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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전혁. 그는 누구인가? 그는 쾌남아다.

많은 사람들은 그러나 조전혁 같지 않다. 난처한 사안엔 입을 다문다.


조전혁. 그는 누구인가? 그는 쾌남아다. 그는 얌체를 싫어하고 얌통머리 없는 자를 싫어한다. 그런 소인배들은 원칙이 없고 가치의 개념이 없다. 잇속엔 밝지만 대의(大義)엔 무감각하다. 세상은 그러나 그런 자들이 차지하는 것처럼 흘러간다.

정치는 물론이고 학술 문화에서까지 그런 부류가 대세를 이룬다. 이 대세를 인정하는 게 '현실적'이라고도 한다. 그래서 원래는 괜찮던 사람들도 별수 없이 그런 처세법을 따르곤 한다.

조전혁은 이 '별수 없음'에 반기를 든다. 부딪히는 것이다. "뭐 저런 게 있어?'란 식이다. 그래서 이 쾌남아는 자연스레 협객(俠客)이 된다. 옳지 않다고 보는 것을 그냥 내버려두질 못한다. 그는 우선 발언을 유보하지 않는다. 논객이 됐으면 딱 이었을 것이다. "이거 그럴 수 없는 것 아닌가?"

많은 사람들은 그러나 조전혁 같지 않다. 난처한 사안엔 입을 다문다. 성역(聖域)엔 꼬리를 내린다. 대중에겐 아첨한다. 힘 있는 갑(甲)들에겐 삽살개 시늉을 한다.

그러나 조전혁은 그런 상대와 만날수록 신이 난다. 정면으로 대들어 대판 싸우는 즐거움(?)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슈퍼 맨, 아이언이 좋은 '황야의 보안관'이다.

그런 조전혁에겐 따라서 수난이 따른다. 교육계 이념집단은 그를 자신들의 터미네이터로 보고 핍박했다. 그럴 만도 했다. 조전혁은 교수다. 교수는 학문정보를 파는 장사꾼이 아니라 참 교육자여야 한다고 그는 믿는다. 그래서 교육자 조전혁의 양심은 교육계 이념집단의 '아이들 세뇌하기' '학교 세뇌장 만들기'를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

그는 온몸을 던져 싸웠다. "우리 아이들의 영혼을 훔쳐가지 말라" "신성한 교실을 선전선동의 장으로 만들지 말라'고. 그는 교육계의 정의의 투사였다. 정의파는 그러나 세속의 몰매를 맞기 쉽다.

그는 돌팔매를 맞고 피투성이가 되었다. 상처투성이가 되었다. 그러나 상처를 입음이 없이는 거듭날 수 없다. 상처를 입는다는 것은 통과의례 같은 것이다. 고난의 터널을 거치면서 조전혁은 더 우람해졌다.

지금 우리 앞에는 세상을 어디로 끌고 가느냐의 한판 싸움이 붙어 있다. 그 싸움의 주전장은 교육현장이다. 아이들의 머리와 가슴을 누가 더 많이 감동시키느냐의 겨룸. 이것이 우리의 미래를 가름 한다. 특정 전체주의 이념집단은 그 나름의 직업적 전사들이다.

그들에겐 교육계를 틀어쥐기 위한 일관된 전략, 전술, 작전, 교전수칙이 있다. 반면에 개인의 존엄성, 자유, 민주, 공화, 인권, 개방의 가치집단에도 그만한 전투능력이 있는가? 이것이 문제다.

이에 대해 조전혁은 확신이 있어 보인다. 이제는 그가 그 확신을 더 토로하고 더 전파하고 더 행동화하기를 기대해야 할 때다. 소인배가 들끓는 세태일수록 바른 소리 하는 사람이 고픈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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