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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 심형래, 김기덕의 의미와 공통점

열등감 벗고 주눅 떨쳐야 한류가 꽃핀다


【서울=빅뉴스】 김휘영의 문화평론=싸이의 강남 스타일이 세계적인 선풍을 끌며 지난 주 11위에 오르더니, 이번 주 빌보드 메인 2위로 치켜 올랐다. 하루 빨리 1위에 등극했으면 한다. 하필이면 10권 바로 밖의 11위와 세계 최고 위치에서 한 계단 못 미친 2위에 멈추고 만 것은 빌보드 주최 측의 의도가 어느 정도 작용했지 않은가 하는 의혹이 들 정도다. 하여간 강남 스타일 현상은 현재 진행형이며 가히 허리케인급으로 세계 대중 문화를 휘몰이하고 있다.

얼마 전 영화계에서도 희소식이 날아 들었다. 69회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김기덕 감독이 영화 피에타로 한국 영화계의 금단의 영역으로 선망의 대상이었던 황금사자상을 거머쥔 것이다. 두 거인의 성취에 마음이 참 뿌듯하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그럴 것이고 이건 '이기적 유전자' 이론에서 봐도 지극히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싸이와 김기덕 감독은 공통점이 참 많다. 가장 먼저 두 사람은 한국 대중문화예술계에서 철저히 비주류였다. 둘째, 두 사람 다 자신에게 특화된 분야에서 철저히 한 우물을 파 왔다. 세째 두 사람이 대중에 내세우는 문화콘텐츠는, 섹시함, 세련됨, 그리고 외관상의 화려함을 추구하는 한국의 대중문화예술계에서 보면 독자적이라 할 만큼 독특하다. 두 사람 다 약간 투박하고 촌스럽고 다소 엽기적인 코드를 견지해 왔다. 그런데 이 두 사람 다 자신이 구축한 콘텐츠로 세계 최고의 경지에 올랐다.

싸이와 김기덕의 성공이 한국 문화계에 주는 파장

문화평론가로서 한국 문화를 비평해온 필자는 20대부터 ‘외국으로부터의 인정’이라는 말을 참 싫어하고 거부해 왔다. ‘인정받는다’는 말은 우리 스스로 서구보다 하급 문화를 갖고 있음을 인정하는 문화사대주의에서 출발하는 말이다. 20대 초반 시절에 겪은 필자의 경험을 소개한다.

필자는 군복무를 위해서 카투사(KATUSA)를 지원했었다. 하필이면 대학 졸업하는 해에 석사장교제도가 폐지되어서인지 카튜사 지원 시험을 통과한 한국군들은 소위 SKY 출신 명문대생들 일색이었다. 논산에서 훈련을 마치고 OOO 통신부대에 배치된 후, 두 달 도 채 안되었을 때의 일이다. 그때 필자는 미국 국방성에서 주관하는 NBC School에 카투사 대표로 참가해서 수석으로 졸업한 일이 있다. 미국 ROTC 장교 출신들인 소령,중령,대령들까지 무수히 참가했고 그들에겐 이 수석 졸업을 하는 것이 상당한 가산점이 붙어 장군으로의 진급에 매우 중요했다고 한다. 오로지 영어로 교육하고 순수 영어로만 평가받는 교육연수에서 한국 군인인, 그것도 최하 계급인 프라이빗(Private: 이등병) 킴(Kim)이 수석졸업(Honour Graduate)을 덜컥 해버렸으니 난리가 났다. 미(美)국방성에서 표창을 한 것은 물론이고 주한 미군 국내방송망인 AFKN TV 뉴스에도 나오고, 한국군에서도 특별히 1주일 포상 휴가가 주어졌다.(참고로 AFKN은 최근에는 AFN으로 불리고 있다)

한데 곧 필자가 일등병으로 진급한 후, 카튜사신문 기자가 필자를 인터뷰하러 왔다. 그런데 그가 이런 질문을 했다.

“이제 미군들에게 인정을 받아서 기분이 참 좋겠습니다. 어떤가요?”
소형 녹음기처럼 생긴 마이크를 들이미는 기자에게 한 필자의 대답은 이랬다.

“인정요? 그런 거 단 한 순간도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제가 왜 미군에게 인정을 받아야 하나요?”



“제가 왜 oo에게 인정을 받아야 하나요?”라는 반문은 당시 필자의 좌우명 “권위에 오만하고 진리에 겸손하라!“의 앞 부분에 있는 ‘권위에 오만하라’는 철학적 견지에서만 나온 게 아니었다. 그 당시 한국에서 내노라 하는 명문대 출신들인 카투사들이 '미군의 인정'에 그렇게 안달하고 있던 모습이 보기 좋게 생각되지 않았던 점도 큰 작용을 했을 것이다. 다만 필자가 미군이나 미국방성으로부터 인정받겠다는 욕구가 있었다면 수석졸업 자체가 불가능했다고 판단한다. 왜냐하면 그 당시 필자의 의식이 고작 그들에게 인정받을 필요를 느꼈을 정도로 저자세였다면 아예 시도조차 못했을 것이다. 당시 필자는 미군 ROTC 장교들보다 나으면 나았지 못한 게 전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NBC School 역사상 최고의 성적(397.5/400 점)을 거둘 수 있었다고 지금도 판단한다. 물론 필자가 수석으로 졸업하겠다고 의도한 것도 아니었다. 그냥 충실히 하다 보니 수석 졸업이 되었을 뿐이다. 또 하나 밝히자면 필자는 대학교 졸업 이후로 ‘양놈, 왜놈, 떼놈’ 이란 용어를 써 본 적이 없다. 이 용어 속에는 한국인으로서의 열등감이 상당 부분 깃들어 있음을 파악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언제나 미국인, 일본인, 중국인으로 불렀고 이에는 그들도 우리를 세계 속에서 당당하게 활약하는 코리언(Korean)으로 불러 주어야 한다는 당연한 요구가 들어 있다. 대학 시절 이후로 필자는 단 1초라도 한국인이 외국인보다 열등한 민족이라는 생각을 가진 적이 없다. 이는 한국의 문화예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아마도 싸이도 자신이 빌보드 차트 상위권에 오르기 위해 의도한 건 아니었을 것이다. 그냥 그야 말로 싸이답게 충실히 놀다보니 이런 성과가 나온 것으로 본다. 싸이나 김기덕 감독, 그리고 심형래 감독 세 사람의 공통점은 언제 어디에 있든 당당하게 주도적으로 행동하며 주눅 든 느낌을 전혀 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영어로 표현하면 이 세 사람은 언제나 Nut, Nerve 즉 기(氣)라고 할 까, 모종의 에너지가 넘쳐 나온다.

싸이와 김기덕이 한국 문화에 끼친 가장 큰 공로

수학자 앤드류 와일즈에 의해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가 증명되었을 때, 푸앵카레의 추측이나 타원곡선 정리 등 각종 수학적 정리의 효용성을 재발견한 것도 하나의 의의로 치지만, 많은 전문가들은 더 이상 이 문제에 수학자들의 귀중한 시간과 노력을 낭비할 필요가 없게 되었음을 꼽는다. 천재적인 수학자들의 능력을 이 과제 대신 다른 일에 투자하며 더 높은 차원으로 향할 수 있게 되었다는 건 인류를 위해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세계 대중문화예술의 양대 산맥인 영화계와 가요계에서의 김기덕과 싸이의 성공이 한국 문화에 주는 가장 큰 공로는 무엇일까? 일단 필자는 김기덕 감독의 황금사자상 수상의 의미를 김기덕 감독 개인의 영광을 떠나 한국 문화예술인으로서의 자아(identity)의 재발견과 앞으로 한국 영화인들이 이런 영화제의 수상에 과도하게 집착할 필요가 없다는 걸 인식하는 큰 계기가 될 것으로 꼽는다. 그것도 한국 영화계에서 내노라 하는 봉준호, 이창동, 박찬욱도 아니고 철저히 비주류 감독이었던 김기덕 감독에 의한 최고상 수상이니 더욱 효과 만점이다. 물론 오해말기 바란다. 필자는 김기덕 감독의 위대한 업적을 평가절하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일단 경험해 봐야 신포도(sour grape)를 보고 입맛만 다시며 변명과 핑계를 대는 여우의 수준을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진정으로 중요한 걸 느낄 수 있을 것이기에 김기덕 감독의 수상이 너무나 중요한 경험이 될 것임은 누구보다 잘 안다. 싸이의 빌보드 석권 또한 그가 오랫동안 한국의 비주류 가수였기에 비슷한 문화충격을 줄 것임에 틀림없다. 이러하기에 김기덕 감독과 가수 싸이의 성공은 단순히 경제적 가치로만 따질 수 없다. 한국문화 전반에 충격파를 던져줄 정신적 가치가 훨씬 크다. 그리고 이 파장은 매우 장기적이고 광범위하다. 우리 한국인 어느 누구라도 싸이처럼 그 어디에 가든 전혀 주눅들지 않고 한 판 당당하게 놀 수 있는 자신감이 있어야만 제 2, 제 3의 싸이도 나온다.

싸이와 심형래 감독의 공통점

사실 한국에서 디워를 가지고 헐리우드로 나갔던 심형래 감독 또한 싸이나 김기덕 감독이 갖고 있는 특성을 다 갖고 있다. 오랫동안 비주류였다는 점, 한국의 일반인들이 보면 저게 가능할까 하고 반신반의하는 일을 무모하게 추진한 점, 게다가 싸이가 최첨단 대중매체기기인 유투브의 도움을 받아 성과를 냈다는 점은 최첨단 IT기술인 CG 기술력으로 [디워]를 만들어 세계 시장에 도전했던 일과 너무나 닮아 있다. 사실 우리 기술력으로도 소위 메이저 리그인 헐리우드를 호령할 수 있다는 심형래 감독의 발상은 싸이와 김기덕의 기개를 뛰어 넘었었다. 다만 우리 한국인들이 아직 이런 점을 칭찬해 주기보다 오히려 비난하기에 앞설 정도로 위축되고 주눅들어 있었음에 심감독이 억울한 일도 많이 당해야 했던 게 필자로서는 정말 황당했지만. 심형래감독의 디워 이전에 [용가리]라는 작품의 실패가 있었다. 마찬가지로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 이전에 [나쁜 남자]라는 작품이 있었음을 간관할 수 없다. 두 거장에게 [용가리]와 [나쁜 남자]가 없었다면 [디워]와 [피에타]도 나올 수 없었을 것은 자명하다.

싸이, 심형래, 김기덕의 공통점- 동(動)적 소통의 중요성

싸이, 심형래, 김기덕의 공통점은 위에 든 것에 그치지 않는다. 이들은 정적인 활자나 언어상의 소통보다는 액션 즉 동적인 소통을 매우 중시했다. 세 사람 다 세계 공통의 소통언어가 바로 몸짓이나 동작에 있음을 너무나 잘 인식했다. 심형래 감독이 세계시장 공략법으로 화려한 비쥬얼을 내세운 건 말할 필요가 없고 싸이의 강남 스타일의 성공이 가사가 주는 섬세한 메시지보다 흥겨운 리듬과 단순 명쾌한 '말춤'에 있음은 누구나 안다.

파리에서 오랫동안 거리의 화가 생활을 한 적이 있는 김기덕 감독 역시 이미지의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 한국의 몇 안되는 감독이다. 이는 김기덕 감독이 "시나리오에 나온 대사를 하나하나 가능한 지우고 그걸 행동으로 표현하는 작업을 매우 중시 여긴다"고 직접 표명한 것으로도 잘 알 수 있다. 실제로 피에타의 전반부 1 시간은 거의가 액션이다. 세 사람 다 비영어권 출신의 한계를 동적인 이미지의 힘으로 극복해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 하고 있는 것이다. 명감독의 조건으로 이미지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은 과거 이창동 감독의 <밀양>을 비평할 때와 프랭크 다라본드의 영화 <미스트>평론에도 자세히 밝힌 바 있다.

아리랑

김기덕 감독이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후 약속한 애국가를 부르지 않고 아리랑을 불렀다. 심형래 감독이 영화 [디워]에 수록했던 아리랑 만큼은 아니었지만 참 아름다웠고 김기덕 감독 다왔다. 싸이는 미국 티비 앞에서 한국어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굳이 '꼭 한국어로 인터뷰하고 싶었다'는 멘트는 생략하고 그냥 자연스럽게 한국어로 하는 게 더 나았겠지만, 그 정도는 대중연예인으로서의 인기를 위한 낚시질이라 하더라도 충분히 귀엽게 봐 줄만 하지 않은가? 이런 것 까지 '애국 마케팅'이니 하면서 꼬투리 잡는 건 비틀어진 열등의식의 산물일 뿐이다.

사실 선진국에서는 세계 영화제에 출품하여 수상하는 일보다는 어떻게 하면 영상콘텐츠 상품으로 전 세계 시장에서 돈을 벌어들일 수 있을까로 방향을 바꾼 지 너무나 오래되었다. 그렇게 벌어들인 돈으로 자국의 문화상품의 시장지배력을 강화하고 자국의 고용을 창출하고 공동체의 복지에 충당할 세금도 더 많이 내고 있을 것이다. 이제 한국도 제발 외국으로부터의 인정에 목말라하기보다 실속을 차리는 데 더 신경 쓸 필요가 있다. 실속을 거두는 데 성공할수록 한국 문화예술의 세계화를 위한 투자가 늘고 선순환이 계속된다는 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 적어도 싸이의 성공은 한국 문화산업에게는 더할 나위없는 기회라는 건 말할 필요가 없다. 이 기회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면, [디워]이후 무려 5년 간이나 세계시장 정복용 영화가 단 한 편도 못 나왔듯이 일회용 해프닝에 그칠 위험성이 있다 / 김휘영 문화평론가

p.s) 1. 이 칼럼은 필자의 앞 선 두 칼럼을 함께 보시면 더 많은 걸 즐기고 얻을 수 있습니다
2. 위 사진 출처는 http://bompin.blog.me/140169109317 인데 가 보시면 더 즐거운 강남 스타일 사진들을 볼 수 있습니다.
3. 독자 여러분, 행복한 한가위 보내세요!
4. 전국 노래자랑 땡아저씨 김인협 악단장님이 오늘 별세하셨답니다.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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