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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워치】김휘영의 문화평론= 일단 뜬금없는 간섭을 줄이자

“요즘 뭐하고 지내?” “취업은 언제 할래?” “결혼은 안 할 거니?” “어느 대학에 들어갔니?” 이들은 각종 설문조사에 나온 명절 스트레스를 일으키는 대화들이다. 마치 추궁하는 듯한 이런 말들은 건네는 사람의 의도가 어떠하든 간에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는 상당한 스트레스를 양산한다. 구체적인 대안이나 해결책을 내놓을 때가 아니라면 가급적 이런 질문은 하지 않는 게 서로 좋다. 상대방에 대한 간섭을 적게 하는 건 자신의 인격함양에도 좋다. 정 간섭하고 싶다면 좀 더 세련된 방식으로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것이 그 효과도 좋다. 이는 ‘간섭 공화국’에 대한 필자의 지난 글을 참조하면 좋다. <참고> : ☞ 명절 스트레스의 주범- 지나친 간섭, 애정인가 질병인가? (2014. 02.01, 미디어 워치, 김휘영의 문화칼럼)

유럽과 아시아에서 각각 초강대국을 건설한 영미 문화권과 중화문화권에서 통용되는 인사말(greetings)은 묘하게 같다. 즉 “하 아 유(How are you?)” 와 “니하오?/니하오마?(你好?/你好吗?)” 인데 한국 말로 해석하면 둘 다 "당신 기분이 어때요?"로 상대방의 기분이나 감정상태를 중시여기는 인사다. 그 다음 나오는 인사가 보통 “만나서 반가와요”인데 영어로 'Glad to meet you!' 와 중국말 ‘런시니 헌까오싱’이다. 특이하게 한국에는 이 '만나서 기쁘다‘는 감정 표현이 상대적으로 적게 쓰인다. 대신 “몇 살이에요? “ 같은 각종의 호구조사가 진행되는 게 대부분이다. 재미있는 건 영미권과 중화권의 작별 인사도 같다. ’See you later!‘ 와 ’짜이지엔(再見)‘ 인데 둘 다 한국말로 표현하면 ’다음에 또 보자!‘다. 이는 지속적인 인간관계를 원한다는 뜻을 갖고 있는데 이를 우리 한국에서 가장 많이 쓰는 ’잘 가!‘와 비교해 보면 우리보다 훨씬 '관계(relation)'를 중시하는 인사법임을 알 수 있다.

영미권의 ‘하 아 유’와 중화권의 ‘니하우마’를 우리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안녕하세요/안녕하십니까?“ 와 비교해 보면 그 의미와 용도 등 많은 면에서 차이가 난다. 더구나 우리 한국 사회에는 존댓말의 존재로 인해 이는 상대방에 대한 호의를 전달하는 인사라기보다는 손 윗사람을 존대하는 ‘예의’의 의미가 강하게 작용한다.

동양 사회의 규범인 예(禮)의 부정적 측면은, ‘너, 나, 우리 모두가 좋다’는 공중도덕의 기능을 가진 서양의 매너나 에티켓과 비교해 볼 때, 상하간의 위계질서라는 의식이 강하게 수반된 문화양식이기에 인간관계에 무의식적인 스트레스를 양산해 내고 있다는 점이다.

사회적 긴장도 (the stress of the society)

‘사회의 긴장도’를 '당겨진 실'로 표현하자면 횡적인 유대관계를 중요시하는 서양보다 종적인 위계질서를 강조하는 우리 사회가 훨씬 팽팽하다. 이는 우리 한국인이 서양인들보다 훨씬 긴장 상태에서 일생을 살아가야 함을 시사한다. 각종 스트레스(stress)가 작용하는 긴장된 생활을 해야 하므로 이는 각종 사건사고는 물론 암(癌)과 정신질환 등 각종 질병을 유발하는 원인이 된다. 스트레스 해소용 음주문화의 만연과 흡연 등으로 치뤄야 하는 사회적 비용도 막대하다.

집단에서 ‘심리적 억압(pressure)‘을 감내하며 살아야 하는 아랫사람들만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행동심리학자들의 쥐 집단 실험에 의하면, 우두머리 쥐가 아래 쥐들보다 훨씬 많은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고 있다는 행동 양상을 보인다고 밝혀졌다.

우두머리 개체는 다른 하위 개체들이 혹시라도 자신을 업신여기거나 반란 같은 하극상을 꾀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쉴 새 없는 견제와 감시, 더 나아가 실력행사를 통한 응징까지 하며 지내야 하기 때문으로 분석한다.

이는 우리 한국 사회에서 윗 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반말을 하는 경우에 아랫사람이 받는 스트레스의 크기보다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반말할 경우에 윗사람이 받아야 하는 스트레스는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인 것만 봐도 짐작할 수 있다. 아랫사람이 윗 사람에게 반말을 하면 윗사람은 마치 자신의 존재가치가 걸린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새로운 인사말- “요즘 재밌니?“

이에 필자는 한국 사회에 통용되었으면 참 좋을 새로운 인사말을 제시하고자 한다. 말하는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적게 주고 동시에 상대방이 대답하기에도 부담이 덜한 것으로 “요즘 재밌니?”가 참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이 인사말은 동세대간은 물론이고 현재 한국 사회에서 가장 많은 스트레스를 양산하고 있는 상황인 ‘윗 사람이 아래 사람에게 건넬 때’ 특히 효과가 좋다. 물론 단순히 “재밌니?“ 도 좋고 ”요즘 어때, 재밌니?” 등으로 분위기에 맞게 다양하게 변화시켜 사용해도 좋다. 응답으로는 “좋아요(fine)“ "응, 너는?" 또는 ” 예, 좋아요, 댁은요?(Fine, and you?")가 적당하다.

다만 재미라는 용어나 관점을 어색하게 여길 수도 있을 법한 80대 이상의 윗 세대를 향해서는 “요즘 건강은 좀 어떠세요?“가 무난할 것 같다. 언어가 의식을 규정하는 까닭에 우리 사회가 “요즘 재밌니?“라는 인사말을 많이 사용할수록 점점 재미있고 행복한 사회로 발전해 갈 것도 분명하다.

윗 세대/윗 사람의 의식전환

행복은 인간의 감정상태를 표현하는 말로 이는 인간관계에서의 소통과 공감의 정도에 많이 좌우된다. 소통과 공감이 잘되는 집안일수록 웃음꽃이 피고 대화가 단절되고 공감이 적은 집안일수록 분위기가 얼음장 같다. 사실 집안 분위기를 결정하는 핵심적인 관건은 윗 세대와 윗 사람이 쥐고 있음도 사실이다. 자식, 동생, 며느리 등 아랫 사람들이 복종을 아무리 잘하더라도 집안분위기가 화기해애해지지 않는다. 복종으로는 기껏해야 ‘위장된 평화’ 같은 정적을 얻을 수 있을 뿐이다. 이런 게 언젠가 곪아 터지면 심각한 문제로 전이되기 쉽다. 이런 집안은 명절에 의무감으로 모이긴 하지만 각자의 방에 숨어 지내다 제사 때 얼굴을 잠시 보이고 밥먹고 재빨리 헤어진다. 의무감에서 하는 일인 만큼 결코 길지 않은 이 시간에 1년 치 이상의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들도 부지기수다. 한국은 매년 설, 추석이 지난 후 이혼율이 급증하고 심지어는 명절 때 친족 살인이나 자살도 빈번하게 발생하는 특이한 나라다. 사정이 이러하니 ‘명절이 차라리 없었으면 좋겠다’는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

집안 분위기가 우애있고 행복해지려면 무엇보다 '윗 사람들의 의식'이 변해야 한다. 아랫사람들은 집안 분위기를 바꾸려고 해도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거인이 높은 담장을 허물자 사라졌던 아이들이 몰려와 놀고 꽃이 피고 새가 울더라’는 동화가 시사하는 점도 이것이다. 그런데 윗 사람들의 권위의식과 특권의식 같은 것들을 ‘거인이 스스로 담장 허물기'하듯 버리는 일이 쉽지 않다. 의식 전환이 따라야만 가능한데 아랫 사람의 조언을 윗사람의 권위에 대한 심각한 도전으로 느끼는 우리 정서상 이 또한 스스로 깨치는 수 밖에 없다.

공감의 대화법 - “어때(How ~)?”

인간관계의 기본은 공감이다. 공감능력을 기르고 또 대화하는 상대방과의 공감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가능한 '무엇/뭘(what ~)' '왜(why ~)' '언제(when ~)'형식으로 심리적 긴장감을 초래하는 대화법 보다는 '어때/어떻니?(how ~)'의 형식으로 상대방의 감정을 존중하는 대화법을 사용하는 언어 습관을 기르는 게 좋다. 비슷한 질문이라도 '요즘 뭐 '(what)하고 지내니?' 보다는 '요즘 '어떻게(how) 지내니?'가 훨씬 부드럽고 공감도를 높일 수 있는 대화법이다. 이건 가족 뿐아니라 사회 생활에도 좋고 개개인의 인격함양을 위해서도 좋은 방법이다.

행복한 가정

파티에 갔다 온 이후 집안의 레벨에 따라 물어보는 내용이 다르다고 한다. 가난한 집안은 “많이 먹었니?“, 중류층은 “맛있었니?“, 상류층은 “분위기 좋았니?”라고 묻는다고 한다. ‘양->맛->기분‘으로 전환되는 관심도에서 보듯, 상류층으로 갈수록 물질적인 충족감에서 벗어나 기분과 태도 등 정신적인 충족감으로 전환된다. 현재 한국 사회는 급속한 경제 발전으로 물질적인 부분을 어느 정도 달성한 이후임에도 문화는 여전히 중하류층의 생활양식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 안타깝다. 물질도 행복의 중요한 요소이기는 하되 어느 수준의 물질을 충족시킨 이후에는 결코 물질의 증대만으로 행복을 이룰 수는 없다. 이 경우는 물질을 더 충족하는 방식이 아니라 의식의 전환이 더 행복한 삶에 이를 수 있음을 기억하자. 글/ 김휘영 문화평론가·행복문화발전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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