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혁당 장기수 출신 고 신영복 성공회대 교수에 대한 우리 사회 일각의 추모 분위기가 지나치다는 비판이 거센 가운데 신 교수와 오래 교류했던 한 지인이 24일 자신의 SNS를 통해 이 같은 현상을 비판했다.
특히 그는 한겨레신문의 <신영복, 그는 본디 붉은 경제학자였다> 등의 일부 기사를 지적하며 “2012년 경 쓰여졌다는 위의 서화 ‘석과불식’과 그 말에 담긴 신 교수의 설명을 어제 SNS에 올라온 한겨레 기사를 통해 처음 보고는 소름이 끼쳤다.”고 했다.
A씨는 신 교수와 가까이 지내면서 그를 많이 따랐다고 고백했다. 그러다 어느 시점에서 전향하지 않은 그의 이데롤로그 실체를 간파하고 이후로 만남을 자제했다고 밝혔다.
A씨는 신 교수가 자주 인용하던 주역의 산지박(山地剝)괘에 대해선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그는 “주역의 산지박 괘에 대한 그의(신영복) 설명은 바로 그가 왜 감옥에서 전향서를 쓰고서도 전향하지 않았는지, 혁명을 같이 시도하다가 여러 동지들이 사형을 당했으나 자신에게 맡겨진 혁명과업의 완수를 위해 자신이 취해온 행동들, 즉 전향서를 쓰고서 감형받고 살아남은 이유와 경위, 그 정당성을 변명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생전 신영복 교수는 자신의 강의 내용 등을 정리해 ‘인문학 특강’을 중심으로 엮어 낸 <담론>-‘신영복의 마지막 강의’ 책에서 석과불식에 대해 주역의 ‘산지박괘’와 ‘지뢰복괘’를 끌어와 “최고의 인문학”이라고 치켜세웠다.
신 교수는 “씨 과일은 새봄의 새싹으로 돋아나고, 다시 자라서 나무가 되고, 이윽고 숲이 되는 장구한 세월을 보여준다. 한 알의 외로운 석과가 산야를 덮는 거대한 숲으로 나아가는 그림은 생각만 해도 가슴 벅차다. 역경을 희망으로 바꾸어내는 지혜이며 교훈이다.”라고 설명했다. 석과불식의 요체가 “사람을 키우는 일”이라는 것이다.
A씨는 “산지박의 근거의 맨 위 양효에 해당하는(즉, 큰 과실에 해당하는)괘를 자신에 비기고, 그간 자신이 수많은 인고의 세월동안 얼마나 많은 붉은 색의 전사들을 키워내 왔는지, 그것이 변혁운동에서 혁명역량의 저변확대에 얼마나 큰 기여를 하였는지를 자부함으로써 당시 종북좌파 내부에서 거세게 일어나고 있던 요구, 즉 이젠 사색 그만하고 현실 변혁운동에 적극 동참하라는 요구를 거절하는 논리로 개발한 것이 바로 저 석과불식이었다고 생각된다.”고 설명했다.
한편, 박한명 시사미디어비평가(미디어내일 대표)는 25일 칼럼을 통해 신영복 교수를 포섭한 인물인 통혁당 사형수 김질락의 옥중수기를 근거로 “옥중수기에는 신영복이 김질락에게 이런 말을 하는 대목이 나온다. “...그래서 무척 조심했습니다. 다 걸리지 않게 쓰는 방법이 있지요. 외견상으로 볼 때 누가 봐도 저는 순수한 자유주의자죠. 학생들에게 강의할 때 될 수 있는 대로 쉽고 재미나는 말로 계급의식을 주입시키지요....””라고 쓰인 대목을 언급한 뒤 “이렇게 위험하지 않고 안전하게 학생들에 사상교육을 했던 신영복에게 대중을 현혹하는 글재주, 말재주가 있었음을 볼 때 그가 말하는 ‘사람을 키우는 일’이 무엇이었는지는 더더욱 알 수 없는 노릇”이라고 의미심장하게 꼬집었다.
미디어내일 박주연 기자 phjmy975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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