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새누리당은 안 되는 집구석의 모든 것을 보여주고 있다. 선거가 끝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국민과 지지자에 진심어린 반성과 사과는커녕 자신들이 언제 참패했냐는 듯 도루묵 정당의 몰골로 돌아갔다. 공천 파동의 한 주역인 전직 당 대표는 석고대죄해도 모자랄 판에 경기지사를 만났네 어쩌네 물밑 대권행보를 한다는 기막힌 소식이 들린다. 새 원내대표는 “도로친박당” 비판에 “가소로운 이야기”라고 맞받는 수준이다. 소위 친박이 새누리당의 대주주이고 가장 큰 책임이 있는 계파라는 것은 사실 아닌가.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이다. 비박이 아무리 문제가 많다고 쳐도 친박은 망해가는 새누리당 현실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다. 비박계는 말할 것도 없다. 새누리당 혁신모임은 민의를 듣는답시고 소위 진보학자를 부르기 바쁘다. 비박계의 한 의원이란 사람은 비대위원장으로 손학규를 영입하잔다. 도대체 자기 집 족보도 정체성도 모르는 막가는 집구석이 아니라면 이럴 순 없다.

입은 비뚤어져도 말은 정확히 해야 한다. 새누리당 참패가 진보와 좌파의 표를 받지 못해서인가. 이번 총선에서 보수 혹은 중도보수 상당수는 투표장에 가지 않거나 야당에 표를 주는 방식으로 새누리당을 심판했다. 그렇다면 새누리당이 가장 먼저 해야할 것은 철저한 자기반성과 사죄다. 그리고 확고한 지지층이었던 보수로부터 자신들이 왜 외면당하고 심판당했는지 파악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러면 외부인사 초청간담회에 가장 먼저 초대해야 할 사람은 진보학자가 아니라 보수층의 학자나 전문가들이어야 했다. 최장집 같은 인사의 이야기를 들을 필요가 없다는 게 아니다. 잘못된 진단에 치료의 우선순위가 바뀌었다는 뜻이다. 비대위원장에 손학규 운운했던 것도 마찬가지다. 도대체가 이 정당은 이념도 생각도 국민에 대한 예의와 진심이라곤 눈꼽만큼이라도 찾아보기 어려운 정체불명의 거대한 이익집단에 불과하다는 게 지금까지의 판명된 현실이다.

새누리당의 이념은 선거결과와 정치공학뿐인가

지지층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정당이 별별 잔재주를 부린다고 해서 과연 살아남을 수가 있나. 새누리당은 비대위든 혁신위든 우선해야 할 일은 자기들의 존재 의미, 정당의 정체성부터 분명히 해야 한다. 기초가 없는데 아무리 지붕을 얹고 장식으로 꾸며봐야 모래 위에 짓는 성이나 마찬가지다. 선거 전까지 야당이 ‘임을 위한 행진곡’ 기념곡 지정 가지고 그 난리를 피울 땐 별말 없이 뭉개다가 선거에서 지고 난 뒤에야 야당이 다시 문제 삼으니 “국민 분열을 막기 위해 보훈처가 전향적으로 검토하라”는 것이 지금 새누리당의 정체성이다. 국민분열이 그렇게 걱정됐다면 왜 진즉 기념곡으로 지정하지 않았나. 선거에 지고 난 뒤에야 협치나 국민분열이 걱정되는 정당, 그 해소 방법으로 야당 요구를 그냥 따라가는 정당이라면 다른 선거에서 또 질 경우 그땐 뭘 또 내줄 것인가. 새누리당의 이념과 정체성은 오로지 선거결과이고 정치공학뿐이란 말인가.

박 대통령의 전향적 검토 지시 뒤에 나온 새누리당의 이런 반응은 이 당이 이념이고 소신이고 생각이고 아무것도 없는 정당, 보스의 명령이나 충실하게 따르는 무뇌정당이란 그동안의 비판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임을 위한 행진곡’을 5·18 민주화운동 기념곡으로 지정하든 안 하든 최소한 정당이라면 어떤 합리적 판단과 절차 검토가 필요한데 선거에서 졌으니 협치를 한답시고 야당이 원하는대로 해준다는 게 새누리당의 수준이다. 여기에 무슨 이념과 정체성 판단이 있나. 아니 그런 거창한 이야기 말고 지지층의 요구나 여론이 끼일 여지나 있나. 완벽한 무시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이게 새누리당이 선거에선 진 뒤에 국민과 지지층에 보인 민낯이고 진실이다. 그동안 지겹게 반복해온 사과와 반성이란 상투적인 말도 거짓과 쇼였고, 거대한 새누리당호가 침몰해 가는 것도 모르고, 아니 알면서도 여전히 계파 간 권력투쟁에나 혈안인 망해도 싼 가치 없는 집단임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다.

김용태 혁신위원장은 당을 구원할 밀알이 될 수 있나

새누리당은 처절한 반성과 사죄부터 해야 할 집단이다. 그것이 그래도 마지막까지 이 정당에 희망을 가져보려는 국민과 지지층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이 당에 점철된 번뜩이는 기회주의와 희생없는 무한 이기주의가 당을 망친 근본 원인이라는 점을 알고 말 그대로 뼈를 깎는 혁신을 해내야 한다. 또 그 방법으로 묻지마 좌클릭이라는 멍청한 판단을 반복하는 짓도 그만해야 한다. 무이념 기회주의 혁파야말로 이 당의 최우선 과제다. 새누리당의 싱크탱크 여의도연구원이 총선 사흘 전 이번 선거에서 당이 어려울 것이라는 보고서를 올리고도 내부에서 묵살당했다는 언론의 충격적인 보도도 있었다. 당 전체가 정상적으로 굴러가지 않는다는 방증이다. 여의도연구원 개혁도 이미 필자가 몇 번 언급한 적이 있다. 그 안에는 단지 자기밥벌이를 위한 인물들이 그럴듯한 타이틀을 달고 기생하고 있고 인맥에 의한 원칙 없는 인사행태가 횡행한다. 이런 싱크탱크를 가진 새누리당이 지금의 꼴인 건 당연하지 않나.

성난 국민과 지지자들이 “이 당은 수명을 다했다”고 사망진단서를 끊어줄 판인데 새누리당은 살려고 발버둥치지 않는다. 침몰하는 배 위에서 뭘 더 뜯어먹을게 남았다는 건지 아예 당 전체가 영혼 없는 좀비처럼 방향 없이 설쳐대기만 한다. 선거 전 “정신차리자 한순간 훅간다”고 내걸었던 슬로건대로 훅 가놓고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 반성과 다짐을 담았다는 ‘반다송’ 까지 선보였지만 선거가 끝난 후 쇼였다는 건 지금의 뻔뻔한 모습이 증명한다. 이 노래에 담긴 가사처럼 알바도 그렇게 하면 바로 짤린다. 그런데 지금 새누리당의 모습은 어떤가. 민심을 읽기는커녕 정반대로 가는 어리석음, 자기살을 파먹는 치명적인 안일함과 나태함이 당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 혁신위원장에 선임된 김용태 의원은 당을 뼛속까지 바꾸겠다고 했다. 그런데 그 바꾸는 방향이 여태까지 관성처럼 흘러온 것처럼 묻지마 좌클릭과 같은 것이어선 곤란하다. 국민과 지지자들이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읽고 실패의 원인이 무엇인지 냉철하게 판단해 당이 거듭나도록 소중한 밀알이 되어주길 바란다.

박한명 미디어그룹 '내일' 대표·미디어워치 온라인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