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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 소설 <상실의 시대>에 나타난 더치페이에 대한 일본 여성의 태도

코리안 페이 문화는 여성의 주체적 성장과 행복을 저해해

【빅뉴스=서울】김휘영의 행복칼럼=# 장면 1. 일본 남성이 술값을 지불하겠다는 데도 일본 여성이 만류하는 장면

- 보드카 토닉을 다섯 잔씩 마시고 나서야 우리는 가게를 나왔다.
내가 돈을 내려고 하자 미도리는 내 손을 툭 치면서 밀어 내더니, 지갑에서 빳빳한 1만 엔짜리 지폐를 꺼내 계산을 마쳤다.
“괜찮아, 아르바이트한 돈도 있겠다, 또 내가 자기를 불러냈잖아” 하고 그녀는 말했다.
“ 물론 자기가 굳건한 신념을 가진 파시스트여서 여자가 내는 술 따위는 얻어먹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다면 다르지만.”
“아니, 그렇게 생각하고 있진 않아”


<<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상실의 시대’에서 주인공 와타나베와 미도리가 술집을 나올 때의 모습 –문학사상사, P270 >>

이 장면에 대한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필자가 설명을 덧붙이자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이자 하루키 열풍을 일으킨 <상실의 시대>는 원제가 <노르웨이의 숲>이고 하루키의 젊은 시절을 그려낸 자전적 성격의 소설이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1949년생이고 1968년 와세다 대학에 입학한 걸로 보아, 이 소설 속 미도리는 21세기 하고도 10년이 더 지난 현재 일본 여성이 아니라, 무려 40년도 더 지난 1970년대 중반 시기의 일본의 젊은 여성이라 보아야 적절하다. 즉 이 당시 일본의 젊은 여성들이 남자와 데이트를 한 후, 그 지불방식에 대한 인식을 엿볼 수 있는 한 장면으로 보면 더 이해하기 쉽고 정확하다. 이런 시대적 인식이 있고서야 이로부터 무려 40년이 지난 후인 2013년 한국 남성들이 '문화지체현상을 겪고 있는 소위 김치녀들'에 대해 갖고 있는 불만과 원성의 실체에 좀 더 가까이 접근할 수 있다. 실제로 이 작품이 발표된 해는 한국에서 6.10 민주화 항쟁으로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한 1987년이니, 아무리 늦게 잡더라도 소설 속 시대배경은 최소한 4반세기 또는 그 이전인 건 확실한 셈이다.

알다시피 일본은 남녀가 데이트를 할 때 더치페이는 기본 에티켓에 속한다. 굳이 이 소설 속 장면이 아니라도 일본의 남녀가 데이트를 하면서 여성이 남성 측에서 그 부담을 다 해주기를 바라는 건 상상하기 힘들다. 사실 일본 여성들에게 이런 생각은 '당연한' 기대가 아니라 일종의 '수치스러운' 일에 속한다.

하루키 소설 <상실의 시대> 속 이 장면은 일본 문화에서는 상식이자 일종의 에티켓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더치페이를 마다하고, 남자 주인공 와타나베가 상대 여성의 술값까지 함께 지불하겠다는데, 오히려 상대 여성인 미도리가 이를 가로막으면서 자신이 지불하는 모습을 하루키가 담담하게 그려낸 모습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필요가 있는 부분은 남성이 지불하려는 걸 만류하는 ‘명분(cause)’으로 미도리가 내건 부분이다.

‘쪼잔한 남자’와 ‘신념 굳건한 파시스트‘- : 2013년 한국의 김치녀와 40년 전 일본 여성의 더치페이에 관한 인식 차이

데이트한 상대 여성의 몫을 남성이 대신 지불해주겠다는데 ‘굳건한 신념을 가진 파시스트’ 라니? 이게 무슨 말인가? 흔히 한국에서 원성이 자자한 소위 김치녀들이 더치페이를 주장하는 한국 남자를 핀잔하며 내거는 용어는 그야말로 ‘쪼잔한 남자‘다. 그러니까 이 소설 속의 상황에서 대부분의 한국 여성들이 생각할 건 이 반대인 ’남자답고 쪼잔하지 않은 남자‘다. 그런데 미도리가 내건 건 많은 여성들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경원시하는 ‘굳건한 신념을 가진 파시스트’ 다. 서양에서 상대에게 파시스트라는 말은 심한 모욕을 주는 금기어에 해당하고, 이에 불구하고 사용한다면 심각한 보복을 각오해야 한다. 이런 관계로 서양의 인터넷 커뮤니티 포럼엔 파시스트란 단어를 못쓰게 해 놓은 곳도 많다.

즉 한국에서는 남자가 더치페이를 하자고 하면 ’쪼잔한 남자‘로 치부되고, 자신과 데이트를 한 상대 여성의 몫을 지불해주어야만 ’쪼잔하지 않는 남자‘지만, 일본 여성의 경우에는 오히려 더치페이를 하지 않는 게 이상한 케이스로 이때의 남성은 즉 ’굳건한 신념을 가진 파시스트’ 즉 좀 이상한 남자 또는 마초남으로 묘사되고 있다.

아무리 소설 속이라 해도 무라카미 하루키가 일본 문화 속에 성장한 작가가 아니라 한국 문화 토양 속에서 성장한 사람이라면 이 장면을 이런 용어를 동원하면서 묘사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판단된다. 적어도 일본의 젊은 여성들에게 남녀간의 데이트에서 더치 페이를 하고 말고는 '기본 에티켓을 갖춘 사람'과 기본 에티켓이 없는 사람'으로 나누어 지는 사안에 속한다. 그리고 여기서 구분되어 말하여지는 대상도 남성이라기 보다는 주로 여성이다. 적어도 이 문제에 대해서 한국의 일부 젊은 여성들이 갖고 있는 인식인 '쪼잔한 남자'와 '쪼잔하지 않은 남자'로 구획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한국의 젊은 남녀간의 데이트에서 주로 남자들이 다 지불하는 방식인 코리안 페이 방식이 여성에게 이익일까? 단기적으로는 그렇게 느껴질 지도 모른다.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일시적인 착시일 뿐 구조적으로 사회적 약자인 여성의 착취로 귀결될 가능성이 훨씬 높다. 그래서 여성의 행복에 오히려 마이너스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고 판단된다. 그리고 여성들의 불행은 한국 사회 전체의 불행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행복과 불행은 주변인들과의 공감의 정도와 질에서 크게 좌우되는 속성이 있는데 여성이 행복해지기 위해서 공감받아야 할 중요한 상대방이 누구일까를 생각해보라!


# 장면 2. 한국에 독특한 소위 김치녀들에 대한 한국 남성들의 원성 ~ 일부 한국 여성들의 이상한 의존의식 (출처 : MBC 100분토론 시청자 의견 게시판 - 검색어 : 이택광, 김치녀(제목)

(~중략~) 일반여성이 아닌 사람들이 지하철 폐륜녀를 비판 하듯, 김치녀를 비판 합니다.

1. 남녀평등을 외치면서 더치페이를 권하는 남자를 ‘쪼잔’하게 취급하며, 2. 기념일 날 자신은 십자수를 주지만 남자는 명품백을 사주기 원하며, 3. 자신은 연봉 2000이지만 남편은 7000이상 벌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4. 결혼할 때 남자는 32평 전세집을 마련해야하지만 자신은 2000만원 혼수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여자를 김치녀라 부릅니다. (이하 중략)


김치녀의 진화사회학적 측면

사실 여성으로 태어나서 경제력이 좋은 남성을 배우자로 얻으려는 건 진화사회학적인 측면에서 보면 이상한 게 아니라 자연스러운 전략의 하나다. 왜냐하면 요즈음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등 국가기관에서 육아에 대한 여러가지 혜택을 늘이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성은 자신의 아이를 임신하고 낳고 양육하는 상당기간 동안 활동에 많은 제약이 따르기 때문이다. 이 전략은 한국 여성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며 전 세계 여성들 대부분이 가진 일종의 진화적인 산물인 것이다. 여성들은 이를 위해서 특히 결혼 시기를 앞두고 미모를 가꾸거나 학력과 교양을 갖추는 등 노력을 한다. 요즘에는 맞벌이 부부 선호 경향에 걸맞추어 여성도 좋은 직업을 갖추어서 혼인 시장에서 매력적인 조건을 갖추고자 노력하는 여성들도 매우 많다. 이를 비난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그러나 한국에서 사회문화적으로 지탄의 대상에 오르는 소위 김치녀들의 경우는 이런 게 아님을 알 수 있다. 이들은 자신의 각종 매력지수를 높이는 노력에 비해 기대하는 남성상의 정도가 지나쳐서 남성에게 기대하는(expect to) 게 아니라 기대고(depend on) 의존하는 걸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는 걸 파악할 수 있다. 그래서 한국 사회에 크고 작은 다양한 종류의 갈등을 유발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아닌 게 아니라 필자의 친구 중에는 바로 이런 문제로 이혼까지 한 사람이 있다. 이건 분명 한국 문화에서 일어나는 특이한 현상으로 한국 사회의 행복지수를 높이기 위해서는 그 원인과 대책을 제대로 연구할 필요가 있다.

일단 이에 대한 서구 여성들의 시각을 한번 엿보자.

# 장면 3. 그렇게 자신이 없으세요?- 한국 여성의 남성에 대한 지나친 기대심리에 대한 미수다(미녀들의 수다) 외국여성의 반응 (출처: 머니 투데이 기사 - 파란 부분은 기사 인용)

당시 방송에 출연한 한 게스트는 결혼 상대자의 판단 기준으로 남성의 경제력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대부분의 외국인 출연자는 쉽게 이해할 수 없다는 의견이었다. 남성이 여성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한국 출연자를 향해 '그렇게 자신이 없으세요?'라고 반문하는 외국인 여성 출연자는 많은 남성들로부터 지지를 받았다.

한국의 소위 김치녀들이 가진 의식이라면 “그렇게 자신이 없으세요?”를 미수다의 외국인 여성들이 한국의 일부 성인 여성들의 비주체성과 의존증을 비꼬는 말인 ‘그렇게 자신의 힘으로 살아갈 자신이 없으세요?’ 가 아니라 그렇게 (남자에게 한껏 대접받을) 자신이 없으세요?“ 로 받아들여질 지도 모른다.

# 장면 4. 필자가 약 15년 전 즈음 서양 여성들의 더치페이 문화에서 직접 겪었던 문화충격의 사례

1997년 IMF 시절 부근이었으니 지금으로부터 약 15년 즈음 이전의 일이다. 당시 필자는 무역 사업의 확장으로 자연스럽게 여러 나라에서 오는 바이어들을 자주 접대해야 했다. 한번은 오스트레일리아(호주)에서 온 바이어였는데 이 때 겪은 일은 아마 평생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 금발 여성 CEO의 이름은 제니(Jenny)였다. 대학 시절부터 파바로티의 아리아나 세계 각국의 예술가곡 부르기를 즐겨하는 필자였기에 참 좋아했던 노래 속 ‘금발의 제니(Jeanie with light bright brown hair)’를 이렇게 직접 만나 보게 되어 영광이다‘ 라는 말을 하면서 흐밍으로 노래가락을 읊었더니, 참 해맑게 웃던 30대 후반의 커리어 우먼이었다. 작곡가 포스터가 자기 아내가 시냇가를 거닐던 모습을 아름다운 노랫말로 작사하고 멋지게 옮긴 로맨틱한 노래라서 즐겨 부르는 노래라고 설명해 준 후, 그런데 실제 노래 가사는 ’밝은 갈색 머릿결의 지니‘인데 한국에서는 어찌된 일인지 ’금발(blond)의 제니(Jenny)’란 곡명으로 잘 알려져 있다고 했더니, “Mr. Kim은 참 재미있는 분”이라 둥 웃었다.

한데 이 30대 후반의 여사장이 70대 초반 즈음의 한 여성과 함께 왔는데 자기 엄마라고 했다. 한국을 방문하고 싶어 하셔서 모셔 왔다고 했고, 이 분의 성함이 로즈(Rose)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호주가 영연방의 하나라서 그런지 전형적인 영국식 액센트를 가진 상당히 기품 있어 보이는 분이었다. 삼성동 인터콘티넨탈 호텔에 예약하는 일부터 여러 일을 우리 회사 측에서 도와 주었다. 고객이니 회사측에서 당연히 제공해야할 접대라고 생각하고 정성을 다했고 귀국 후 그 접대가 아깝지 않을 만큼 오더를 받았다.

그런데 다시 호주로 귀국하기 전날 그동안 각종 편의와 접대를 받은 일에 감사하다며 그 날 저녁은 자기 측에서 대접하고 싶다고 했다. 상대방의 호의를 거절하는 것도 예의가 아닌 듯하여 그날 밤 직접 핸들을 잡고서 이 모녀를 미사리로 에스코트해 갔다. 이왕이면 한국에서 독특하게 발달한 라이브 카페 콘서트 문화를 소개해 주면, 이 모녀에게 좋은 추억이 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필자가 충격을 받은 건 과거 최고 인기 미남 가수였던 최성수의 공연을 즐긴 후, 계산할 때의 일이었다. 바이어 측에서 대접(treat)해 준다고 해서 가만히 보고 있는데, 모녀가 계산대 앞에서 계산서를 갖고 뭔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무슨 문제라도 생겼나 걱정되고 또 통역이 필요할까 싶어 카운터에 갔다. 일인즉, 레스토랑 측에서는 당연히 한 사람이 모든 손님의 몫을 계산할 것으로 생각하고 계산서를 하나만 내놓았는데, 제니는 나와 자신의 몫을 계산하고 엄마인 로즈는 자신이 먹은 저녁을 따로이 계산해서 지불하느라 그랬던 것이다.

한국의 전통적인 효도의 관점에서 보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장면이라 필자에겐 적지 않은 충격이었던 게 사실이다. 제니는 일반 가정주부도 아닌 한 회사의 CEO였고 또 아무리 인기가수의 공연료까지 포함된 식대라고 하나 그리 비싼 편도 아니었는데, 모녀가 각기 따로 계산한다는 게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 일에서 가장 인상적(impressive)이었던 건 바로 이 일을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여기는 제니가 아니었다. 그 보다는 엄마인 로즈의 반응이었다.

한국이라면 돈 많은 딸이 나이든 모친의 식사비를 따로 계산한다면 ‘천하의 불효자식’을 운운할 법하다. 무엇보다 부모 스스로 챙피해 하며 부끄러워했을 법하지만 호주에서 온 로즈라는 70대 여성은 전혀 그런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좋은 딸 덕택에 한국까지 와서 이렇게 멋진 저녁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걸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라며 Mr.Kim(필자)에게도 특별히 감사해 했다.

이 황당한 사태를 접하고서 충격을 받은 필자는 좀 더 깊은 생각을 해야만 했다. 일단 이 외국 여성들은 더할 나위없이 정겨운 모녀 사이였기 때문이다. 이는 서로간에 주고받는 대화를 들어 보면 누구나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올바른 이해를 위해서는 제니가 자신의 엄마인 Rose를 아끼고 사랑하지 않았다면 비즈니스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수 밖에 없는 해외 출장에 나이든 엄마를 굳이 함께 데려올 이유가 없었을 것이라는 점부터 시작해야 했다. 딸 제니가 엄마 로즈를 아끼고 사랑하는 건 다음 날 출국하기 전 남대문시장을 갔을 때 더욱 잘 확인할 수 있었다. 한국 방문을 추억하기 위한 작은 기념품들을 사고 싶다길래 데려갔을 때, 로즈는 특별히 한국의 예쁜 도자기(瓷器)들을 참 좋아했다. 딸 제니는 엄마를 위해 선물하겠다고 한 후, 엄마와 함께 예쁜 도자기들을 고른 후 자신의 카드로 기꺼이 지불했다. 모녀가 정답게 아기자기한 도자기들을 고를 때마다 로즈는 연신 어린 아이 마냥 ‘쏘 뷰티풀(so beautiful)을 연발했고 딸인 제니가 선물로 준다고 할 때, 엄마인 로즈는 기쁜 마음으로 ’땡스(thanks!)’를 연발했다.

필자가 요즘 들어 이 모녀 생각이 더 자주 떠오르는 건 요즘 한국에서의 새로운 세태를 뉴스로 또 개인적으로 접하고 있기 때문이다. (2부에서 계속)

글 : 김휘영 문화평론가·행복문화발전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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