세계적인 희극 배우 '미스터 빈'도 감히 못하는 연기였다. 이런 데도 불구하고 진중권교수가 '영구없다'라는 말의 낱말에서 드러나는 단순히 '~없다'에만 피상적으로 접근해서 이 용어를 아무렇게나 남발했던 일은 그의 미학적 구조분석 능력이 너무나 얉음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일이다. 그 자체가 한국 지성계의 희극(comedy)이다.

미학을 공부했다는 진중권이 '영구없다'에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엮여있는 이렇게 절묘한 미학적 구조조차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니 정말 의외다. 필자가 진중권을 향해 가장 자주 하는 비판은 '진중권은 온갖 잡다한 기억은 있되 그걸 통합하거나 해체해서 분석할만한 사유능력이 없는 사람'이다 라는 점이다. 이런 까닭에 그와 같이 서울대 미학과를 나온 후배 변희재에게서 '진중권이 미학을 제대로 공부했는지 의심스럽다'는 핀잔을 듣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사실 서울대학교 동문측에서 보면 학교 망신에 가깝다고 해야 할 일이다. 요즘 세간에 떠도는 말 중에 '진짜 학벌을 가진 사람이 진짜답지 못하니 가짜가 득세하고 오히려 전문가적 실력을 갖춘 사람들이 단지 가방끈이 짧다는 이유로 학벌쟁이들에게 가려져서 기회를 갖지 못하니 이건 너무 불공평한 세상이 아닌가?'라는 말의 대표적 케이스로 보인다.

디워의 서사구조

90분이나 계속되는 영화 디워에 서사구조가 없다니? 이게 무슨 망발이란 말인가? 들어가기 전에 먼저 진중권 교수에게 미학자로 또는 평론가로 행세할려면 먼저 단어의 의미와 용어에 대한 개념정립을 제대로 하는 훈련을 쌓기 바란다고 말하고 싶다. 굳이 나무에 비교하자면 서사구조란 이야기를 관통하는 줄기를 말하고 기타 묘사 등은 그 서사구조를 풍성하고 아름답게 하는 잎 정도에 비교할 수 있는데 '서사구조가 취약하다. 서사구조가 엉성하다 또는 빈약하다' 라는 말은 있지만 '서사구조가 없다'라는 말은 애초부터 형용모순이다.

이 지점에서는 진중권 교수가 '영구없다'라는 말에 너무나 감동받은 나머지 거의 '영구없다' 매니아가 되어 그 의미도 모른 채 '영구없다''영구없다' 주문을 외우는 꼴이다.

다시 말하지만 디워에는 너무나 훌륭한 서사구조를 갖고 있다. 이무기가 용이 되어 승천한다는 한국의 전설 자체가 이미 훌륭한 서사구조다. 대체로 신화, 설화, 민화, 전설은 그 표현이나 문체는 나중에 첨삭되고 각색되어야 할 정도로 빈약하지만 서사구조 자체는 그의 모든 소설의 원형을 이룰 정도로 탄탄한 게 일반적이다. 최근 몇년간 전 세계가 스토리 산업이라는 새로운 산업의 부각에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경이로움을 낳았던 '해리포터 시리즈'조차도 그리스 로마 신화 심지어는 아라비안 나이트나 알라딘 마술램프 등의 서사구조를 차용해서 현대적 시각과 문체로 옷을 갈아입힌 걸작품으로 필자의 시선에 들어선다. 진중권의 주장대로라면 '잠자는 숲속의 미녀' 라는가 '미녀와 야수'는 서사구조도 엉성하고 우연적 요소나 이해하기 힘든 신비적 요소가 너무 많아서 미국(헐리우드)에서 절대로 성공하기 힘들고 또 그 서사 구조가 매우 저급하다는 평가를 받아야 마땅하다. 한국의 이무기 전설이나 환생의 모티브가 세계 시장에서는 한국에서만큼 혹독한 비평을 받기는 커녕 오히려 호기심을 자극할 가능성이 더 높다.

디워의 서사구조에 대한 한국에서의 혹평이 진정성을 담보하려면 세익스피어조차 왜 맥베스에서 세 마녀와의 황당한 예언과 그를 벗어날 수 없는 인간로서의 번뇌와 숙명 등의 구조를 이용하여 극의 완성도를 높히고 있으며 세계적으로 성공한 영화 '사랑과 영혼(Ghost,1990)에서 황당한 심령술사(우피 골드버그 粉)가 등장해야 했는지에 대해 실랄한 비판을 받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이를 두고 개연성이 없어서 서사구조가 엉망이다라고 혹평하는 사람은 없다.

혹자들은 환생이라는 플롯이 서양인들이 이해하기 힘들다고 하는데 그건 기우다. 실제로 환생이라는 제목으로 한 서양영화는 얼마든지 많을 정도로 인류 공통의 테마다. (필자가 보았던 비디오는 시미즈 다카시 감독의 일본 영화 환생 (輪廻: Rinne, 2005)이 아니다. 음악가가 환생하는 영화였는데 아마도 파가니니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참고로 한국 영화 중에서 거의 최초로 외국에서 큰 돈을 벌어들인 영화도 환생을 다룬 '은행나무 침대'임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돈 지오반니'와 '데우스 엑스 마키나'

진중권이 말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읽었을 때 난 즉각적으로 '돈 지오반니'가 생각났다. 모짜르트의 돈 지오반니는 1787년 10월 29일 프라하의 에스타테스 오페라 하우스에서 초연되었는데, 특히 스웨덴 출신의 테너 유시 비욜링이 부른 돈지오반니를 좋아해서 대학생 때부터 그 중에 한 아리아를 참으로 즐겨 부르곤 했다.

필자는 사업차 체코에 가게 되었을 때 그 본고장인 프라하에서 직접 볼 행운을 얻었었다. 이 오페라의 마지막은 진중권이 그렇게 혹평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직접 차용하고 있다. 다른 점이라면 구원이 아니라 징벌이다. 2막 마지막 즈음에 돈나 엘비라가 나타나 그에게 이제 방탕한 생활을 청산하라고 충고하지만 돈 지오반니는 전혀 반성의 기미를 안 보인다. 문 쪽으로 다가가던 그녀가 놀라 뒷걸질치자 돈 조반니가 칼을 빼들고 다가간다. 문 앞에는 바로 기사장의 석상이 서 있고 석상은 그에게 참회를 요구한다. 하지만 돈 조반니는 자신의 본성을 고백하며 거절한다.

결국 땅이 갈라지고 시뻘건 불꽃이 솟아 올라 그를 삼켜 버린다. 즉 사람들의 노력으로 안되니까 하늘에서 직접 징벌을 내리며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구조다. 모짜르트의 현란한 기교가 무척이나 돋보이는 예술작품이었지만 그 무대의 화려함과 장중함에 한국의 오페라나 뮤지컬 무대를 생각하면서 참으로 부럽다는 생각이 오래도록 가슴에 머물렀다. 오페라에 대해서 관심이 좀 있는 사람이면 오페라 중의 오페라, 최고의 오페라 하면 모짜르트의 '돈 지오반니'를 뽑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어쩐 일인가? 진중권 교수의 시각대로라면 이런 구조를 가진 오페라라면 단연코 2500년 전 아리스토텔레스 할아버지가 노발대발 하시는 까닭에 오페라 측에도 못 들어야 한다. / 김휘영(문화평론가)


(지면관계 상 2 부 끝/ 계속: 당초 3부작으로 쓸 계획이었지만 4-5부작 정도가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뒤로 갈수록 중요한 내용을 담을 생각입니다. 참 요즘 김석수 칼럼니스트 께서 참 좋은 글을 선사하고 계십니다. 우리 사회가 아직 건강하다는 증거로 생각되어 참으로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 더 나올 목차(대략 생각나는 대로 잡은 것이니 당연히 무순입니다)

1. 모짜르트의 '돈 지오반니'와 진중권의 억지 논리.
2. 왜 심형래 감독이 제대로 평가받아야 하는가?
3. 충무로가 심형래의 영화문법을 배워야 하는 이유.
4. 서극 감독과 스필버그 감독의 차이-한국에서 성공하는 법 / 세계에서 성공하는 법 5. 디워현상의 참 의미(이게 가장 중요한데 비밀입니다)--
6.문화 비평가의 역할과 자질
7. 한국의 영상문화와 정치 권력의 함수관계. (이것도 상당히 중요한 주제입니다)

'진중권 현상'

잘 알지도 못하면서 전문가를 비방하고 마음대로 말하면서 폭언을 일삼는 현상'이 만연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를 <진중권 현상>이라 명명하고 싶습니다. 일종의 문명과 문화의 퇴행현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남의 눈에 든 티는 보면서도 자기 눈의 대들보는 잘 못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2006.4.9 김휘영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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