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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의 여성대통령론은 시대정신

여성대통령은 최고의 정치개혁 및 문화 발전의 기폭제가 될 것


【서울=빅뉴스】김휘영의 행복칼럼= 한국 사회의 대표적 민주 시인 김지하는 반독재민주화 투쟁시절 운동권이나 비운동권을 막론하고 모두의 영웅이었다. 80년대 언더 서클에서 오적(五賊)을 처음 접한 날, 필자는 흥으로 가락으로 그 긴 시를 한 숨도 쉬지 않고 읊었다. 맥박이 절로 약동케 하는 절묘한 음보, 우르릉 쾅쾅 폭포수 같이 휘달리는 문체, 막힌 혈을 일거에 뚫어주는 풍자의 호쾌함, 필자는 오적을 읽으면서 시(詩)란 것이 이렇게 강한 에너지를 뿜어낼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깨달았다. 고수의 도움이 없이 혼자 시작부터 끝까지 판소리 타령조로 읽었다. 당연히 금서로 지적되고 판금되고 불온한 시가 되었지만 몰래 몰래 숨어서 읽는 이 시에 담긴 에너지는 80년대 반독재 민주화투쟁의 불꽃을 활활 타오르게 했다. 또한 데모가 중에서도 김지하가 작사한 시 ‘타는 목마름으로‘는 정말 목이 벌겋게 달아오를 정도로 우리의 피를 끓게 했다.

김지하의 생명사상 :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

그러다 시인 김지하가 갑자기 민주화의 영웅에서 변절자, 배신자 소리를 듣게 되는 일이 발생했다. 소위 ‘죽음의 굿판‘ 사건이다. 그 당시 반독재 투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많은 학생들이 분신자살을 하며 반독재 투쟁의 제단에 스스로 몸을 불살랐다. 대부분 열혈 운동권이 아니라 평범한 학생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긴 관악사(서울대 기숙사) 사생회장이었던 필자까지 분신자살을 생각해 보았을 정도니 심리적으로 느끼는 시대의 암울함은 달리 표현할 길이 없을 정도다.

그런데 시인 김지하가 학생들의 희생을 보다못해 ‘죽음의 굿판을 걷어 치워라!“ 하면서 뇌성벽력을 내려쳤으니 운동권에서의 배신감은 가히 하늘을 찔렀으리라 생각한다. 곳곳에서 ’김지하 변절자! 김지하 배신자!” 라며 성토했다. 하지만 필자는 이 사건을 시인 김지하가 존엄한 인간으로서의 주체성과 자유로움을 확고히 하고 선지자의 길로 가는 대내외적 선언으로 보았다. 어찌 보면 이런 상황에 있던 필자에게도 김지하의 고함은 생명의 외침으로 작용했다고 판단한다.

그후 김지하는 오랫동안 ‘생명사상(生命思想)’을 대중에 전파하기 시작했다. 죽음의 굿판 사건 이후 <밥> 등의 생명의 소중함을 노래하는 시집이 나왔다. 환경에 대한 소중함을 알아야 하는 시대이자 OECD 가입국가들 중 자살율 1위라는 오명을 가진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매우 부각되어야 할 사상이기도 하다. 불과 며칠 전에도 전북 완주에서 문재인과 안철수 후보 단일화를 유서로 남기고 50대의 유 아무개씨가 13층 아파트에서 투신자살하지 않았는가? 무엇이 이들로 하여금 목숨을 담보로 함면서 까지 자기 주장을 외치려 하는가? 누구 누구에 대한 사랑과 지지가 아니라 '내가 죽을 지언정 누구는 안돼!' 라는 증오심의 발로로 읽힌다.

26일 김지하는 박근혜 대통령 지지선언을 했다. 무엇보다 여성대통령 출현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역시 김지하다. 그는 결코 필자의 기대를 저버린 적이 없다. 필자 또한 현 시점의 한국에서 여성대통령의 탄생이야말로 최고의 정치개혁이자 문화개혁의 시발점이 될 것으로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지하는 그를 핍박하고 7년이나 독방감옥에 가둔 유신의 박정희도 다 극복했다고 언명했다. 그렇다. 박정희가 죽은 지 이미 30년이 지났다. 강산이 세 번이나 변한 것이다. 그 사이에 전두환의 군사정부, 87년 6월 민주화 항쟁의 승리를 이은 대통령 직선제에 의한 ‘보통 사람의 시대’를 내세운 노태우 정부, 그리고 그의 정적이었던 김영삼의 문민정부, 김대중의 국민의 정부, 노무현의 참여 정부 시대가 있었고 또한 선진화를 내세운 이명박의 시대를 지나고 있다. 이런 마당에 박근혜 후보에게 계속 유신의 망령을 뒤집어 씌우며 연좌제의 칼을 들이대는 일은 이치에 맞지 않다. 누가 보아도 너무 치졸하고 저열하다. 김지하 시인은 대한민국의 참다운 발전을 위한 여성 대통령 시대를 희구하며 남성의 역할로 초미(初媚, 첫이마)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다.

시인 김지하, 그의 삶을 볼 때 마다 느끼지만 그는 정말 거침이 없다. 필자는 김지하의 행적을 접할 때마다 진정한 자유인(自由人)으로서의 강함이 무엇인지 느낀다. 세속의 명예와 영달로 그를 유혹하려면 옷깃 하나 붙잡을 수 없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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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서는 2007년 08월 31일 필자의 블로거에 포스팅한 ‘지하와 도올, 그리고 무위에 대해서’ 라는 제목으로 쓴 필자의 글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하는 그때의 필자 글이다. (출처 : http://blog.naver.com/wepass/140041962401) 그리고 이 글은 실제로는 진보누리에 2004년11월16일에 작성된 글이다.

신문 기자가 김지하 시인에게 "왜 필명을 지하라고 했느냐?" 고 했을 때, 김지하 시인 왈(曰) " 지하에는 별 뜻이 없다. 그냥 70년대에 지하다방이 많았는데 내가 지하 다방에 자주 갔기에 지은 이름일 뿐이다"

그의 대답은 세인을 놀라게도 하였고 실망스럽게 하였다. 나 또한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기에 십 수 년 전에 신문에 나온 그 인터뷰를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을 정도다. 대중들은 제멋대로 상상하고 제멋대로의 이미지를 가공해서 숭배하기를 원하기에 그 상상에 걸맞는 멋진 답으로 그들의 숭배욕구를 충족시켜 주길 바랬는데 김지하는 전혀 그러하지 않았다. 하지만 누구보다 더 이런 것을 잘 알고 있을 스타 민중 시인 김지하였지만 그는 "내가 지은 지하란 필명에는 군사독재에 항거하기 위한 레지스탕스식 지하(地下)운동을 의미하는 저항정신을 담고 있다" 라는 식의 거창한 거짓말로 이미지를 조작하려 하지 않았다. 또는 거기서 오는 막강한 권력을 편취할려고 하지 않았다. 나는 이런 김지하를 매우 높게 본다. 정치에 뛰어들면 누구보다도 권력의 중심부에 쉽게 다가 설 수 있었고 심지어는 대통령도 쉽게 할 수 있을 정도의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었던 김지하 시인이었다. 그만큼 그는 우리 시대의 거대한 우상이었다. 그가 권력을 획득하기 위한 수순을 밟았다면 오늘날의 노무현 대통령보다도 훨씬 쉽게 대통령의 자리에 올랐을 것으로 평가한다.

하지만 그는 권력의 썩은 단맛을 향취하면서 시인의 자유로운 정신을 비싼 댓가로 바쳐야 한다는 것이 너무나 손해 보는 교환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대신 그는 분신 자살이 사회에 전염병처럼 번져갈 때, "젊은이여, 거리로 나서라! 순수한 젊은이의 희생과 피 한 방울이 이 사회를 밝히는 햇불로 피어나리라!" 라는 식의 선동으로 대중의 우상이 되는 길을 택하는 대신 "죽음의 굿판을 거두어라!" 식의 시인 본연의 자유와 양심의 울림을 택했다. 그가 양심에 따르지 않았다면 "죽음의 굿판을 거두어라!" 는 말은 할 필요가 없었다.

그런 말을 하지 않고 가만 있기만 해도 그는 변절자 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고 또한 그의 카리스마는 더욱 견고했을 것이다. 그는 아직도 정치권에 가까이 하지 않고 그 대신에 시인의 자유를 만끽하고 있다. 그렇다고 그가 1940년대 청록파처럼 세상의 일을 달관을 핑계로 회피하거나 민중이 도탄에 빠지든 말든 나그네처럼 유유자적한 삶의 나룻길을 걸어 온 것도 아니었다. 그는 진정으로 시대가 요구하는 시대정신에 충실하게 시를 짓고 산문을 썼다.


선지자 김지하의 박근혜 지지

이런 고고하고 올곧은 정신으로 살아 온 김지하의 삶 자체가 시(詩)다. 한민족의 저항시인 김지하가 26일 범시민단체연합이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개최한 강연회에 참석해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에 대한 지지의사를 밝혔다. 김지하는 26일 “시인인 내가 대선과 관련된 연설회에 선 것 자체가 기이하다. 조국의 위기가 나를 이 자리에 서게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 가문 날에 비구름’이라는 제목의 원고를 읽어내려가며 박 후보에 대한 지지를 표했다.

김지하 시인은 “이제 여자가 세상일 하는 시대가 왔고 나는 여성들의 현실통어(=소통) 능력을 인정한다”며 “여자에게 현실적인 일을 맡기고 남자는 이를 도와야 하는 때가 왔다”고 밝혔다.

원고의 내용을 보면 시인은 이에 관해 오랜 기간의 내적인 수양과 한민족의 미래에 대한 고민과 공부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경기도 이천 앵산에서 여성동학당의 회주로 활동했던 이수인을 언급하며 “그 시대에도 여성 이수인이 임금이 된다는 얘기가 있었다”며 “여러분은 박근혜 후보가 이 민주사회의 대통령이 되는 것이 이상해요?”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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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대통령은 시대적 요구

영국 마가렛 대처 뿐 만 아니라 핀랜드의 타르야 할로넨과 호주 줄리아 길라드 수상은 모두 여성이지만 자국의 경제 위기를 특유의 리더십으로 돌파해 낸 것으로 유명하다. 이 밖에도 독일 최초의 여성 총리 앙겔라 메르켈(2005.11~)은 독일을 유럽 공동체 EU에서의 최고 리더 국가로 이끌고 있다고 평가받고 있다. 이처럼 세계 여러 국가에서 이미 최고 정치 리더로서의 여성의 효율성을 보여 주고 있다.

스웨덴, 노르웨이, 핀랜드, 아일랜드 등의 북유럽 국가들의 대통령들도 거의가 여성 지도자들이고 그리고 이들 국가의 복지수준과 행복지수가 매우 높다는 점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우크라이나의 잔 다르크라는 율리아 티모셴코 수상도 지도력을 인정받은 여성이다. 게다가 비교적 정치 후진국이라고 평가받는 남미 브라질의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도 여성이고, 심지어 태국에서도 잉탁 칫나완이 첫 여성 총리로 등장해 새 희망에 들떠 있다.

근래 들어 여성 지도자들이 이렇게 많이 등장하고 또 좋은 성과를 내고 있는 건 시대의 요구에 들어 맞기 때문으로 본다. 투쟁과 반목의 시대보다는 화합과 상생의 시대를 맞아 이에 비교우위를 가진 여성 특유의 ‘부드러운 카리스마’가 절실히 요구되고 있기 때문이다.

여성 대통령은 문화·복지 선진국을 위한 좋은 기회

불과 반세기 만에 산업화와 민주화에 모두 성공한 대한민국의 정치· 사회· 문화· 전반을 둘러 볼 때, 현재 한국에도 유력한 여성 대권후보 박근혜가 등장한 것은 대한민국의 향후 역사에 큰 행운임이 틀림없다. 필자는 현 시점에서 여성 대통령이 등장하여 절반의 성공만 거두더라도 크게 성공한 남성 대통령의 업적보다 그 영향력이 훨씬 대단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는 GNP 같은 가시적인 분야 뿐 아니라 계량화되기 힘들어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분야인 문화나 생활양식 그리고 요즘 전 세계적으로 탐구대상이 되고 있는 행복지수 등에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기에 더욱 그렇다. 이 기회를 놓치면 우리는 여성 대통령을 가져 볼 소중한 기회를 몇 십 년 더 기다려야 할 지도 모른다. / 김휘영 행복문화발전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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