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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직구 청춘투쟁기⑤] 존 스튜어트밀과 나의 자유주의 노선

"우리나라, 자유주의와 보수주의 양축이 정상궤도 이탈...반공자유통일 연대구축해야"

논객 변희재는 종종 좌파와 우파 모두로부터 비난 받는다. 주로 '진짜 우리편 맞냐'는 비판들이다. 이와 관련 본인은 이미 여러차례 나의 사상적 기반은 '존 스튜어트 밀'이라고 밝힌 바 있다.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주의에 사상적 기반을 두고, 변희재 대표고문은 자유통일 강대국 코리아를 꿈꾸면서 북한의 전체주의 정권을 맹렬하게 비판해왔다. 또한, 좌우를 가리지 않고 거짓과 위선은 모두 비판의 대상으로 삼았다. 본지는 변 대표의 자서전 ‘변희재의 청춘투쟁’에서 흥미로운 대목을 선정, 매달 일부를 연재하고 있다. 물론, 변 대표의 기타 과거 저서와 기고 중에서도 '인간 변희재'를 설명하는 좋은 소재가 있으면 발굴해 소개할 예정이다. ‘변희재의 청춘투쟁’은 현재 미디어워치 홈페이지를 통해 절찬 판매 중이다. - 편집자주





나는 대학시절 신좌파식 거대담론은 실질적으로 일상에서의 중요한 싸움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악용되며, 오히려 철밥통 기득권세력과 유착해 왜곡된 체제를 더 심화시킨다고 판단했다.

나는 당시 내 머릿속 사상적 고민들을 해결하기 위해 고전을 찾았다. 마침 김지룡 문화평론가가 내게 제안한 고전 리메이크 기획을 위해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과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 등을 다시 찾아 읽게 됐다. 특히 존 스튜어트 밀의 저서들은 내게 깊은 영감을 줬다.

존 스튜어트 밀은 다수의 무지가 개인의 양심과 이성을 침해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또한 잘못된 관습은 물론 잘된 관습이라 하더라도 특수한 개인에 그대로 적용돼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대학에서 학생운동권이란 거대한 집단주의와 홀로 맞서 싸우던 내게 존 스튜어트 밀의 저작물들은 빛의 영감이 됐다. 나는 존 스튜어트 밀 관련 각종 자료들을 조사해 ‘자유론’ 리메이크 작업에 나섰다. 이에 책 한 권 분량 원고를 마쳤으나, 여러 가지 사정상 출판을 하지 못하고 그대로 컴퓨터에 보관돼있다.

대한민국에선 친노종북세력의 선동으로 ‘진보 vs. 보수’ 이분법으로 사상을 구분하는 경향이 짙다. 그러나 엄연한 정치철학 개념으론 이런 이분법이 아니라 ‘사회주의 vs. 자유주의 vs. 보수주의’, 이렇게 삼분법을 쓴다. 나는 그릇된 관습이나 다수의 무지에 도전한단 점에서 보수주의보단 왼쪽에 있는 자유주의자다. 그러나 사회주의식 집단체제를 받아들이지 않는단 점에서 좌파가 될 수 없다. 또한 자유주의자는 체제 자체를 급진적으로 변화시키기보단 체제 내에서 일상의 개혁을 시도한단 점에서 사회주의와 차이가 있다.

존 스튜어트 밀은 3살 때부터 당대 철학자인 아버지 제임스 밀로부터 라틴어와 희랍어, 미적분을 배운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성인이 될 때까지 본인을 둔재로 오인했다. 그가 유년 시절 만나고 토론한 사람들이 죄다 아버지 친구들인 당대 석학들이었기 때문이다. 성년이 되면서 자신이 괴물 수준 천재란 점을 인식한 뒤, 그는 정신적 혼란에 빠진다. 그때 만난 여인이 안타깝게도 유부녀였다. 존 스튜어트 밀은 단지 결혼했단 이유로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과 함께 할 수 없는 관습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 관습에 급진적으로 도전하지 않았다. 무려 30여년을 기다린 끝에 그녀의 남편이 죽자 결혼하는, 놀랍도록 온건한 수순을 택했다. 그러면서 30여년을 기다린 아내를 위해 ‘여성의 예속’이란 책을 함께 쓴다.

그는 늘그막에 영국 국회의원 선거에 도전했다. 그의 공약은 “지역구를 위해 아무 일도 하지 않겠다”, “선거에 돈을 쓰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더 놀라운 건 그런 그가 영국 국민의 선택으로 당선됐다는 점이다. 존 스튜어트 밀은 대표적 자유주의자지만, 바로 이러한 영국의 빛나는 정치적 전통은 보수주의의 근간을 이루게 된다. 즉 보수주의는 친노종북세력이 선동하는 대로 나쁜 걸 그대로 유지하자는 게 아니라, 지금 봐도 혀를 내두를 만한 영국의 선진정치를 후손들이 계승 발전시키자는 정치철학인 것이다. 새정치를 내세우던 안철수 새민련 대표가 당선만을 위해 노원구 전셋집에 들어가 뼈를 묻니 마니 정치쇼를 하는 한국의 현대정치와는 비교도 안 되는 수준이다.

바로 이렇듯,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란 체제 내에서 잘못된 관습들을 고쳐나가며 개인의 자유를 극대화하는 자유주의 노선과 역사를 통해 검증된 선조들 지혜를 계승 발전시켜나가는 보수주의 노선이 양대 축이 돼야한다는 생각이다. 나 역시 애국진영에서 보수주의 노선 인사들과의 교류를 통해 보수주의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혔다. 그리고 이 두 가지 노선은 북한 김정은의 봉건폭력체제를 때려 부숴야 한다는 공통된 목표의식 하에서 최소한 현재로선 강력한 연대를 이루고 있다. 



대한민국의 정치 역시 마찬가지다. 영국과 미국의 선진정치 및 대한민국 건국과 산업화 역사를 계승하는 보수주의 정당, 그리고 개인의 자유와 창의성을 위해 잘못된 관습을 점진적으로 바꿔나가는 자유주의 정당이 양대 축으로 서있어야 한다.

새정치민주연합 전신인 민주당은 1955년 신익희 국회의장, 조병옥 경무대장 등 이승만 대통령의 건국동지들과 김성수 동아일보 창업자 등 호남의 지주계급이 만든 한민당이 결합돼 창당된 정당이었다. 이 민주당은 사실상 이승만, 박정희 정권보다 더 오른쪽에 서있던 우파정당이었으나, 정권의 장기집권과 맞서 싸우다보니 조금씩 미국식 리버럴 노선으로 변화했다.

그러다보니 1997년 김대중이 집권할 당시만 해도 김종필, 박태준 등 산업화세력과 연합하는 한은 있어도 종북 노선의 민주노동당과 손을 잡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 덕에 공기업 민영화, 시장개방 등 산업화와 자유주의 경제 노선을 걸어 IMF 외환위기로부터 조기졸업할 수 있었다. 노무현 정권이 추진한 한미FTA 초안을 설계한 것도 바로 김대중 정권이었다. 나 역시 2003년 노무현과 386 강경세력이 열린우리당 분당을 해나가기 전까지만 해도, 이 같은 자유주의 노선의 민주당을 지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김대중과 김정일의 6.15 공동회담 이후 급격히 민주노동당과 통합진보당의 종북 노선에 끌려 다니고, 친노 강경 386세력이 당을 장악하면서 민주당은 자유주의 노선에서 완전 이탈, 현재는 도저히 국정운영을 감당할 수 없는 운동권 학생회 수준 정당으로 전락해있다.

반면 새누리당 역시 친노세력이 여의도 정치를 주도하면서 조금씩 건국정신, 경제성장, 자유통일 등 우파적 노선에서 이탈, 보수정당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고 있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이 연속적으로 집권하고 있음에도 대한민국 건국대통령 이승만 기념관에 예산 한 푼 배정 못하는 게 현재 새누리당의 현실이다. 거기다 이 새누리당의 기회주의자들은 가족이 뇌물 먹다 수사 받던 중 자살한 노무현의 재단에 2014년만 해도 예산 60억 원을 책정해줬다.

이렇듯 정치철학서에 실린 자유주의와 보수주의 양축의 정치세력이 정상궤도에서 이탈한 현재, “어떤 정당을 지지하느냐”는 질문은 실질적으로 무의미하다. 자유주의와 보수주의 가치를 살려나갈 정치세력과 시민운동세력을 재건하는 게 급선무다. 국내외적으로 정치가 안정돼있는 영국이나 미국과 달리, 4대 열강에 둘러싸인 채 김정은으로 상징되는 반국가세력이 한반도 북쪽을 불법점령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상 자유주의와 보수주의 가치를 모두 담은 강력한 단일정치세력이 결성될 필요도 있다. 최소한 북한 김정은 체제가 무너지고 자유통일 코리아가 건설될 때까지, 자유주의와 보수주의 공통의 적은 김정은 식 전체주의 폭압정치이기 때문이다.

('변희재의 청춘투쟁' 115~120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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